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쇄국정책 대원군처럼 자기만 옳다 생각… 갈 데까지 가서 터질 것"

2018. 9. 4. 13:08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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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盧 경제사령탑 지낸 이헌재 前 부총리, 소득주도성장 비판



입력 2018.09.04 03:03

이헌재 前경제부총리 인터뷰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와의 인터뷰는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적선동 이 전 부총리의 개인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이 전 부총리는 현재 대한민국이 처해 있는 상황, 한국 경제의 현주소에 대해 할 말이 많은 듯 했다. 인터뷰 도중에도 간간히 휴대폰에 담아 둔 메모를 확인하며, 소신 발언을 이어갔다. 2시간 30분 넘게 진행된 인터뷰 내내 이 전 부총리는 현재 한국 경제는 심각한 위기 상황에 봉착해 있는데, 현 정부는 엉뚱한 곳에서 해법을 찾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신문 지면 제약상 다 싣지 못한 인터뷰 주요 내용을 상세히 소개한다.



외환 위기 때 소방수 역할을 했던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이대로 가면 중국한테 깨지면서‘엄혹한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면서“(다음 경제 위기는) 외환 위기가 아니라‘실업대란’형태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전 부총리는“(현 정부가)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팩트를 인정하지 않으면 나라가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면서 경제정책 궤도 수정을 권고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경제 사령탑을 맡았던 이 전 부총리는 이념 과잉의‘386 운동권 그룹’과 각을 세운 바 있다. /이진한 기자


ㅡ문재인 정부가 촛불혁명의 적자를 자처하며 독주하고 있고, 보수세력은 지리멸렬한 상황이다.

"사람들은 촛불을 진보세력이 일으켰다고 하는데, 나는 촛불을 중산층이 일으킨 것이라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박근혜 정부 때 고용문제가 심각해졌다. 경제와 고용이 나빠졌는데, 그 때 잠재 성장률을 3%로 낮춘 게 잘못이다. 나는 아직도 잠재성장률이 5%라고 본다. 말 그대로 잠재성장률은 잠재돼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노인, 여성, 지식 인력이 활용 되지 않고 있다. 특히 지식 인력이 제대로 자기의 생산 능력과 기회를 활용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 청년층들이 공무원 준비, 대학 교육 등에 너무 몰려있다. 예를 들어 공무원 7만명 뽑는데 경쟁률이 10대 1이라고 하면 70만명이 거기 몰려 있는 셈이다. 기간이 몇 년씩된다고 보면 몇백만명분이 있는 셈인데, 잠재성장률이 나올 수 있겠나. 그런 조치를 하지 않으면서 박근혜 정부가 잠재성장률을 낮춘 것은 현실 성장률이 떨어지는 것을 호도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유라 문제가 드러났다. 입시 부정과 특혜 의혹이 제기되면서 중산층의 절망감이 커졌다. 일할 능력도 있고 의지도 있는데 기회가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느끼는 괴리감을 건드린 것이다. 이게 대규모 촛불로 옮아 붙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촛불의 진심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다수 세력(당시 새누리당)이 탄핵을 일으킨 일을 역사상 찾아볼 수 있을까. 드물거다. 민주당이 탄핵을 주도한 게 아니다. 탄핵은 새누리당이 시켜준 거다. 그들이 마지못해 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상황 판단을 잘못했기 때문에 밀려서 거기까지 간거다. 지금까지도 그렇게 밀려왔기 때문에 보수가 미래가 없다고 생각한다. 자업자득이다."

ㅡ보수의 재기가 가능할까?

