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2. 9. 10:40ㆍ카테고리 없음
사진 중앙으로 보이는 건물은 진가서원(사당)을 들어가는 정문이다. 광저우에 대해 모두 잘 모르는 일행들이 어디서 들었는지 진가서원을 가자고 한다. 막연하게 옛날 부유하게 살던 陳氏들의 씨족 마을인데 그곳에 가면 귀족 생활을 볼 수가 있다는 것이다. 육용사를 보고 도보로 이동하자고 한다. 그러나 모두 초행길에 길을 잃고, 더운 날씨에 많이 걸으니 짜증이 난다.
일행 중에 중국어를 약간 하는 한 사람이 길을 물어보지만, 어떤 사람은 이곳으로 가라 하고, 어떤 사람은 저곳으로 가라고 가리킨다. 중국의 문화일 것으로 보이지만 정말 무책임의 극치를 보고야 말았다. 알지도 못하면서 아무데나 손가락질을 하여 15분이라는 거리가 1시간이 되어갔다. 한국이나 일본이라면 이런 낭패는 겪지도 않았을 텐데 길손은 포기하려고 마음먹고 호텔로 돌아가자고 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호텔로 돌아갔다면 큰 후회를 했을 것이다. 우리의 창덕궁보다도 더 호화롭고, 예술적인 이 건물을 보지 못했다면 광저우 여행이 헛 여행이 되고야 말았을 것이므로
광저우 진가사당(陳家祠堂)
원래 명칭은 진씨서원(陳氏書院)으로, 1890년 청나라 광서제 때 착공되어 1984년 완공되었다. 광둥성 72개 현의 진씨(陳氏) 일족이 제사를 지내고 자녀들을 교육시키는 장소로 이용하던 곳이다.
면적 1만 3200㎡이며, 정원 6개와 대청(大廳)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체를 이루는 대문·취현당(聚賢堂)·대청은 중축선(中軸線)에 분포하며, 편방(偏房)과 낭하는 그 양쪽에 좌우 대칭으로 분포한다. 건물들이 들쑥날쑥하면서도 주체 건물과 부속 건물이 분명하고 치밀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을 준다.
대문에는 웅장한 문신상(門神像)이 그려져 있고, 문앞 양쪽에는 직경 1.4m의 포고석(抱鼓石)이 있다. 주 건물인 취현당은 정면 폭과 안 길이가 각각 5칸이며, 과거에 진씨 일족이 선조의 제사를 지내고 회합을 여는 장소로 이용되었다. 취현당 안쪽의 대청에는 조상의 위패를 안치하였다. 중축선 양쪽의 편방은 동재(東齋)와 서재(西齋)로 구분되며, 과거에 진씨 자녀들이 교육받는 서원(書院)으로 이용되었다.
문(門)·당(堂)·청(廳)·재(齋) 등이 낭하로 연결되거나 화문(花門)으로 구분되어 있다. 규모가 크고 보존상태가 양호할 뿐 아니라 건축장식 예술품이 대량으로 보존되어 있어 명성이 높다. 현재 광둥성의 민간 공예품 전시관이자 전국중점문물보호지로 지정되었다.
각종 건축물에는 온통 조형이 아름답고 색채가 화려한 공예품이 장식되어 있다. 그 종류는 목조(木彫)·석조(石彫)·전조(磚彫)에서부터 도자기·흙·석회 소상(塑像), 회화작품과 동·철 주조물 등 다양하며, 돌계단·난간·문·창문·기둥·대들보·방구석·용마루·칸막이·화장(花墻)과 아치형 문 등에 장식되어 있다. 특히 목조 장식은 신화와 역사 이야기 등 다양한 내용을 정교하게 조각하여 찬탄을 자아낸다.
[네이버 지식백과] 광저우 진가사당[廣州 陳家祠堂(광주진가사당)] (두산백과)
입구에 표를 파는 곳이다. 관광객 중에는 중국인들도 많았다.
사당 안으로 들어가는 출입문 입구인데 살다 살다 저런 화려한 용마루는 처음 본다. 아니 과거 조선 시대에 궁궐도 아닌 곳에 저런 용마루를 올렸다간 삼족이 성치 않았을 것이다.
지붕 용마루에는 흙으로 빚어 채색된 토용(土俑) 비슷한 것들이 붙어 있는데 처음 보는 광경이라 충격이고 설레임의 연속이다. 꼭대기에 양쪽으로 두개가 솟은 것은 자세히 보니 잉어가 거꾸로 물구나무를 서고 있는 형상이다.
건물과 건물을 잇는 회랑에도 어김없이 그것들이 올려져 있다.
세상에 대들보에도 문양과 글이 새겨져 있다. 우리나라는 대들보에 먹으로 상량문을 쓰는데 저곳은 조각을 하였다. 대들보 하나에도 화려함의 극치를 보인다.
진씨 서원은 청 덕종 광서제((德宗 光緖帝) 때인 1890년대 당시 광둥성 일애 72개 현에 흩어져 살고 있던 진씨들이 자금을 갹출하여 광저우에 지은 현재의 고시원 비슷한 건물이다. 아마도 서울에 있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자금을 들여 지은 지금의 '학숙' 비슷하겠다.
당시에 해외 화교도 합세하여 거금이 모여지자 최고의 건축설계가와 건축가에게 건축을 맡겼는데 건축 도중에 진씨 후손이 과거에서 2번 째로 장원급제하자, 신이 난 진씨들은 더욱 열을 올려 더 웅장하고 호화롭게 지었다고 한다.
벼루의 크기가 싱글 침대만 하다. 먹가는 사람이 서너 명은 필요하겠고, 수십명이 글씨를 쓰도 능히 감당하겠다.
'기가 막힌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세상에 나무토막 하나에다가 가재와 꽃게를 조각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저것을 조각했나? 중국을 우습게 보다가는 큰코다치겠다. 저 조각품을 만든 장인에게 경의를 보낸다.
사당의 후원으로 보인다.
고대의 작품이 아니고, 상아로 만든 현대 작가들의 작품으로 보인다. 상아로 조각된 둥근 볼(Ball) 안에 또 볼을 집어넣었는데 그게 자유자재로 안에서 돌 수 있도록 조각되었다. 그야말로 신비의 기술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다.
각종 상아로 조각한 화려한 전시물들이 길손의 눈길을 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