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의 문파타파] 최악의 노동 지옥이라면서 아무도 그만두지 않는… ‘이 직업’의 역설

2021. 6. 20. 08:45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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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톨스토이 ‘사람에게는…’으로 본 택배 노조의 파업과 탐욕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입력 2021.06.19 03:00

 

 

일러스트=유현호

 

 

“여기 있는 사람은 다 가입했고 (대리점주를) 쫓아내는 방법은 이거야…. 그 점주 모가지 자르려고 지금 준비 중이라고 하더라고.”

모가지를 자른다니, 왠지 섬뜩하다. 녹취록에 나오는 목소리 주인공은 택배 노조 간부. 그는 택배 대리점들을 관리하는 지역 지사장에게 지시하고 있는 중이다. 궁금해진다. 그 간부는 대리점주를 어떻게 쫓아내려는 것일까? “노조 쪽에서 심하게 파업하고, 대리점에 노조원이 과반수니, 그냥 안 하는 거지.” 답은 파업이었다. 파업을 하면 소장(대리점주)이 못 버티고 나간다는 것이다. “우리가 내리는 물건에 대해서 대리점 소장들이 다 감당해야 되는데, 그걸 하다 못 버티면 자기들이 포기 각서를 쓰고 나가는 방법이 있고.” 이게 다가 아니다. 혹시 나중에라도 소장이 복귀할 수 있으니, 그걸 막아야 한다. “일단 우리는 무조건 형사랑 민사 다 걸고 들어갈 거래. 그래서 얘네(소장)가 다시 재계약도 못 하고.”

엊그제, 택배노조의 파업이 끝났다. 하지만 노조의 요구가 완전히 관철된 건 아니기에, 재파업의 불씨는 남아있다. 이 파업의 의미를 알아야 하는 건 이 때문이다. 파업의 형식적인 이유는 택배 기사들의 죽음. 2020년에 16명, 올해 들어서도 벌써 다섯 분이 목숨을 잃었으니, 그들이 파업하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사람들 반응은 싸늘하다. 오히려 택배 노조를 비난하는 여론이 더 높다. 지하철 파업 때 시민의 발 운운하는 것처럼, 파업으로 택배가 지연되니 불만인 것일까?

사람들이 지적하는 건 전혀 다른 부분이다. 택배 기사는 정해진 급여를 받는 노동자가 아니라 개인 사업자, 즉 일하는 만큼 돈을 버는 사람들이다. 일이 너무 많아 감당이 안 된다면 사람을 더 써서 일감을 나눔으로써 해결이 가능하다. 그럼 과로로 사망한 분들은 왜 그런 걸까? 안타깝지만 자신이 돈을 더 벌 욕심에 많은 구역을 혼자 담당하다 변을 당한 것이다. 여기에 대해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택배 1개당 벌어들이는 수익이 적으니 무리할 수밖에 없는데, 이게 돈 욕심 부리다 죽었다고 헐뜯을 일이냐고.

하지만 그들이 버는 돈이 얼마인지 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CJ대한통운은 2018년 택배 기사 수입 분석 결과 평균 연 소득이 6937만원(월 578만원)이라고 밝혔다.” 기름값, 통신비, 소득세 등을 제외해도 연 5200만원이니 국내 근로자 평균에 비해 적은 것은 아니다. “2018년 임금 근로자의 월평균 소득(세전)이 297만원으로 집계됐다.” 게다가 택배 기사의 4.6%가 연소득 1억 이상을 벌고, 8000만원 이상도 22.5%다. 여기서 고려해야 할 점은 이 통계가 코로나 사태 이전인 2018년 기준이라는 것. 코로나로 물량이 훨씬 많아진 지금은 연 소득이 더 높아졌으리라.

톨스토이가 쓴 ‘사람에게는 땅이 얼마나 필요한가'에서 주인공 파홈은 하루 동안 밟은 땅을 몽땅 갖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받는다. 읽어본 분은 다 아시겠지만, 땅을 더 가질 욕심에 파홈은 쉬지도 먹지도 않은 채 돌아다니다 결국 쓰러져 죽고 만다. 보통 인간은 이렇게 탐욕스러운 존재. 아무리 택배 기사가 개인 사업자이고 돈 욕심 때문에 죽었다 해도, 그걸 개인 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끔 제도적 뒷받침을 해주는 게 우리 사회의 의무가 아닌가?