"내가 걱정하는 것은 보수가 비겁하다는 것이다. 보수는 자기가 자라온 과정에 대한 당당함이 있어야 한다. 어려웠던 시기 오늘날의 관점에서 봤을 때 잘못된 점이 있을 수 있지만 살아남았고, 가족과 나라를 지켰다는 그런 자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진보에 의해서 왜곡된 졸부의 인상만 남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예로 들면 그가 가졌던 긍정적 측면보다 사람을 고문하고 독재했던 부정적인 것만 남았다. 그러니 보수가 당당하게 나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진정한 보수의 가치는 내가 몸이 건강하고 일할 능력과 의지가 있으면 다른 곳에 손을 내밀지 않고 스스로 먹고살겠다는 정신이다. 열심히 일해서 돈 벌고, 돈 벌면 주변을 살피면서 대학이나 병원 등 더불어 사는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게 보수의 가치다. 보수의 기회는 가능성과 기회가 있는 나라를 만드는 것에 있다. 지속가능한 체제를 만드는 거다. 보수가 과거를 지킨다는 게 뭐냐면 현 체제에 과거에서 내려오는 좋은 것들을 지속가능하게 한다는 뜻이다. 그런 시스템과 사람을 만드는 게 보수의 역할이다. 정부가 주도하지 않는 사회적 사업에도 보수가 적극 나서야 한다.

개혁은 자기 명분에 매몰되기 때문에 개혁 세력에 의해 부서진다. 개혁은 도둑처럼 소리없이 왔다가 가는 것이다. 눈치도 못채는 사이 지나가야 바로소 개혁이 되는 것이지, 와글와글하게 개혁한다고 하면 쉽지 않다. 예를 들면 지금 많은 기업들이 조심하는 배임·횡령 같은 것들이 다 분식회계에서 비롯된다. 그건 외환위기 직후에 그전까지 사문화했던 것을 회계 준칙을 만들면서 정착 시킨 것이다. 당시에는 사람들이 아무 관심 안 가졌고 조용히 진행했다. 하지만 지금은 분식회계와 배임, 횡령이 무서운 존재가 됐다. 과거 변화를 읽고 미리 준비한 기업들은 문제 없었지만, 그렇지 않은 곳은 다 처벌받았다.

우리에겐 100년이라는 영욕의 축적이 있다. 6·25, 5·16도 겪으면서 우리 힘으로 자유와 민주를 쟁취했다. 복원력은 거기서 나올 것이다. 이제 보수를 보수해야 한다. 미국을 보면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 등 보수 세력이 있지만 누구도 그들을 헐뜯지 않는다. 미래 인재를 키우는 데 자기 재산과 지식을 쏟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시스템을 통해 얻은 이익을 사회에 어느 정도 돌려주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보수에서 누군가 나서야 한다. 30~40대 인재 중에서 자기 업적이 있고 문제의식도 갖춘, 보수의 아이콘이 될 만한 사람을 찾고 있다."

ㅡ고용 참사, 분배 참사가 발생해도 문재인 정부는 '소득 주도 성장'을 '올바른 정책 방향"이라고 고집하고 있다.

"현 정권이 일종의 자기 당위성 함정에 빠졌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걸 지켜야 하는 강박관념 탓에 여유가 없어진 것이다. 밀리면 죽는다고 생각한다. 그게 좀 더 나가면 '확신범'이 된다. 초기 중국 공산당 내 노선 투쟁 과정에서 중국 공산당 5대 서기 중 한 사람인 런비스(任弼時)가 교조주의자들에게 한 말을 되새겨야 한다. '현실이 진실이다.' 현실을 보지 않고 팩트를 인정 안 하면 국가나 사회가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 대원군의 쇄국 정책을 봐라. 자기 나름대로는 최선이라고 선택한 건데 결국 나라에 어마어마한 피해를 안겨줬다. 진보는 인간의 지식을 믿고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과 괴리가 생기기도 한다. 진보가 항상 바른 길로만 가지 않는 것이다."

ㅡ최저임금 과도한 인상, 주 52시간제 시행 같은 시장 원리에 안 맞는 정책이 계속 나온다.

