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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 '돌 아저씨' 14년 돌 인생 들어보실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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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표 시인 육필시도…돌에 새겨 전시하고 있죠 재일교포 야쿠자에게 무릎까지 꿇어가며 설득 1997년 트럭 600대 분량을 5개월간 실어날랐죠 지금은 트럭 780대 분량…종류도 3천200여종 공원에 수십종 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 발길 멈추고 '감상' 일본관광객도 종종 오는데 남근석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
등(背)은 따뜻할까요, 차가울까요.
MBC 드라마 '개인의 취향'을 보면서 문뜩 이런 물음표를 스스로에게 던져봤습니다.
여주인공 박개인(손예진 역)이 술에 잔뜩 취해서는 진호(이민호 역)의 등에 업혀가면서 혀 꼬인 소리로 말을 합니다. "등이 참 따뜻해요. 우리 아빠 등도 이랬을까요. 나 누구 등에 업혀보는 거 처음이에요. 사람 등은 항상 차가운 건 줄만 알았는데…"라고요. 그러면서 그녀는 늘 등을 보이고 있던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지요.
자신을 포근히 업어주는 등과 자기에게서 싸늘하게 돌아서 앉은 등이 대비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따뜻함과 차가움의 공존(?)이었죠.
그러고 보면 지구상에는 완전히 긍정적이거나 완전히 부정적인 단어는 없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그 단어에 대해 인식하는 따뜻함과 차가움의 정도에 따라 그 의미는 완전히 달라져버리니까요.
돌은 어떤 존재입니까. 그냥 돌입니까, 금(金)입니까.
지난 19일 '팔공산 돌아저씨' 채희복씨(66)를 만나고 와서는 이런 물음을 떠올려봤습니다.
흔히 귀하지 않은, 하찮은 존재로 여겨지는 돌을 그는 금처럼 아끼고 있었습니다. 대구방짜유기박물관 옆 1만3천223㎡(4천여평)의 공간에 자비로 '돌 그리고'라는 돌 공원을 조성하고, 그 안에 집을 짓고 살아가고 있더라고요.
"이 돌들은 제 사단 병력입니다. 팔공산을 지키고 저를 지켜주죠. 사람이 즐거우면 그 즐거움 다 받아주고, 괴로우면 그 괴로움 다 받아주는 게 돌입니다. 비 와도 불평하지 않고 바람이 매서워도 군소리하지 않아요. 사람들은 돌을 발에 차이는 존재라 생각하는데…. 돌도 우리랑 더불어 사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는 자식 자랑하듯 석찬론(石讚論)을 펼쳤습니다. 그날 그의 '사단 병력'에 둘러싸인 채, 팔공산 돌아저씨가 된 그의 사연을 세세히 들어봤습니다.
"나는 성이 '돌'가라요."
'팔공산 돌아저씨'인 채희복씨의 별명은 돌. 14년째 돌을 수집하는 데 온 정성을 쏟고 있는 그를 주위에서는 돌이라고 부른다. '돌' 소리가 정겨운지 그는 마냥 허허 웃었다. 대구방짜유기박물관 바로 아래 1만3천223㎡(4천여평)의 땅에 트럭 780대 분량의 자연석을 수집해 '돌 그리고' 공원을 만든 주인공이 바로 그다.
그의 공원에 가면 3천200여종에 이르는 각양각색의 기암괴석이 둥지를 틀고 있다. 특히 그중에서도 모양을 달리하는 수십종의 남근석은 관광객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전국에서 100% 자연석만 이만큼 모아놓은 곳은 아마 없을 거예요. 남근석도 이렇게 다양하게 수집해놓은 곳은 이곳뿐일 겁니다. 일본 관광객들은 이 남근석을 보면 눈이 휘둥그레져요."
