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부족 사태가 끝난 뒤 자동차 업계에 벌어질 일 [최원석의 디코드]

2021. 9. 30. 16:29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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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코드(decode): 부호화된 데이터를 알기 쉽도록 풀어내는 것. 흩어져 있는 뉴스를 모아 세상 흐름의 안쪽을 연결해 봅니다.

자동차 업계의 반도체 부족 사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 여름부터 부품사 쪽에선 “연내 해결이 어려울 것 같다”는 얘기가 돌았는데요. 리사 수 AMD CEO는 며칠 전 “반도체 부족 현상이 내년 상반기까지 계속될 수 있다”고도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이번 사태가 끝난 뒤 업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에 대해 말입니다. 공급이 정상화되면 예전으로 돌아갈까요?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반도체 부족 사태가 나기 이전과 이후의 업계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를 현재 폴크스바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통해 설명해 보겠습니다.

우선 자동차 반도체 부족 사태에서 무엇이 가장 심각했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초유의 팬데믹, 이로 인한 IT분야의 수요 폭증, 자동차 업계의 수급 미스매치 등의 복합적 문제가 있었겠지만, 자동차 업계의 가장 큰 공포는 ‘어떤 반도체가 얼마나 부족한지조차 잘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폴크스바겐의 자동차 OS인 ‘VW.OS’ 등을 개발하는 ‘카리아드(CARIAD)’. 폴크스바겐의 그룹 컴퍼니로 이 회사에서 일하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만 5000명이다. /폴크스바겐

 

◇폴크스바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5000명 투입해 OS와 전기·전자 아키텍처 개발

그럼 왜 자동차 회사들은 제대로 알지 못했을까요? 근본 원인은 자동차 회사들이 자신들이 만드는 자동차를 구동시키는 ‘소프트웨어’를 장악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동차회사는 플랫폼(엔진·변속기 등을 포함한 차량의 기본 뼈대)은 스스로 개발하지만 다른 부품 대부분은 외부 부품사에서 조달합니다. 게다가 부품회사들은 반도체만 따로 파는게 아니라, 부품과 그 부품을 구동하는 전자제어유닛(ECU), 유닛에서 돌아가는 소프트웨어를 묶어 팔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부품마다 소프트웨어가 제각각이고, 그 안에 어떤 반도체가 들어가는지도 해당 부품업체만 알 수 있는 것이죠. 반도체 자체는 단순하고 별 것 아닐 수 있지만 하나가 빠지면 자동차 생산을 못하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이 반도체가 범용이 아니라 어떤 부품업체에만 특화된 제품이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해지는 겁니다. 범용으로 대신 끼워넣으면 좋을텐데, 그게 안되는 겁니다.

게다가 더 속이 타는 것은 자동차회사로서는 현상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도 어렵다는 것이죠. 범용 반도체로 대신 끼워넣어도 되는건지, 아예 불가능한건지, 아니면 부품회사가 범용 반도체 대체나 조달이 가능한데도 나를 속이는건지조차 파악이 어렵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자동차는 세부 용도에 특화된 반도체와 소프트웨어가 계속 덧붙여지는 형태로 발전돼 왔기 때문에, 더이상 지속이 불가능한 복잡성의 문제를 야기하게 된 것이죠. 이번 사태는 문제의 심각성이 한꺼번에 터진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가 본론입니다. 이번 자동차 반도체 부족 사태가 봉합된 이후, 자동차 회사들은 어떤 근본 대책을 세울 수 있을까요? 기존 체제로 돌아간다면 해결이 어려울 겁니다. 제아무리 큰 자동차회사라도 점점 늘어만 가는 자동차 전장(電裝)의 모든 부분을 통제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금처럼 각 부품 회사들이 제각각의 로직으로 소프트웨어·하드웨어를 설계해 납품하는 방식을 뜯어고쳐야 합니다. 자동차회사 스스로 차량의 하드·소프트웨어 통합 제어의 근간을 다시 세우고, 본인들이 이를 장악해야 하는 것이죠.