"최저임금은 시장 균형 가격이 50인데, 자기들이 생각하는 노동 가치가 100이라고 가격을 100으로 올려버린 셈이다. 그러니 원래 1000개이던 일자리가 500개로 줄어드는 것, 이게 현실이다. 시장 가격이 가치에 맞지 않으면 정부가 개입해 가치와 가격의 차이가 나는 부분을 사회 안전망 등을 통해 메우는 방식으로 가는 게 맞는다. 불필요한 정부 개입이 줄어야 왜곡이 덜 일어나고 비용도 덜 든다. 52시간제도 마찬가지다. 나는 미친듯이 일하고 싶은데 52시간만 하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문제 있는 정책을 계속 고집하는 것은 소신이 아니라 어리석음의 소치다."

ㅡ문재인 정부 지지 세력은 규제 개혁에 대해 ‘퇴행’이라고 발목을 잡는다.

"내부에서 혼란이 일어나서 한 발짝도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한쪽에서는 혁신 성장, 규제 개혁을 해야겠다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이걸 두고 후퇴라고 한다. 자유한국당이 발목을 잡고 있다고 핑계를 대지만 실은 같은 편의 싸움이다. 동지끼리 벌이는 싸움이 가장 무섭다. 지금 경제 상황의 변화가 겹쳐 있다. 중국, 탈산업화, 4차 산업혁명 같이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상황이다. 거기에 우리 내부에서 기득권이 고착화되는 현상도 있다. 그걸 나쁜 게 아니라 현실이라고 보고 하나씩 해결해야 한다."

ㅡ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도 "진보 진영 조급증과 경직성 탓에 개혁이 실패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상황을 돌파할 길은?

"대통령이 리더십을 갖춰야 하고, 더 다양한 인재를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은 시민 단체 출신 중심으로 인재 풀을 스스로 좁히고 있다. 대통령 본인이 주도 세력을 못 가지고 있어서 그렇다. 예전 운동권도 지금 이른바 외곽에 가 있지 않나. 운동권도 기득권화 됐다고 보고 있는 것 같다. 시민단체에 있었던 사람들의 강점은 뭐가 문제인지 잘 찾아낸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미시적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국가를 이끌 지도자라면 거기서 한 걸음 더 나가야 한다. 방향을 제시할 뿐 아니라 그걸 끌고 가는 힘이 있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지금 그 지점에서 멈춰 있다."

ㅡ경제 정책의 전환을 위해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게 경제 관료밖에 없는 것 같은데, 김동연 부총리의 행보를 보면 어정쩡한 구석이 많다.

"김 부총리가 지금 힘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그런 목소리라도 있는 게 중요한 거다. 언젠가 지금 이 정부가 가는 방향대로 가다가 상황이 나빠지면 다른 목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그런 목소리가 없다면 문제가 복잡해지게 된다. 김 부총리는 기왕이면 서로 타협해서 좋은 방향으로 가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ㅡ경제 상황을 추스르고 반등시킬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남았나?

"재정은 앞으로 3년 더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 박근혜 정부에서 세금을 많이 걷은 결과로 이 정부가 3년은 걱정을 덜 할 수 있게 됐다. 담배세도 늘리고, 중산층 대상으로 세무조사도 많이 했다. 세원이 확보됐으니 세수가 늘어나는 게 당분간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생산이 늘지 않고 경제가 활력을 잃으면 세금이 들어오지 않는다. 재정이 못 버텨주면 결국 정부 부채를 늘려야 하는 상황이 닥치게 될 거다. 하지만 고용의 고통은 당장 찾아올 것이다. 지원 얼마 받는다고 해서 실업의 고통이 사라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ㅡ제조업이 무너지고 있다. 한국 경제는 결국 위기를 피할 수 없나?