◇ 돌아저씨가 된 사연은
토목사업을 하다 털어먹은 30대 초반, 주변사람의 추천으로 앞산공원에서 0.33㎡(0.1평) 크기의 버스승차권 판매소에서 다시 사업을 시작했던 채씨. 사업은 점차 확장돼 앞산공원, 두류공원, 팔공산 수태골, 망우공원 등에서 14곳의 휴게실을 운영하는 사장이 됐다.
그런 그가 갑자기 돌아저씨라는 별명을 얻게 된 계기는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친구 3~4명과 함께 건강을 위해 경남 함양군 황석산 용추계곡으로 속을 씻으러 갔을 때였다. 4일간 고로쇠 물만 마시고 몸을 맑게 했던 그들은 대구로 바로 가지 말고 남덕유산에 들렀다 가자고 의기투합이 됐던 것이다.
"영각사 앞에 차를 세워놓고 덕유산에 들어가려는 길에 돌이 보였어요. 그 돌이 눈에 아른거려서 산을 못 올라가겠더라고. 내가 산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그때는 그렇더라고요."
친구들을 대구까지 태워주고 그 길로 바로 함양군청으로 내달렸다. 그곳에서 그 돌은 농수용댐을 만들기 위해 제거해야 한다는 사실과 돌의 소유권을 가진 재일교포 야쿠자가 그것을 일본으로 반출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재일교포 야쿠자를 부산 커피숍에서 만났어요. 우리나라에 돌을 놔둬야지 일본으로 가져가는 건 내 마음에 영 내키지 않는다고 사정사정했죠. 턱도 없대요. 그리고 나도 겁이 좀 나더라고요. 일단 명함을 받고 헤어졌죠."
그리고는 경산 인근에 와서 그 재일교포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이때부터는 그사람한테 임마라고 그랬지. '임마, 너 절대로 그 돌 못 가지고 간다'고 그랬어요. 노발대발하더라고. 3~4번 전화를 끊었어요. 그 사람이 약이 올라서는 '너 어디야' 그러더라고. '대구다. 와' 그랬지. 바로 대구 그랜드호텔 커피숍에서 만났어요. 만나자마자 내가 무릎을 꿇었어요. '죽을 죄를 졌다. 그 돌을 일본으로 가지고 가면 안 된다. 나에게 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그러니 야쿠자가 내가 마음에 든다고 하더라고. 그때부터는 형·동생 하기로 했죠."
그렇게 영화의 한 장면처럼 채씨는 돌의 소유권을 가지게 됐다. 하지만 소유권을 가진 것이 끝이 아니었다. 다음의 큰 관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돌을 대구로 운반하는 일이었다.
"돌을 차에 싣는 일, 적정 무게의 돌을 트럭에 싣는 일 등이 복잡했어요. 전국에 돌 전문가 14명을 불렀는데 전부 못하겠다고 하더라고요. 돈도 너무 비싸고. 그러다 황삼백씨라는 전문가를 만나서 돌을 운반하게 됐지요. 총 500∼600대의 트럭에 다섯달 걸려서 실어날랐어요. 그러던 중 경남도청에서 반출하지 말라고 해서 지연도 되고…. 아무튼 그래도 내가 그때 기회가 좋았어요. IMF 환란 때라 신규공사가 없으니 차량 회사에서도 우리 트럭 좀 써달라고 나한테 고기도 사주고 그랬다니까요. 경기 좋을 때 같았으면 돌 싣고 날라줬겠어요?"
그후 돌아저씨의 돌 수집은 계속 이어졌다. 전국을 돌면서 마음에 드는 돌을 발견하면 그 돌이 있는 마을 사람이나 소유주에게 온갖 정성을 쏟았다. 노인회관 등에 노래방 기계를 넣어준 곳만 14곳. 지금도 6곳은 관리를 해주고 있다. 동네 문상도 가고 돼지고기에 소주도 대접하면서 인간적으로 친해져서 돌을 가져가라고 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그의 돌 수집 비결이라고 했다.
