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백주대낮 파주 엽총 난사사건 현장 가보니… 총성 가득 했던 농장, 이제는 개 소리만…
백주대낮 조용한 농촌 마을에 총성이 울려 퍼졌다. 자그마치 20여 발. 도대체 무슨 일일까. 60대 남성이 전 동거녀와의 재산 문제를 마무리짓기 위해 과거 함께 운영했던 농장을 찾았다. 한 이불을 덮었던 그녀는 “더 이상 줄 게 없다”고 말했고, 화가 머리끝까지 솟은 남성은 그녀를 향해 엽총을 겨눴다. 그녀 곁에는 또 다른 남자가 함께한 지 이미 오래… 60대 남성은 두 남녀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붉은 핏빛 가득했던 그날 그 현장에는 어떤 소리가 남아 있을까.
농가에 20여 발 총알 폭탄…2명 숨지고 1명 부상 ‘치정’과 ‘재산 문제’로 60대 남성 분노 폭발 총질
지난달 21일, 파주의 조그만 농촌 마을에 울린 총성이 대한민국을 강타했다. 자그마치 20여 발이었다. 5연발 사냥용 엽총이 20여 발이나 난사됐고, 피해자는 총 3명이었 다. 이 중 2명은 숨졌고, 1명은 얼굴에 파편을 맞아 부상을 입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장현2리 초입에 위치한 신모(41·여)씨 소유의 블루베리 농장은 도로에서도 눈에 확 띄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8년 전까지만 해도 엽총으로 신씨를 살해한 손모(64)씨와 신씨가 함께 생활하던 곳으로 이번 사건의 배경이 됐다.
그날 농장에서는…
손씨는 전 동거녀 신씨와 약 8년간 동거를 하던 중 동거녀가 이번 사건의 또 다른 피해자 정모(54)씨와 교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2년 전 동거녀와 헤어져 서울로 거처를 옮겼다. 이후 손씨는 재산 정리 문제로 신씨와 여러 번 이야기를 나누려 했으나 번번이 무시됐고, 그동안 블루베리 농장에 들인 돈과 땀,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 같은 불안감 속에서 살아왔다.
지난달 21일 오전 역시 손씨는 농장을 비롯한 재산 문제로 농장을 찾았고, 그 자리에는 신씨의 새로운 동거남 정씨가 함께했다. 이웃 주민 이모(71)씨도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신씨의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다. “뭘 더 달라는 것이냐”며 언성을 높이기 시작한 것. 제일 처음 블루베리 농장 사업을 구상하고, 지금까지 투자며, 기술이며 외국에 나가 노하우를 습득하는 것까지 블루베리 농장에 마지막 인생을 걸었던 손씨였기에 신씨의 말 한 마디에 따른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결국 손씨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만다.
자신의 차 트렁크에서 5연발 사냥용 엽총을 가져와 신씨와 정씨를 향해 난사했다. 이씨는 얼굴에 파편을 맞아 부상을 입었지만 생명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었고, 사고 직후 밖으로 나와 경찰에 신고했다. 신씨와 정씨는 방으로 도망쳐 봤지만 허사였다. 두 사람을 쫓아온 손씨가 이들을 향해 엽총을 난사해 한 사람당 4~5발의 총을 맞고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한 편의 영화 같은 사건이 발행한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장현2리의 지금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사건 발생 사흘이 지나 현장을 직접 찾았다. 예상은 했지만 사건 발생 장소는 파주에서도 버스로 한참을 들어가야 하는 조그만 농촌 마을이었다. 서울 강남에서 전철과 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했을 때 왕복 6시간 정도 소요되는 먼 거리에 위치해 있다. 서울에서는 물론 파주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버스는 전형적인 농촌 길을 달렸고, 적성면에 다다라서야 장현리로 들어가는 버스는 시간당 1대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택시를 잡아탔다.
“장현2리 블루베리 농장으로 가주세요.” “총기사고 난 곳? 젊은 아가씨가 거긴 왜 가?” “현장 좀 보고 싶어서요.” “경찰이야? 아님 기자?”
형식적인 대화가 끝날 때쯤 현장에 도착했다. 택시를 타고 달려온 2차선 도로에서도 훤히 보이는 마을 초입에 자리잡고 있는 블루베리 농장에는 사고로 숨진 신씨의 이름 석 자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노란색 폴리스 라인이 바람에 흔들렸다. 가까이 다가가자 주인 잃은 개들이 사납게 짖어댔다. 차고에 주차된 검은색 중형 자동차는 아무 말 없이 묵직한 무게감만 뿜어댔다.
마을은 너무 조용했다. 사방에는 비닐하우스가 설치되어 있고, 주민들이 사는 농가는 좀 더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블루베리 농장을 천천히 돌아봤다. 목줄에 묶여 있는 녀석들은 낯선 사람을 보고 한참을 짖어대더니 기자가 자리를 뜨자 조금 사그러드는 듯 했다. 헌데 유독 밝은 갈색의 어미 개 한 마리가 기자를 끈질기게 쫓아 다니며 짖어댔다. 평화롭다는 생각이 들만큼 조용한 마을이 순식간에 개 짖는 소리로 가득했다.
반바퀴를 돌아 반대편으로 가봤다. 폴리스 라인 안으로 빼꼼히 고개를 집어넣어 안쪽을 살폈다. 비닐하우스 안쪽으로 작은 묘목들이 보이고 앞쪽 테이블에는 누가 마셨는지 모를 종이컵 두 개가 마주보고 있었다. 테이블 아래 은색 양푼에는 먹다 만 개 사료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트럭이나 봉고 같은 차량들은 제법 오가는데 사람은 그다지 보이지 않았다. 우연히 만난 할아버지 한 분은 “원래 사람이 적다”면서 담배를 입에 물었다. 기자가 사고에 대해 묻자, “난 잘 몰라, 이미 다 끝난 거…”라며 말끝을 흐렸다.
적막 감도는 사건 현장
담배를 다 태우신 할아버지가 마을로 돌아갈 때쯤 또 다른 아주머니를 만났다. 아주머니는 “8년을 함께 살았는데 이런 사고가 나다니 믿어지지 않는다”면서 “세 사람 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그 사람들만 아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을 아꼈다.
사흘 전 20여 발의 총성이 울려 퍼진 살인 현장 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너무나도 평온했던 블루베리 농장을 뒤로하고 발길을 돌렸다. 돌아선 기자의 귀에 아까 타고 온 택시기사의 낮은 속삭임이 울려퍼졌다. “사람 일 모르는 거라니까. 내가 그 아줌마(신씨)를 내 택시에 몇 번 태웠었는데 아저씨(손씨)랑 함께 살 때도 다른 남자를 만나더라고. 다른 남자가 마을까지 들어온 적은 없었어. 아줌마가 택시를 타고 자유로 근처까지 가면 거기다 차를 대고 기다리고 있다가 아줌마를 태워서 가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