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천석 칼럼] 문 대통령, '태어나선 안 될 나라'의 대통령인가

2020. 7. 18. 09:10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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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엽이 낙동강 전선서 무너졌다면 5000만 국민 '飼育된 짐승' 됐을 것

강천석 논설고문

 

백선엽 장군은 1950년 김일성과의 전쟁에서 낙동강 전선을 지켜낸 인물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태어나기 전 일이다. 그가 이끄는 사단이 무너졌더라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없다. 함께 싸웠던 미국군은 그가 영웅인 줄 안다. 뒤에 태어났어도 그때 대한민국을 지켜낸 과정과 의미에 대해 손톱만큼 관심이 있다면 백 장군의 역할을 모를 리 없다. 사정이 이런데도 청와대·민주당·국가보훈처를 비롯한 정부 부처장(長)·어용(御用) 단체들은 백 장군이 작고하자 일제히 짐승 소리를 냈다. 짐승이 사람 말을 하는 걸 변고(變故)라고 한다. 사람이 짐승 소리를 내면 상서(祥瑞)롭지 않다고 한다. 양쪽 다 흉(凶)한 징조로 친다.

대한민국은 겉은 민주공화국이고 속은 '대통령공화국'이다. 여당 의원 180명 가운데 단 한 사람도 대통령 뜻과 어긋나게 행동할 수 없다. 일종의 유일(唯一) 체제다. 이 체제에서 대통령의 뜻이 추모(追慕)에 있는데도 정부기관과 관변 단체들이 대통령 뜻을 헛짚고 짐승 소리를 낸다고 누가 생각하겠는가. 청와대는 변명용(用) 모범 답안을 마련해 놓았을 것이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가 그것이다. 실제 대통령은 장례 기간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다. 침묵(沈默)도 소리다. 침묵마다 뜻이 다르다. 박원순 서울시장 자진(自盡) 사건에 대해서도 청와대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정직하게 답변해 보라. '백 장군에 대한 대통령 침묵'과 '박 시장에 대한 대통령 침묵'은 뜻이 같은가 다른가.

대통령이 김일성과의 전쟁에서 국가를 보위(保衛)한 백 장군의 공로를 숙지(熟知)하고 있는데도 장군 묫자리에 떼도 입히기 전에 국가보훈처가 대통령 뜻을 어겨가며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팻말을 달았다는 말인가. 대통령은 '헌법을 준수하고 나라를 보위하며…'라는 선서를 하고 취임했다. 그런 대통령이라면 백 장군이 김일성과의 전쟁에서 절체절명(絶體絶命)의 국가를 보위했던 역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국민에게 당당하게 제시해야 마땅하다.

백 장군은 1920년생이다. 나라가 망하고 10년 후에 태어났다. 끼니를 잇지 못한 홀어머니가 삼 남매와 함께 세상을 버리려고 할 정도로 어려운 살림이었다고 한다. 현 정권은 그의 일본군 복무 이력을 문제 삼고 있다. 1941년 만주군관학교를 졸업했고 일본 패망 때 계급이 중위였다. 특히 1943년 2월부터 45년 1월까지 간도특설대에 근무하면서 독립군을 토벌했다고 비난한다. 사실과 다른 비난이다. 1943년 만주는 그런 세상이 아니었다. 현 정권 핵심부 NL 계열들이 1980년대 '백전백승의 상승(常勝) 장군'이라고 학습했던 김일성은 1940년 10월 23일 소련으로 도피했고 42년 그곳에서 김정일을 낳았다. 1943년에도 만주에 토벌할 독립군이 있었다면 40년에 만주를 이탈한 김일성은 겁쟁이였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대통령의 침묵에 깔린 뜻을 짐작할 단서가 있다. 대통령은 작년 해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해군은 3군 가운데 일본군 출신이 아닌 우리 힘으로 만든 최초의 군대'라고 했다. 육군과 공군은 정통성이 없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아는지 모르겠지만 좌파들이 펴는 다음 단계 논리는 '그래서 대한민국은 태어나서는 안 될 나라'라는 것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이런 논리에 승복(承服)하지는 않았으리라고 믿는다.

대통령은 역사의 영광만 곶감 빼먹듯 누리는 자리가 아니다. 좌절과 오욕(汚辱)의 역사도 온몸으로 걸머질 각오가 있어야 한다. 우리가 뒤늦게나마 6·25 전후 희생된 지리산과 제주도 지역 주민들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데 합의한 것은 나라가 그들을 지켜줄 수 없던 당시 현실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낮에는 대한민국이 다스리고, 밤에는 인민공화국이 통치하는 상황 속에서 주민들에게 외부의 힘이 강요한 행동에 대한 책임을 정상적으로 물을 수 없다는 합의다.

백 장군은 스무 살에서 스물다섯 살에 이르는 나라 잃은 청년의 전력(前歷)을 감추거나 미화(美化 )한 적이 없다. 좌파의 주장대로 그게 씻을 수 없는 허물이라 해도 백 장군이 그때 낙동강에서 무너졌더라면 5000만 대한민국 국민은 지금 금수산 궁전에서 90도 허리를 꺾어 경배(敬拜)하는 사육(飼育)된 짐승의 삶을 살아야 했을 것이다. 그걸 막아준 것만으로 그는 허물과 빚의 몇 천 배를 나라와 국민에게 갚았다. 대통령은 어른스러운 역사관을 가져야 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7/17/202007170391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