"사실 난 돌 대가리죠. 계산적으로 놀면 이렇게 돌에 돈을 투자하겠어요. 못하지."
◇ 수십종의 남근석은 단연 볼거리
팔공산 돌아저씨의 공원에서 유독 눈에 띄는 것은 수십종의 남근석. 인근을 지나는 관광객들이라면 한번쯤 차를 세워두고 눈길을 주게 되는 팔공산의 명물이다.
채씨는 "남근석 모양은 다 깎은 겁니다. 하지만 이 돌들은 100% 자연석이에요. (흰 띠를 가리키며) 이 흰띠를 만든 게 아니라는 겁니다. 이게 다 자연적으로 생긴 거라는 말이죠. 제가 이 띠를 보는 데 전문가입니다"라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 시인의 친필로 새긴 시 36편도
공원의 다른 한켠에는 한국의 대표적 시인들 육필시 수십 편을 돌에 새겨 전시해둔 '시인의 길'이라는 한국현대시육필공원도 자리하고 있다.
백석의 '모닥불', 윤동주의 '봄', 이상화의 '설어운 해조' 등 지금껏 돌에 새긴 시가 총 36편. 지인인 이상희 전 대구시장과 이동순 영남대 국문과 교수의 추천을 받은 시를 주로 새겼다고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특별한 점은 돌에 새겨진 시의 필체가 모두 시인의 친필이라는 것.
"컴퓨터 글씨로 시를 새긴 것이 아닙니다. 시인의 필체를 그대로 본떠서 새겨넣은 겁니다. 그러니 더욱 시를 마음으로 읽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새겨넣을 시가 몇 편 결정되면 각자(刻字) 대가에게 일당 45만~50만원을 주고 의뢰를 합니다."
공원에 걸린 현수막의 문구 역시 독특하다. '안 오신듯 다녀가소서' '사진 외에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고 발자국 외에는 아무것도 남기지 말라'라는 것이 그것이다.
"예전에는 공원 내에 야생화도 많았는데, 공원에 오신 분들이 다 가져갔어요. 좋아서 가져가는 걸 어쩌겠어요. 그 야생화를 보면 저희 돌 공원을 생각해주겠죠. 허허. 저희 공원은 늘 열린 마당입니다만 너무 흔적을 남기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 담긴 거죠."
◇ 자연석 박물관을 짓는 것이 꿈
돌로 제법 알려져서인지 채씨의 공원에는 전직 대통령 후원회, 대기업 회장 등이 돌을 구하러 오기도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휘호를 쓰려고 돌을 구하러 온 적이 있었고, 대기업 회장이 직접 내려온 적도 있었다고 했다. 몇 개 판매한 적이 있긴 하지만 웬만하면 팔지 않는다고 했다. "좋은 돌을 다 팔면 후에 박물관을 못 짓잖아요"라는 것이 이유였다.
자연석 박물관을 짓는 것이 꿈이라는 팔공산 돌아저씨. 아직까지는 '돌 그리고' 공원이 상수도보호구역이라 박물관 건립 허가도 나지 않고 자신의 경제적 사정도 여의치 않지만 꼭 팔공산에 돌 박물관을 조성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 돌은 내게 금이고 옥입니다. 모두 팔공산을 지키고 저를 보호해주는 제 군졸들이지요. 돌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도 많은데 돌도 생명입니다. 각도에 따라 모양을 달리하고 표정도 있어요. 돌 표정 봤나요? 얼마나 넉넉한 모습입니까. 비가 와도 눈이 와도 화를 내도 때려도 다 받아주지 않습니까. 많은 분들이 이 돌 공원에 와서 열린 마음으로 돌과 대화를 하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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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팔공산 '돌 아저씨' 14년 돌 인생 들어보실래요? [영남일보 위클리포유] 2010-04-23 (돌그리고) |작성자 야산
돌아저씨 까페 : http://cafe.naver.com/doll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