현재 이걸 가장 잘하는 회사가 테슬라이고요. 현 시스템을 뜯어고쳐 테슬라의 체제에 맞서고 결국엔 규모의 경제로 이기겠다고 하는 쪽이 폴크스바겐입니다. 테슬라는 ‘레거시 코스트’가 없는 회사이니 처음부터 소프트웨어 중심의 접근법을 취했던 것일 텐데요. 테슬라는 이전 글에서 많이 다뤘으니, 이번엔 반도체 부족 사태 이후에 폴크스바겐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에 대해 얘기해 보겠습니다.

현재 폴크스바겐은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제품 중심을 이동시키려 하고 있는 것 뿐 아니라, 자사 차량을 SDV(Software Defined Vehicle), 즉 소프트웨어가 정의하는 자동차, 소프트웨어가 지배하는 자동차,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보다) 먼저인 자동차로 바꾸려 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 회사로, 차를 파는 것보다 소프트웨어 기반의 모빌리티 서비스로 더 많은 돈을 버는 회사로 변신하겠다는 것입니다. 전사 역량을 총동원해 개발을 진행 중이고, 2025~2026년쯤 완성형 SDV를 내놓을 예정입니다. 이렇게 되면 자동차 회사가 더 이상 특정 반도체회사의 특정 제품만 써야 하는 일, 해당 반도체가 부족해지면 차량 생산을 멈춰야 하는 일이 크게 줄어들게 될 겁니다. 소프트웨어를 장악했기 때문에, 차량 설계 단계부터 앞으로는 반도체 부족 위기를 덜 겪기 위해, 핵심 반도체의 내재화, 그 이외 반도체의 철저한 범용·공용화를 추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차량의 OS와 전기·전자(E/E) 아키텍처(architecture)를 통제할 수 있는 SDV 시대가 되면, 반도체 공급망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폴크스바겐의 차세대 전기차 플랫폼 ‘SSP(Scalable Systems Platform)’ 개념도. 폴크스바겐은 SSP를 사용한 최초의 전기차 ‘트리니티’를 2026년 출시한다. 이 차량부터 진정한 의미의 ‘바퀴 달린 스마트폰’이 될 것으로 보인다. /폴크스바겐

 

◇자동차 회사가 소프트웨어 장악하게 되면, 반도체 부족 사태에도 효과적인 대비 가능

이게 뜻하는 것은, 폴크스바겐은 내연기관차를 전기차로 바꿔서 살아남겠다는 것이 아니라, 전기차를 기반으로 하는 SDV, 즉 스마트폰처럼 무선 업데이트를 통해 다양한 모빌리티서비스가 가능한 차를 기존 회사들보다 더 빨리 더 대량으로 더 제대로 만들어 미래 자동차시장에서도 승자가 되겠다는 것입니다. 향후에 폴크스바겐이 모빌리티 서비스를 하든, 혹은 더 나중에 자율주행 기술을 차량에 얹든, 그것을 차량이 받아줄 수 있어야 할텐데요. 그런 SDV를 완성하는데 필요한 하드·소프트웨어 구조를 직접 만들어 통제하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유럽 탄소배출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전기차 보급을 늘려야 하는게 당장은 절박하겠지요. 하지만 폴크스바겐이 이렇게 전기차에 집중하는 것은, 전기차가 수세적 입장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편만이 아니라, 미래 성장을 위한 도구로 쓰기에 최적이기 때문입니다. 폴크스바겐은 2030년 유럽의 MaaS(Mobility as a Service) 시장이 700억달러 규모가 될 것으로 예측했는데요. 모빌리티 서비스를 제공해 돈을 벌려면 차량 구조가 단순해야 하고, 차량 원가는 점점 낮아져야 하고, 스마트폰처럼 모든 것을 중앙에서 통제하고, 차량의 모든 동작·기능을 전기·전자적으로 쉽게 제어할 수 있어야 하겠지요. 이 목적에 가장 부합하는 것이 바로 전기차인 셈입니다.