"중국에 밀리는 날이 올 수밖에 없다. 자원 없는 우리는 결국 수출밖에 없는데 어디에 경쟁력이 있나. 서비스업인가? 제조업이다. 하지만 제조업 경쟁력을 어떻게 끌어올릴 것인지 누구도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고 있다. 외환 위기 당시 1년여 전부터 부실기업, 부실 채권 많다, 금융기관에 문제가 생길 거다 하는 경고가 있었지만, '펀더멘털이 좋다'면서 무시했다. 결국 갈 데까지 가서 터졌다. 이번에도 결국 그렇게 될 것 같다. 과거 석유 파동 때는 우리를 뒤쫒는 제조업 경쟁국이 없었기 때문에 위기를 뚫고 가는 게 가능했다. 외환 위기 때는 마침 팽창을 시작한 중국 경제에 올라탈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출구가 다 막혔다. 원자력 산업마저 문을 닫아버렸다. 이대로라면 우리는 엄혹한 시기를 각오해야 한다. 아마 ‘실업 대란’ 형태로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ㅡ4차 산업혁명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이 변화의 핵심은 자율이다. 하지만 우리는 규제에 묶였다. 의료 산업만 봐도 경쟁력이 있다고 하는데, 각종 기득권과 규제 탓에 원격진료도 못 하고 있지 않나. 4차 산업혁명 때는 일자리가 마냥 줄어드는 게 아니라 형태가 달라진다. 은행을 보면 창구로 찾아오는 사람이 크게 줄었다. 다 인터넷이나 모바일 뱅킹을 쓴다. 겉으로는 일자리가 줄어든 것 같지만 이런 IT 서비스를 디자인하고 운영하는 일자리는 생겼다. 이런 사람들을 늘려야 하는데 고용의 경직성 때문에 쉽지가 않다. 사람들이 여러 일을 할 수 있게 고용을 유연하게 하되 실패했을 때를 대비해 사회 안전망으로 보완해주면 일자리 문제도 극복할 수 있다. 40~50년 뒤에 AI(인공지능)으로 많은 게 대체될 것이다. 그러면 그때까지는 AI에 의해 일처리를 할 수 있도록 산업 디자인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 그러면 그쪽 일자리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자유롭지 못하니 그렇게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규제뿐만 아니라 기득권 문제도 있다. 나는 ‘2개의 양극화’가 있다고 본다. 하나는 학문적으로 보면 소득의 양극화다. 다른 하나는 기득권의 양극화다. 노조나 시민단체 같은 작은 기득권이 있다. 다른 한 쪽에는 기존의 큰 기득권이 있다. 그걸 뚫고 나가야 한다."

ㅡ경제 위기를 피하기 위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뭔가?

"지금부터라도 중국이 우리를 우습게 보지 못하도록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국가적 사활을 걸어야 한다. 중국이 한국 제조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분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힘들다고 해서 우리 제조업이 모두 중국에 넘어가는 것이 아니다. 지금부터라도 어떤 걸 키워서 경쟁할 수 있을지 국가적으로 찾아야 한다. 그리고 인재다. 지금부터라도 모든 분야에서 중국이 우리를 우습게 볼 수 없는 경쟁력을 만들어 가야 한다. 정부가 필요하면 그런데 돈을 대줘야 한다. 아이디어를 갖고 하겠다는 의지가 있는 사람들에게 실패해도 좋으니 10년 간 도전해보라는 식으로 가야 한다. 예컨대 바이오 분야 기술 개발하겠다는 사람 있으면 이들이 그 분야만 파면 평생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 지원해줘야 한다. 규제 없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게 하는 놀이터를 만드는 정책이다. 중소기업 정책도 기업을 지원할 게 아니라 기술과 인재를 지원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일본을 보자. 중국이 난징 대학살에 대해 일본을 비난하지만, 일본에 대해서는 사드 때 한국에 한 것과 같은 태도를 보이지 않는 것은 일본에 의존하는 부분이 크기 때문이다. 중국은 일본의 부품 산업, 공장 엔지니어링, 투자 등 다양한 부문에 여전히 의지하고 있다. 반대로 일본은 2030~2050년쯤 중국과 대결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30~40대 지식인을 중심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국가 차원에서 치열하게 연구하고 있다"

ㅡ우리 기업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실력있는 사람을 국내에 많이 키워서 외국 기업이 한국에 들어와 그런 사람들과 일하고 싶게끔 해야 한다. 그리고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 애를 써야 한다. 공정위가 기업 지배구조에 손을 대려고 하지만 그럴 이유가 없다.

