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상훈 칼럼]文 대통령에게 부족한 것은 知 아닌 德

2018. 12. 27. 19:36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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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에게 정책 수정은 나쁜 ×들에게 지는 것… 적대감 가득한 폐쇄성 1970년대 이래 그대로 노무현 시즌2보다는 박근혜 시즌2 같은 시대 '德 없으면 임금이 아니다'


양상훈 주필

                  

"최저임금 인상은 긍정적 효과가 90%." "자동차, 조선 산업이 좋아지고 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실제 상황과 동떨어진 이상한 얘기를 할 때마다 지적 능력이 모자라는 것 아니냐는 소리가 무성하게 나온다. 이 자리, 저 자리에서 필자가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다. 문 대통령은 과거 명문고를 나오고 사법시험에 합격한 사람이다. 직접 만나 보았을 때 지적 능력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충분하다고 느꼈다.

문 대통령의 문제는 지적 능력이 아니라 폐쇄성에 있다. 1970년대 리영희에게 빠진 이후 관심사와 선호가 수십 년째 닫혀 있다. 한국 보수보다 북한을 더 좋아하고 미국보다 중국을 더 좋아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제일 존경하는 사람이 마오쩌둥이었던 것과 같다. 자연히 경제보다 남북 관계에 훨씬 더 관심이 많다. 사람은 누구나 더 좋아하고 더 관심이 많은 분야에 더 해박해진다. 그렇지 않은 분야는 소홀해지고 나중엔 무지해진다. '90%'나 '물 들어온다'는 지적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관심사가 달라서 나온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분야나 사람에 대해서도 꾸준히 관심을 갖기란 어려운 일이다. 관심과 선호는 동전의 앞뒷면이다. 관심을 가지려면 그것을 좋아하거나 최소한 적의(敵意)는 없어야 한다. 문 대통령은 자신과 정치적 입장이 다른 사람들에 대해 강한 적대감을 갖고 있다. 한국의 모든 정치인이 어느 정도 적의를 갖고 있다. 하지만 문 대통령 정도는 아니다. 문 대통령은 민주당 대선 경선 때 안희정 전 지사 지지율이 오르자 "(안희정에겐) 분노가 없다"고 했다. 왜 보수와 재벌에 분노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는 아직도 '친일파'가 보수, 군부, 재벌로 변한 것이라고 한다. 적의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 적의가 지금 전 정권 사람들을 집요하게 짓밟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민주당 쪽 사람들 말을 들어보면 전 정권 사람들에 대해서만도 아니라고 한다. 문 대통령의 성격은 '화해'와 '용서' '관용'과는 거리가 멀다고 한다. 한번 눈 밖에 나 그걸로 끝이 된 경우를 여러 건 들었다. 눈 밖에 난 경위도 어떻게 보면 사소했다. 선거 때 다른 진영에 있던 사람들을 영입한 것은 순전히 전술적 차원이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대선 때 같은 당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과 북한 인권 결의안 기권 문제로 진실 공방을 벌였다. 대통령이 되자 그 분노를 외교부가 고스란히 뒤집어썼다. 외교부는 모든 정부 부처 중에서 가장 존재감이 없는 투명 부처가 돼 있다. 문 대통령이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에게 대북 제재 완화를 요청했다가 현장 거절을 당한 것은 국가 간 외교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외교부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면 이런 참사는 없었을 것이다. 이 일을 겪은 문 대통령이 외교부의 기능에 대해서 다시 생각할까. 그러지 않을 것이다.

문 대통령에게 이 세상은 '우리 편'과 '나쁜 ×들'의 싸움터다. 마음속에 이런 강렬한 적의를 품고 있는 사람은 세상을 보고 판단하는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 거의 한 눈은 감고 있는 것과 같다.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한 눈을 감으면 사물이 멀리 있는지 가까이 있는지도 구별하지 못한다. 자신의 잘못은 못 보고 남의 흠만 보인다. 이 정권에서 넘쳐나는 내로남불은 이 때문일 것이다.

문 대통령은 몇 권의 책에서 여러 충격적인 고백을 했다. 그중에서도 잊을 수 없는 것은 입장이 다른 사람들의 비판에 대해선 '정말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무시한다고 자랑한 부분이다. 탈원전, 최저임금 과속 인상, 폭력 민노총 두둔과 같은 문제를 입장이 다른 사람들이 지적하니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무시하는 것이다. 그의 마음속 분노와 적의가 정책 수정을 '나쁜 ×들에게 지는 것'으로 만든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문 대통령은 이를 견디지 못한다.

용장(勇將)은 지장(智將)을 이길 수 없고, 지장은 덕장(德將)을 이길 수 없다고 한다. 덕장은 너그러운 사람이다. 덕장이라고 호·불호가 없을 수 없다. 그러나 너그러움이 호·불호 위에 있다. 노무현전 대통령은 좋아하지 않는 견해와 싸우다가도 납득이 되면 인정하는 경우가 있었다. 자기편 반대를 넘어서기도 했다. 한미 FTA와 제주 해군기지는 그 산물이다. 그에게는 덕(德)의 자질이 있었다고 본다. 문 대통령에게 없는 것은 지적 능력이 아니라 덕(德)이라고 생각한다.

논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덕'을 '~다움'으로 해석한다고 한다. 덕이 있는 임금은 '임금다운' 임금이다. '부덕의 소치'는 임금답지 못해 일어난 일이다. 너그러워야 임금다운 것이다. 너그럽지 못하면 임금이 아니다. 전여옥 전 의원이 문 대통령에 대해 '노무현 시즌2'가 아니라 '박근혜 시즌2'라고 했는데 덕(德)의 측면에선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2/26/201812260270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