[Sports 인사이드] 요트로 10개월째 세계일주하는 윤태근 선장
돛 찢기고 기계 고장땐 며칠 뜬눈으로 키 잡아
외로움에 후회도 수차례 꿈을 위해 고통 견디죠
부산 수영만에서 만난 윤태근(48) 선장을 보면 꿈을 아예 접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소방수였던 그는 마흔 살에 무작정 요트에 뛰어들어 지난해 10월 결국 단독 세계 일주를 떠나는 데 성공했다. 부산 수영만을 출발해
일본→동남아→인도양→지중해→
파나마운하→태평양을 지나 부산으로 돌아오는 4만㎞ 대장정이었다. 중간 중간 항구에서 쉬었다가 가는 '기착 항해'를 떠났던 윤 선장은 완주를 7~8개월가량 앞두고
튀니지 타발카항(港)에 배를 정박한 채 잠깐 귀국했다. 지중해에 7월까지 이어지는 허리케인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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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수에서 선장으로1987년부터 부산 해운대소방서 소속 소방수였던 윤 선장은 1993년에 돌연 사표를 던졌다. 아내 정소정(48)씨와 부부싸움을 하다가 "이젠 하고 싶은 거 하고 살겠다"고 홧김에 말을 내던진 뒤였다. 직장에서 나오니 먹고살기가 녹록지 않았다. 그는 10년간 생선 장사, 덤프트럭 운전사, 금연 보조제 판매 등을 했지만 뜻대로 풀리는 것은 없었다.
- ▲ 윤태근 선장에게 바다는 도전정신과 인내심을 가르쳐주는 스승이자 현실과 꿈을 이어주는 통로이다. /김용우 기자 yw-kim@chosun.com
2003년 여름 그는 부산에 요트 운송 회사를 차렸다. 부산에서 태어나 늘 요트로 태평양을 건너는 꿈을 갖고 지냈던 그는 요트를 대신 옮겨 주는 일로 요트와의 인연을 시작했다. 첫 항해에서 밀려오는 파도와 바람이 두려워 바다 한가운데 요트를 세우고 바들바들 떨기도 했던 윤 선장은 2005년엔 한반도 해안선을 일주할 만큼 노련한 요트 꾼이 됐다.
세계 일주를 향한 첫 걸음은 2007년에 시작됐다. 부산의 아파트를 팔아 37피트(약 11m) 길이의 요트 인트레피드호(號)를 덜컥 샀다. 그리고 2년간 모은 돈 1억원으로 위성항법장치, '오토 파일럿(자동항해장치)', 시간당 185W(와트)를 내는 태양열 발전기를 달았다. 1년간 가족에게 줄 생활비 5000만원도 만들었다. 작년 4월, 윤 선장은 가족에게 "세계 일주를 떠나겠다"고 선포했다. 남편의 고집을 잘 아는 아내는 "유서(遺書) 쓰고 가라"는 조건만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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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일주 전도사가 되겠다"윤 선장은 "육체적인 고통은 꿈을 위해선 당연히 견뎌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땡볕 아래에서 수십일씩 배를 타는 것은 물론 힘들었다. 하지만 순풍을 타고 파도를 가를 때 느껴지는 자유는 고생을 모두 상쇄시켜 주었다. 음식도 큰 문제는 아니었다. 그는 물 520L(식수 120L+작업용 400L), 연료 360L, 쌀 50㎏, 김치 10㎏과 고추장·된장을
한국에서 챙겨갔다. 윤 선장은 "밥 한술과 김치찌개만 있으면 훌륭한 한 끼 식사가 된다"고 말했다. 강풍에 돛이 찢어지고 '오토 파일럿'이 고장 나 며칠간 잠도 못 자고 키를 잡기도 했다. 그것 역시 꿈을 좇는 베테랑에겐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었다.
가장 큰 고통은 외로움이었다. 윤 선장은 "지독한 외로움은 앞으로도 견뎌내기 무서울 것 같다"고 했다. 수개월간 혼자 망망대해를 떠다니다 보면 끝 모를 고독에 '뭐하러 세계 일주를 하겠다고 나섰나'는 후회가 밀려왔다. 그 좋다는 몰디브에도 감흥받지 못했다. 자기가 없는 사이에 해군에 간 장남 영준(21)과 대학생이 된 차남 준호(18)에 대한 미안함도 가슴에 맺혔다. "아빠 빨리 와"라는 초등학교 6학년짜리 막내아들 건호(12)의 전화에 '다신 (세계 일주) 안 한다'는 다짐도 몇 번이나 했다.
윤 선장은 미래에 대한 두 가지 상상으로 외로움을 이겨낸다고 했다. 첫째는 부산에 도착했을 때의 쾌감이다. 그는 "요트의 가장 큰 매력은 힘든 항해를 마치고 갑판에서 느끼는 '고행(苦行) 끝의 행복'인데, 세계 일주를 마치면 어떤 기분이 들지 벌써 궁금하다"고 했다. 두 번째는 막연하게 세계 일주를 꿈꾸는 사람들을 돕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었다. 자신의 생생한 경험을 세계 일주에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바다에서 맞는 무한한 시간과 자유에 대처하기 위해 '한없는 인내심'을 어떻게 기를 수 있는지 알려주고 싶다"고 했다. 그는 5일 튀니지로 떠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