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3. 9. 22:38ㆍ여행이야기

충북 청주시 흥덕구 석곡동 23-5에 있는 작은 야산에 '영모단(永慕壇)'의 모습이 보인다. 날씨가 흐리니 주변이 을씨년스럽다. 그 뒤로는 전원주택 단지도 보인다. 그러니까 죽은 자와 산 자가 같이 공존하는 곳이다. 물론 이 앞에도 작은 마을이 있다.



영모단 현판 왼쪽에는 '영친왕비하사액(英親王妃下賜額) 가혜 이방자(佳惠 李方子)'라고 되어 있다. 즉 조선의 마지막 영친왕비인 이방자 여사가 직접 글을 써서 하사한 현판인 것이다. 이것을 봐도 전주 이씨와 관련된 제단이라는 감이 온다.

현판이 걸려 있는 위쪽의 대들보에는 상량문이 적혀 있다. 제일 밑단에 '檀紀四千三百五年壬子三月九日未時立柱上樑乾坐巽向之儀 (단기 사천삼백오년 임자 삼월 구일 미시 입주상량 건좌손향지의)'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단기4305년(서기 1972년) 임자년 3월 9일 미시(오후 1시~3시)에 기둥을 세우고 상량(마룻대를 올림)하였으며, 건물은 건좌손향(북서쪽을 등지고 남동쪽을 향함)으로 자리 잡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 상단에는 건립 목적을 적었는데 廣平大君七代孫成均生員李公諱之白之壇 (광평대군 7대손 성균생원 이공 휘 지백지단) 失傳墓基於此地裁舊下祭有感斯 (묘소를 잃어버려 이곳에 단을 만들고 제사를 올리니 감회가 있도다) 永世不忘 追遠報本 (영원히 잊지 않고, 먼 조상을 추모하며 근본에 보답하노라) 하단 마룻대에는 축원 및 상량기록이 있는데 應天上之五光 備地上之五福 (하늘의 다섯 빛에 응하고, 땅의 오복을 갖추도다)


문이 잠겨 있어서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담장 너머로 사진을 찍었다. 비문 오른쪽 한자는 '正義大夫五原君(정의대부오원군)'이란 글자만 겨우 보인다. 정의대부(正義大夫)는 조선 시대 종2품 문관에게 주어지던 품계이다. 오늘날의 관직으로 치면 차관급에 해당하며, 조정의 핵심 고위 관료였음을 나타낸다.
'군(君)'은 왕족이나 공신에게 내리는 봉호인데 오원군(五原君)은 다음에 비석에 나올 '성균생원 이지백' 조부(祖父)인 이강(李綱, 1482~1545) 선생을 지칭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강(李綱)은 세종대왕의 다섯째 아들인 '광평대군(廣平大君)'의 증손자이다.
이지백 선생이 광평대군의 7대손이므로, 4대손인 오원군 이강 선생은 성균 생원 이지백의 증조부 또는 고조부 항렬에 해당된다. 비문에 이 호칭이 들어간 것은 가문이 왕실의 직계 후손이며, 고위 품계를 지녔음을 증명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영모단에서 왼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성균 생원 이지백의 단'이라는 비석이 있다. 비문에는 '成均生員李公諱之白之壇 (성균생원 이공 휘 지백지단) 宜人陽川許氏 (의인 양천 허씨), 宜人全州崔氏 (의인 전주 최씨) '로 쓰여 있다. 성균 생원에 합격했던 이지백이라는 사람과 첫째 부인 의인(정6품 문무관 부인의 품계)양천 허씨와 둘째 부인 전주 최씨를 함께 모신 것으로 보인다.
이지백이라는 사람은 생원시 합격 기록이 있다고 하는데 조선시대 과거 합격자 명부인 《국조방목》 등에 따르면, 전주 이씨(광평대군파) 가문의 '이지백(李之白)'은 '1579년(선조 12년) 기묘 식년시(式年試) 생원 3등'으로 합격한 기록이 있다고 한다.
비석 마지막 글자가 '단(壇)'으로 끝나는 것에 주목해야 하는데 이는 일반적인 묘비가 아니라, 뒤에 나오는 비문 내용에서 '묘소를 잃어버려[실전(失傳, 묘를 어디에 썼는지 잊어버림)]' 그분의 넋을 기리기 위해 제단을 만들고, 세운 설단비(設壇碑)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지백은 전주 이씨 가문의 후손으로, 세종대왕의 아들인 '광평대군(廣平大君)'의 7대손임을 밝히고 있고, 공의 선조들이 대대로 높은 관직(가선대부 등)을 지냈으며, 공 또한 학식과 덕망을 갖춘 인물이었음을 서술하고 있다.