하지만 우리 대기업이 지나치게 관료화 돼 있다. 몇 년 전 이스라엘에서 국내로 투자 아이템을 가져온 사람이 있어 몇몇 기업에 소개했더니 결국 그걸 외국 대학에서 가져가 사업화 했다. 이 과정에서 보니 '오너가 법적 분쟁을 겪는게 있어서…' 이러더라. 대기업이 관료화되어서 오너와 실무진 사이에 대화가 제대로 오가지 않는다. 일부 기업은 핵심 조직이 미래를 고민하는 게 아니라 오너들을 어떻게 하면 편안하게 해줄까, 지금 기업 시스템을 어떻게 하면 현상유지할까만 생각한다.

LG 사례가 있다. 구본무 회장이 1990년대 중반과 2000년 초반 각각 자동차 배터리와 전장 사업에 진출했는데, 그 때 주변에서 미쳤다고 했다. 하지만 그 기반 없었다면 지금 LG가 과연 어떤 형태로 남아있을까."

ㅡ위기를 겪는 과정에서 사회적 약자들의 충격이 상대적으로 더 클 것 같다

"더 큰 문제는 중간층이 부서지는 것이다. 40대 중반에서 80대까지, 특히 월급쟁이 같은 지식 노동자가 무너질 수 있다. 자기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면서 생계를 꾸려가고 자녀를 키우고 하는 그 사람들이 부서지는 것이다. 그 뒤에는 그걸 복원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지금 나라를 이끌어 가는 리딩그룹이 없어서, 미국이나 중국, 일본 사이에서 한국이 오락가락 하고 있는 형태다. 국민 전체가 맡은 분야에서 기술 하나라도 더 개발해서 조금이라도 생활을 나아지게 하겠다, 미래를 열어가겠다 같은 압력이 중간층에서 나와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 기업도 이런 사람들을 직장에서 내보내지말고, 고용을 유지할 테니 5% 씩 매년 생산성을 늘리라는 식으로 주문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고용을 계속 유지하면서 각자의 인생에 대해 도전해보는 그런 사회적인 구조가 중요하다."

ㅡ최근 서울 부동산 가격이 다시 오르면서 문제가 되고 있다

"수요 공급 원칙에 어긋나면 집값이 뛰게 돼 있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서울 강남 대치동(대한민국 사교육 1번지)에 자리잡고 아이를 좋은 대학 보내기 위해 교육을 하는 것은 한국형 신분상승이라는 현실 때문이다. 교육 문제를 공론화로 해결하려는 것은 무책임하다. 대표적인 공론화 사례가 히틀러가 한 짓이다. 히틀러가 공론화를 통해 제일 먼저 공격한 게 의회였다. 지금 정부도 툭하면 '공론화' 그러는데 몇사람에 의해 공론화가 이뤄지는건가. 매번 국민투표할 수도 없다. 민주공화국에서 공화라는 건 대의제를 가리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모여 할 수 없으니 괜찮은 사람이 모여서 결정하고, 결정하는 방법을 민주적으로 하자는 것이다. 싫든 좋든 국회를 지키지 않으면 공화국이 무너진다."

ㅡ저출산이 심각한 문제다. 다른 인터뷰에서 저출산 문제를 1순위로 꼽은 적도 있는데

"나도 명확한 답을 내진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애를 낳으면 만 16세까지는 애에 대한 생계비를 국가가 책임지되, 쓸데없는 보조금이나 뭐다 이런 건 다 줄이는 식으로 갔으면 좋겠다. 미국과 프랑스에서 하고 있는 정책을 적절하게 장점을 따오면 좋을 것 같다."

ㅡ한국 경제가 활로를 찾기 위해 시도해볼 만한 새로운 아이디어는 없나?