폴크스바겐은 이 계획이 점프하는 시점이 2026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1~2년 안에 가시적인 효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겁니다. 차세대 전기차 플랫폼 ‘SSP(Scalable Systems Platform)’를 사용한 전기차가 2026년에 처음 나오게 되는데, 이것을 시작으로 폴크스바겐 뿐 아니라 아우디·포르쉐 등 그룹 내 모든 차종의 전기차를 단 하나의 플랫폼으로 만들 수 있게 됩니다. SSP에 맞춰 통합 운영체제(Operation System)인 ‘VW.OS’를 중심으로 전기·전자(E/E) 아키텍쳐(architecture)도 쇄신합니다. 작년에 나온 전기차 ID.3부터 무선업데이트(OTA·Over The Air)를 통한 기능 개선이 일부 이뤄지고는 있는데요. 2026년 나올 차부터는 MaaS로 대량 수익을 내는 구조를 만들어 보겠다는 것입니다.

계획이 진짜인지 아닌지를 알려면 그 계획에 어느정도 인력이 투입되는지를 보면 됩니다. 폴크스바겐의 OS 즉 ‘VW.OS’ 등을 개발하는 ’카리아드(CARIAD)’라는 폴크스바겐 그룹사가 있는데요. 현재 이 회사에서 일하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만 5000명입니다. 폴크스바겐 그룹 전체로는 1만명 정도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통합 OS와 전기·전자 아키텍처, SSP 개발에 투입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요. 이외에 협력사 엔지니어까지 포함하면 총 2만명 이상이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폴크스바겐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소프트웨어 인력 추가 채용에 돈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직장평가사이트 글래스도어에 따르면, 미국 기준 폴크스바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평균 기본연봉은 14만6039달러로, 테슬라(12만3073달러)보다도 높습니다.

 

'우븐 플래닛’. 도요타판 소프트웨어 통합 기반인 ‘아린(Arene)’을 개발 중이다. 우븐 플래닛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인력만 3000명이다. 도요타는 그룹 전체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1만8000명으로 증원할 계획이다. /도요타

 

◇도요타도 엔지니어 3000명 보유한 ‘우븐 플래닛’ 통해 소프트웨어 통합 기반 개발 중... 그룹 내 소프트웨어 인력, 1만8000명으로 증원 예정

한편 도요타도 ‘도요타판 카리아드’라 할 수 있는 ‘우븐 플래닛’이라는 회사가 있는데요. 도요타판 소프트웨어 통합 기반인 ‘아린(Arene)’을 개발 중입니다. 도요타도 폴크스바겐 못지 않게 규모가 큽니다. 우븐 플래닛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만 3000명이고, 그룹 전체 소프트웨어 개발인력은 1만8000명까지 늘릴 계획입니다.

이렇게 자동차회사가 차량 OS를 장악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소프트웨어를 장악하게 되기 때문에, 거기에 들어가는 반도체도 장악할 수 있게 됩니다. 핵심 반도체는 자신들이 직접 만들거나 직접 조달하게 될 것이고, 나머지 반도체들은 쉽게 대체 가능한 범용제품을 써도 되는 쪽으로 공급망이 바뀔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체 OS의 스마트폰으로 아이폰·안드로이드폰에 대적했지만 경쟁에 밀려 사라진 노키아와 달리, 테슬라 등에 맞서 자체 OS로 성공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의문도 있을 수 있죠. 세계 피처폰 시장의 40%를 장악했던 노키아도 애플·구글에 대응을 못했는데, 폴크스바겐처럼 과거 자동차 유산이 가득한 기업이, 테슬라나 다른 IT 기업의 자동차 OS 공세에 맞설 수 있겠느냐고요.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노키아 사례와는 다를 것이라고 보는 근거가 두 가지 있습니다.