{世惜哉 墓在淸原郡南二面鶴洞...( 세석재 묘재청원군남이면학동..) 失封塋久闕奠儀... (실봉영구궐전의...), 霜露一墮雪壤至痛... (상로일타설양지통...), 今如也 竪一石圖不朽... (금여야 수일석도불후...)으로 유추 해석하여 보건대 " 아깝도다! 묘소가 청원군 남이면 학동 언덕에 있었으나... 묘를 잃어버려(失傳) 오랫동안 제사를 올리지 못하였으니... 이제 돌 하나를 세워(비석) 조상의 덕이 썩지 않도록 도모하노라.}의 뜻이 아닌가 한다. 물론 이것은 나의 해석이니 틀려도 후손은 원망하지 마시기 바란다. 내가 찾아낸 것은 이 정도이므로

임인(壬寅) 9월 후학 오응국(吳應國) 삼가 짓고 쓰다.
내 멋대로 해석한다면, 전주 이씨 후손들이 자신들의 선조인 '이지백'의 묘소를 잃어버린 후, 오랜 세월이 흘러 1972년에 후손들이 힘을 모아 이곳에 영모단이라는 제단을 만들고, 건물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시기에 이방자 여사로부터 '영모단'이라는 친필 현판을 하사받아 건물의 격을 높였음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成均 生員'은 일반인의 눈높이로 볼 때 대단한 관직이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이렇게 영모단을 만들 이유가 있을까? 하여 제미나이 인공지능의 힘을 빌려보았다.
질문을 이렇게 하였다. ' 성균 생원이 높은 벼슬도 아닌데 이렇게 영모단을 만들고 추앙하는 것에 대해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데 어떤 뜻이 있을까?'
Gemini의 응답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성균관 생원'이라는 직함이 높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지만, 조선 시대의 가치관과 전주 이씨 광평대군파 가문의 내력을 살펴보면 이 단(壇)이 가지는 의미는 매우 특별합니다. 일반적인 상식을 넘어 후손들이 이토록 정성을 들인 이유를 몇 가지 측면에서 풀이해 드립니다.
1. '생원'이 가진 상징적 무게
조선 시대 생원시에 합격했다는 것은 단순히 공부를 좀 했다는 수준이 아니라, 전국 단위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국가로부터 공인받은 유학자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 성균관 입학 자격: 생원은 당시 최고의 국립 교육기관인 성균관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은 엘리트였습니다.
- 선비의 명예: 벼슬길에 나아가 큰 관직을 맡는 것도 중요했지만, 유교 사회에서는 평생 학문에 매진하며 절개를 지킨 '선비'로서의 삶 자체를 가문의 큰 자랑으로 여겼습니다.
2. '실전(失傳)'된 묘소에 대한 효심과 한(恨)
비문에 적힌 "서리와 이슬이 내릴 때마다 피눈물을 흘렸다"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후손들에게 조상의 묘소를 잃어버린 것은 커다란 불효이자 가문의 아픔이었습니다.
- 추원보본(追遠報本): 상량문에 적힌 이 글귀처럼, 조상의 뿌리를 잊지 않고 보답하는 것은 유교적 가치관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입니다.
- 정체성의 회복: 1972년이라는 비교적 최근에 단을 쌓고 건물을 세운 것은, 흩어져 있던 후손들이 마음을 모아 가문의 정체성을 다시 세우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3. 왕실 후손으로서의 자부심
이지백 선생은 세종대왕의 아들인 광평대군의 7대손입니다.
- 정의대부 오원군: 비석에 이지백 선생보다 훨씬 높은 직급인 조상 '오원군'을 함께 기록한 것은, 이 가문이 왕실의 직계 혈통임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 영친왕비의 현판: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비인 이방자 여사가 직접 '영모단'이라는 글씨를 써준 것은 이 가문이 왕실과 깊은 유대감을 가진 명문가임을 대외적으로 공인받은 것과 다름없습니다.
4. 교육적 목적과 가문의 결속
이러한 공간은 단순히 죽은 이를 기리는 곳을 넘어, 살아있는 후손들을 교육하는 장소입니다.
- 응천상지오광 비지상지오복: 상량문의 축원처럼 가문의 번창과 화합을 기원하는 상징적 구심점 역할을 합니다.
- 역사의 기록: 비문과 상량문에 상세한 내력을 적어둠으로써 후대 자손들이 자신들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잊지 않도록 기록 유산을 남긴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영모단은 단순히 '생원' 한 명을 모시는 곳이 아니라, '묘소를 잃어버린 조상을 향한 지극한 효심'과 '왕실 후손이라는 가문의 자부심'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정성의 결정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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