"요즘 생각해보고 있는 것은 스마트 시티로 도시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일종의 소셜 믹스 형태의 공동체 단지를 만드는 개발 방식이다. 작은 지역을 하나의 단지로 개발해서 모든 세대가 어우려져 사는 것이다. 노인정이나 유치원, 초등학교 각 세대에게 필요한 시설들이 모두 들어가 있고, 세탁소나 약국, 슈퍼마켓 등 상점들은 공공기관이 보유해 장기 임대하고 주민 자치로 운영하는 것이다. 일본에서 이미 비슷한 시도를 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집들은 이주민 주택 같다. 주변에 누가 사는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다. 하지만 어차피 우리 도시는 IT 기반으로 연결되는 스마트 시티로 변화해 갈텐데 이런 모델로 변화를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공공기관이 시작해 민간까지 이 사업을 하게 되면 내수에도 도움이 될 것이고, 성공할 경우 해외에 수출도 가능하다."




"중국이 일본에는 한국 사드때처럼 못하는 건 기술력 때문"

이 전 경제부총리는 한국 경제의 생존을 위협하는 가장 큰 변수로 중국의 부상(浮上)을 꼽았다. 이 전 부총리는 "지금부터라도 중국이 우리를 우습게 보지 못하도록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국가적 사활을 걸어야 한다"며 "중국이 한국 제조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분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 부상에 철저히 대비하고 있는 일본 사례를 거론했다. 이 전 부총리는 "중국이 난징 대학살에 대해 일본을 비난하지만, 일본에 대해서는 사드 때 한국에 한 것과 같은 태도를 보이지 않는 것은 일본에 의존하는 부분이 크기 때문"이라며 "중국은 일본의 부품 산업, 공장 엔지니어링, 투자 등 다양한 부문에 여전히 의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반대로 일본은 2030~2050년쯤 중국과 대결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30~40대 지식인을 중심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국가 차원에서 치열하게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전 부총리는 한국 사회가 가야 할 길은 결국 인재 양성이라고 강조했다. 이 전 부총리는 "예컨대 바이오 분야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이들이 그 분야만 파면 평생 먹고살 수 있을 정도로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며 "중소기업 정책도 기업을 지원할 게 아니라 기술과 인재를 지원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고 말했다.


"촛불은 진보보다 중산층의 절망감에 옮아 붙은 것"

현재 대한민국에서 보수 세력은 지리멸렬 상태다. 하지만 이 전 부총리는 한국 보수의 '복원력'을 믿는다고 했다. 이 전 부총리는 "촛불을 진보 세력이 일으켰다고 하지만 나는 중산층이 일으킨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 근거로 이 전 부총리는 "박근혜 정부 때부터 이미 고용 상황이 나빠졌고, 이런 상황에서 정유라 문제가 드러났다. 입시 부정과 특혜 의혹이 제기되면서 중산층의 절망감이 커졌다. 일할 능력도 있고 의지도 있는데 기회가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느꼈던 현실 괴리감을 건드린 것이다. 이게 대규모 촛불로 옮아 붙었다"고 설명했다.

이 전 부총리는 보수의 가치에 대해 "내가 몸이 건강하고 일할 능력과 의지가 있으면 다른 곳에 손을 내밀지 않고 스스로 먹고살겠다는 정신이다. 열심히 일해서 돈 벌고, 돈 벌면 주변을 살피면서 대학이나 병원 등 더불어 사는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게 보수의 가치"라고 말했다.

이 전 부총리는 보수 세력에도 재기할 기회가 올 것이라고 했다. 그는 "개혁은 자기 명분에 매몰되기 때문에 개혁 세력에 의해 부서진다"면서 "우리에겐 100년이라는 영욕의 축적이 있다. 6·25, 5·16도 겪으면서 우리 힘으로 자유와 민주 를 쟁취했다. (보수의) 복원력은 거기서 나올 것"이라고 했다.

이 전 부총리는 이어 "미국을 보면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 등 보수 세력이 있지만 누구도 그들을 헐뜯지 않는다. 미래 인재를 키우는 데 자기 재산과 지식을 쏟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30~40대 인재 중에서 자기 업적이 있고 문제의식도 갖춘, 보수의 아이콘이 될 만한 사람을 찾고 있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9/04/201809040022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