첫번째는, 휴대폰 시장과 자동차 시장은 시장의 판도가 바뀌는데 걸리는 시간의 차이가 매우 크다는 것입니다. 2007년 아이폰이 등장하고 불과 5~6년만에 노키아가 무너지게 된 것은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바뀌는 속도가 매우 빨랐기 때문이었지요.

자동차는 그렇지 않습니다. 현 수준에서 가장 완성도 있는 SDV 인 테슬라 차량의 보급은 시장 전체에 영향을 줄만한 양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테슬라 차량의 연간 판매대수는 작년 기준 50만대, 전체 신차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6%였습니다. 게다가 자동차는 보유 연한이 아주 길죠. 지구상엔 14억대의 차량이 운행 중입니다. 테슬라 차량의 누적 보급률은 0.1%입니다. 즉 테슬라가 가장 앞서 있다고는 하지만, 과거 스마트폰 혁명에서 아이폰이나 구글폰이 보여줬던 보급 속도, 즉 몇 년 안에 시장 판도를 완전히 바꾸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향후 몇 년 안에 벌어지기도 어렵다는 것이죠.

애플이나 구글 혹은 다른 IT 기업이 지금이라도 OS로 자동차시장을 본격 공략할 수도 있지만, 애플 카플레이나, 안드로이드 오토는 아직 인포테인먼트 중심이고, 차량의 핵심 기능에는 제대로 접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제부터 어떤 큰 변화가 생긴다 하더라도, 차량의 OS를 장악해 이를 널리 보급하는데는 시간이 꽤 오래 걸릴 수 있습니다.

◇자동차 OS 개발에 집중한 회사와 못한 회사, 반도체 부족 사태 이후의 경쟁력 차이 점점 커질 수도

두번째는, 테슬라조차도 OTA(Over The Air·무선 업데이트)를 통해 돈을 버는 서비스를 다양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테슬라의 OTA가 가진 포텐셜은 무한하지만, 아직 차량 보급이 충분히 안됐고, 그에 따라 시장이 아직 무르익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눈에 띄는 것이 주행지원 소프트웨어(FSD)의 월정 구독서비스인데, 이것도 구독 수요가 크게 늘어서라기보다는 일시불로 1000만원을 주고 영구 구입하는 비율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테슬라가 보급률을 높이기 위해 내놓은 고육책일 수도 있거든요.

따라서 폴크스바겐이 지금부터 단계적으로 개발해 (과도기 제품을 중간에 내놓으면서) 2026년에 자신들이 생각하는 완성도의 SDV를 내놓는다 해도 승산이 있다는 겁니다. 폴크스바겐이 개발한 OS를 그룹 내 연간 1000만대 차량에만 이식해도 단숨에 모빌리티 서비스를 확산시킬 수 있죠. 도요타 역시 자체 연간 판매대수 1000만대, 일본 내 스바루·스즈키·마쓰다 등 자본제휴로 연결된 ‘연합군’을 합치면 연 1600만대이니, 이 차량들에만 자체 OS를 이식해도 단숨에 스케일을 키울 수 있습니다.

폴크스바겐이나 도요타 같은 기업이 자동차 소프트웨어를 장악하게 되면 반도체 공급망에도 큰 재편이 일어나게 될 겁니다. 그리고 지금은 모두가 반도체 공급망 부족 사태로 고통받고 있지만, 다음번에는 자동차 기업 간의 피해 정도가 확연히 달라질 수도 있죠.

사실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도체 부족 사태에 휘말려 모두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태를 겪는 동안에 눈 앞의 해결에만 급급한 회사가 있고, 그것과 별개로 개발 역량을 소프트웨어 분야에 집중해 반도체를 포함한 전기·전자 아키텍처와 자동차 OS 내재화에 5000명, 1만명의 자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투입해 개발에 올인하는 회사도 있습니다. 그 차이는 이번 반도체 부족 사태가 끝난 뒤에 서서히 드러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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