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력자의 회고록… 그의 글은 비열함의 나열이다[논객 조은산의 시선]

2021. 6. 4. 11:08스크랩

728x90

사람과 사람 간에는 인연(因緣)이라는 게 있다. 우리는 함께 몸담으면서도 혹은 적의를 갖춘 채 서로를 힐난하면서도 인연에 대해 말한다. 우연과 악연 그리고 필연에 대해 말한다. 모두 인연의 다른 이름들이다. 사람과 사람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 끈으로 맺어지고 얽혀가며 살아가는 존재다.

 

연(緣)으로 맺어지는 게 어디 사람과 사람뿐일까. 글과 글 주인도 그렇다. 그들도 연으로 맺어지는 관계다. 나는 글이라는 게 단순히 글쓴이의 전적인 산물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 글이 그 사람과 연이 닿아 만난 것이다. 연이 닿지 않았다면 그 글은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 태어날 수도 있다. 태초의 영혼을 간직한 채 더 유려하고 고귀한 글이 되기도 한다. 마치 헤어진 전 애인이 새로운 사랑을 하게 돼, 더 아름다워지거나 더 멋있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수많은 글이 글 주인의 손을 기다리며 무의 공간에서 유의 공간을 찾아 헤맨다. 내게도 그렇게 다가온 글이 있다. 나는 그 글을 쓰지 않았다. 그저 그 글을 거뒀을 뿐이다. 온 힘을 다해 껴안아 내게 전해주는 말들을 들었을 뿐이다. 그 연으로 나는 그 글의 주인이 되었다. 영광은 없다. 더 많은 글, 더 좋은 글을 써야 한다는 고통만이 남았다. 그러나 기쁨은 있다. 내 글이 누군가에게 정성으로 읽힌다는 기쁨이다. 이 글은 그 고마운 마음으로 내게 다가선다. 다시 꼭 껴안아 글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연을 찾아 지천을 떠도는 그 많은 것들이 거기 있었다. 보드라운 것도 있었고 따스한 것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나를 아는 듯, 메마르고 거칠게 다가온 것들만 거뒀다. 그것들을 뿌리치지 못한 나는 정치인들을 싸잡아 비난했고 현상을 비틀어 조롱했다. 고백하건대, 나는 원래 아름다운 글은 잘 쓰지 못한다. 비난과 조롱이 가져다주는 편안함에 길들어 순수를 잃은 지 오래니 더욱 그렇다. 이게 내가 가진 연의 한계다.

삶에 깃든 모든 것을 미처 알지 못했음을 안다. 돌이켜보니 강물도 아픔이 있었다. 돌도 마음이 있었다. ‘흐르는 강물처럼 우리 흘러가는 대로 살자’며 함께 부둥켜안고 울던 어머니도 있었고 노인정에서 배운 휴대폰으로 ‘사라ㅇ해 아드ㄹ’이라며 겨우 고백하던 아버지도 있었다.

영원에도 순간이 있었다. 백발의 노인이라고 어머니의 자장가를 기억 못 하는 게 아니었다. 갓난아이라고 할미의 주름진 손을 기억 못 하는 게 아니었다. 삶의 굽이쳐 흐르는 모든 시간은 물빛 아련한 기억의 순간들이었다. 순간에도 영원이 있었다. 어린 시절, 출근하던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이제 나는 내 아이에게, 나의 뒷모습을 보여주며 집을 나선다. 살고 자라나며, 그렇게 낳고 기르며, 지쳐 주저앉은 좁은 골목길 위에도 삶과 삶으로 이어지는 무한한 시간길이 있었다. 이 모든 아름다움을 알지 못했던 나는 원래 있던 그곳에 글혼을 남겨 둔다. 여백을 향한 글혼이 하얗게 날아오른다. 이제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그의 주인이 될 시간이다.

 

숱한 아름다움이 여기 있다. 흩날리는 그들이 연을 찾아 나섰으니 글 주인을 찾아낸 글들은 시공간을 깨뜨리고 나와 기어이 쓰인다. 낡고 지친 책상 모퉁이에, 오롯이 눈 뜬 등불 위에, 저 자신을 보지 못하는 거울 위에 쓰인다.

위태로웠지만 정직했다. 삶의 모든 순간에서 한 점의 부끄럼 없이 그대는 살아왔다. 내 안의 가치를 지켰고 공동체의 약속을 깨지 않았다. 그러므로 가장 정의로운 글은 그대의 글이 될 것이다.

그런데도 하루는 버거웠다. 홀로 남은 시간, 때론 죽지 못해 사는 듯해 팔을 들어 새어 나오는 울음을 틀어막았다. 내 울음을 들키는 게 부끄러워 화장실로 숨어들어 한껏 울었다. 그리고 거울을 봤을 때, 가장 맑고 순수한 내가 있었다. 그러므로 가장 진실한 글은 그대의 글이 될 것이다.

이제야 알 것 같다. 살아오며 내가 바랐던 수많은 것보다, 나를 바라던 그 작은 것들이 더 소중했었다는 걸. 내가 가장 지키고 싶은 무언가를 위해, 가장 먼저 버려야 했던 건 바로 나 자신이었다는 걸. 이제 가장 가치 있는 글은 그대의 글이다.

언젠가, 우리를 많이 아프게 했던 한 권력자가 회고록을 출간했다고 한다. 십만 권이 넘는 부수가 팔려나갔고 완판을 기록했다고 한다. 그의 가족의 피를 찍어 써 내려가는 심정으로 글을 썼다고 한다. 서초동의 촛불 십자가가 장엄해 보였단다. 그를 수호하려는 목소리가 집단 지성이었단다. 소중한 가치를 짓밟은 그가 저 자신을 밟고 지나가라 했단다.

글은 순수의 결정에 피어난 정신의 꽃이다. 수사의 장엄함은 자성과 성찰에서 비롯된다. 필봉의 끝은 고뇌와 고백으로 달궈진다. 바로 우리의 삶이 그렇다. 우리의 글이 그렇다. 그러므로 그의 글은 글이 아니다. 명문의 성문이 아니다. 나라를 망치는 친문을 위한 잡문이다. 문단과 문장의 나열이 아니다. 비열함의 나열이다.

눈을 감고 생각한다. 소리도 귀가 있다. 가슴도 입이 있다. 내 안의 진실한 목소리를 가장 먼저 듣는 건 바로 나 자신이다. 내 안의 거짓을 가장 먼저 폭로하는 것도 바로 나 자신이다. 이 사실을 아는 그대가 내 인생의 명문이었고 내 애절함의 나열이었다. 세상이 바라던 건, 바로 그러한 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