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0. 24. 14:15ㆍ스크랩
엊그제 신문에서 모처럼 좋은 기사를 읽었다. 경부고속도로 관광버스 화재 사고 때 부상자 4명을 구한 소현섭 선생님 이야기다. 강원도 동해시에 있는 묵호고등학교 선생님이라고 했다. 불길이 번지는 버스에서 부상자들을 구해 병원으로 데려다 준 것만도 정말 대단하다 싶었다. 그런데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라며 공익 재단이 주겠다는 상금 5000만원도 사양했다고 한다. "의인(義人)으로 포장되기 싫다" "학생 교육이 내 본연의 임무"라며 언론 인터뷰도 피한다고 한다.
▶세월호 침몰이 비극적인 것은 많은 학생이 목숨을 잃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건의 원인과 결과, 수습 과정에서 우리 사회 각 분야의 비루한 현실이 부끄럽게 드러났다. 그때 사회적 비난을 받지 않은 거의 유일한 분야가 있다. 교단(敎壇)이다. 학생들과 함께 세월호에 탄 단원고 선생님은 14명. 이 중 11명이 살아 나오지 못했다. 배가 40~50도 기울어진 상황에서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있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고 한다. 모두가 밖으로 탈출할 때 단원고 선생님들은 세월호 더 깊은 안으로 들어갔다. 무엇이 그들의 발길을 안으로 이끌었을까.
▶아리스토텔레스의 고전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지식이 아니라 의(義)를 실천하는 인격적 탁월성을 이야기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인간은 이런 탁월성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태어난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 역시 타오르는 버스에 뛰어들어 부상자를 구해냈을까.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상금을 거절했을까. 자신할 수 없다. 불길을 보는 순간, 상금을 접하는 순간 갈등을 느꼈을 것 같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소현섭 선생님은 학교에서 윤리를 가르친다. 윤리학이 설명하는 세상의 윤리는 어떤 목적이나 결과를 이루기 위해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다. 윤리는 그 자체가 목적이고 결과다. 그냥 지키고 따라야 하는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더는 학문으로서 윤리를 배우지 않는다. 보통 사람들은 사회에 나오면 권력, 이익 등 오히려 반대되는 것들을 더 많이 익힌다. 요즘 교단도 때묻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지금 이 사회에서 윤리를 생각하는 곳은 교단이 아닐까 한다. 선생님들의 의로운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근대 서구 윤리학을 완성한 칸트의 묘비엔 그가 남긴 유명한 말이 새겨져 있다. '하늘엔 별, 마음엔 도덕률.' 하늘에 별이 반짝이듯 우리들 마음속 어딘가에도 도덕률이 반짝이고 있다는 것이다. 탁한 세상에서 잊고 있던 이 진리를 묵호고 윤리 선생님이 다시 떠오르게 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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