그러나 대리점 측에서 사람을 더 쓰고 싶어도 그건 불가능하다. 왜? 기존 택배 기사들이 자기 구역을 양보하지 않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물량이 폭주하자 그들은 자신이 더 많은 시간을 일하려 했으며, 감당이 안 되면 ‘알바'를 고용해 썼다. 그 알바비가 아까운 사람들은 자기 배우자나 자녀들을 동원하기도 했는데, 사람들이 “택배 기사님들 너무 고생하신다”며 눈물짓는 건 바로 이 지점이었다. 열악한 노동 조건을 개선하라는 파업 현장에 마세라티나 벤츠 등 1억원을 넘는 외제 차가 줄지어 서 있는 업종은 택배 분야가 유일하지 않을까?

사정이 이런데도 택배 노조는 또다시 파업한다. 택배 물품을 주소별로 분류하는 일이 자신들의 고유 업무가 아니라며 해당 업무를 담당할 인력을 따로 뽑아달라고 했던 올 1월의 파업은 처우 개선을 위해서라고 치자. 하지만 이번 파업의 원인이 된 ‘합의안 도출 실패’를 보면, 택배 노조가 애당초 합의할 생각이 없었다는 의심이 들게 만든다.

합의안에 적힌 노조의 요구는 다음과 같다. 노조의 어떤 활동에 대해서도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으며, 물품 분실이나 파손이 있을 때라도 그게 고의가 아닌 한 대리점이 배상해야 하고, 고의성 입증은 대리점이 한다는 것, 근무시간은 줄여주고 대신 수익은 보장해 줄 것, 조합원 자녀가 대학에 진학할 경우 대학 등록금 전액을 지원한다 등등인데, 이런 노조의 요구를 들어줄 업종이 대체 얼마나 될까?

그런데 이게 다 파업을 위한 명분 쌓기라는 게 위에서 언급한 녹취록에서 드러난 것이다. 그리고 이는 결국 성과로 이어졌다. 다시 녹취록을 들어보자. “지금 우리 센터 내 XX동 날아갔고. 이제 XXX 지점도 날아갈 준비 하고 있다고.” 파업 기간에 배송을 대신할 인력을 구하는 것도 안 된다고 하고, 신규 채용은 더 안 된다며 결사 반대하는 노조, 이런 판국에 대리점이 하루 1000만원 이상씩 손해를 보며 버틸 재간이 있겠는가? 대리점주는 결국 쫓겨나고, 다시는 복귀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 자리는 노조에서 점찍은 사람이 들어간다. 이러니 택배 기사들이 노조 눈치를 볼 수밖에. “노조 가입을 안 하는 사람들이 있잖아. 끝까지 소장들한테 붙어있을 사람들이 있으면, 있으라고 얘기를 하래. 만약에 대리점이 잘려 나가잖아. 그때 와서 우리 노조 가입하겠다고 하면 안 받아줄 거다.”

노조가 약자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국민은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달라는 그들의 요구가 옳다고 여겨, 파업에 따른 불편을 기꺼이 감수하곤 했다. 당시 주장했던 것을 대부분 이룬 지금, 노조는 여전히 파업 중이다. 과거와 달리 사업권 전반을 장악하려는 게 그들의 목표인 듯하지만, 현장에서 외치는 구호는 과거랑 변한 게 없다. “노동자의 생존권 보장하라!” “노조 탄압 중단하고 직장 폐쇄 철회하라!” 이들을 위해 우리가 파업에 따른 불편을 감수해야 할까? 오히려 파업으로 남은 이들이 생명을 위협받게 됐는데 말이다.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댓글로 마무리를 대신한다. “그렇게 최악의 노동 지옥인 환경인데 아무도 일을 그만두려고 안 해서 TO도 없고, 개인 사업자로 해당 권역 붙잡고 있다가 팔 때 웃돈 오지게 붙여서 판다며? 아이러니하지 않냐?”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공동저자

 

 

 

https://www.chosun.com/national/weekend/2021/06/19/JNRCN43M4ZH5PGNPNZQ5JUKM3Q/

 

[서민의 문파타파] 최악의 노동 지옥이라면서 아무도 그만두지 않는… ‘이 직업’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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