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글]나는 왜 박근혜를 찍었나… “잘살아 보세∼들으면 눈물나는 게 부모세대다”

2012. 12. 28. 14:27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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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령 주부·도예가

 

선거 날 투표를 하고 나오는데 직장인으로 보이는 두 젊은이가 말하는 걸 들었다. 이번에는 누가 되든지 세금을 많이 내야 할 것 같다고 걱정하는 목소리였다. 나도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양쪽 후보가 경쟁적으로 엄청난 복지공약을 쏟아낼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곤 했다.

나랏빚도 많은데 어디서 그 많은 돈을 조달할지 걱정되었다. 이번에 내가 박근혜 후보(지금은 당선인)를 찍은 이유는 특정 공약 때문도 아니고, 같은 여자라고 무조건 찍은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박 후보를 내세운 새누리당의 가치관이 내 정서 및 상식과 일치하기 때문이었다. 국가안보와 국경수호에 대한 단호한 의지, 자본주의와 사유재산에 대한 존중, 대미관계를 비롯한 외교에 온건한 태도, 최근 역사에 대한 평가 등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내가 생각하는 진보세력은 그동안 각종 시위에 젊은이들을 선동하여 사회를 뒤숭숭하게 했으며, 국제적 약속을 경시하는 태도를 보여 국가의 위상을 흔들고, 아이들에게 안보와 역사를 잘못 가르쳐 적과 동지를 혼동하게 했고, 국민 세금을 북한에 퍼 주었으며, 부모 세대를 꼴통으로 여기게끔 자식 세대를 부추겨 세대 간에 이간질을 했다.

이런 사람들에게 나라를 맡기면 국가재정을 탕진하고 과도한 세금으로 내 노후생활을 위협할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따라서 지난 국회의원 선거 때도 그랬고 이번 선거에서도 새누리당을 찍었다. 후보가 누가 나왔어도 나는 똑같았을 것이다.

나는 1950년대에 태어나 가난한 나라의 국민이 얼마나 서러운지 체험한 사람이다. 학교급식으로 나온 원조 빵을 먹으며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세’라는 노래를 외치던 세대이다. 아직도 이 노래를 읊조리면 눈물이 핑 돈다. 골목 어귀에서 떼를 지어 구걸하던 상이군인들과 봇짐을 이고 행상을 하던 전쟁미망인들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나는 우리나라가 짧은 시간에 절대빈곤에서 벗어나 다른 나라를 도와줄 정도가 된 것이 그저 신기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내 짧은 생에서 나라의 기적적인 변화를 목격하게 된 것이 가끔은 꿈을 꾸는 것 같다.

나는 우리나라가 이렇게 잘살도록 터를 닦아주신 부모님 세대에 고마움을 바친다. 물론 국가가 고속 성장하는 동안 생긴 그늘에서 생고생했던 분들의 아픔에도 경의를 표한다. 그러나 부정적인 면만 강조하며 그 시대를 잘 이끈 정치 경제 리더들의 공을 폄훼해서는 안 된다.

특히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나 새마을운동은 외국에서도 본받으려는 모범 사례이다. 그런데 일부 국민이 왜 업적을 부정하고 모욕하려는지 안타깝다. 이번 선거 기간에 단지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란 이유로 박근혜 후보가 모욕을 받았을 때 개인적인 잘못이나 정치적 능력에 대한 시비가 아니라 돌아가신 아버지의 명예를 모독하고 업적을 부인하라고 다그치는 것이 우리 정서에 맞지 않다고 느낀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을 거다.

문재인 후보가 선거 패배를 인정할 때 군중 속에서 누군가가 외치는 것을 TV를 통해 들었다. “국민이 무식해서 선거에 졌다”라고. 소위 진보를 외치는 젊은이들에게는 5060 어른 세대가 무식하게 보였나 보다.

사회의 낮은 곳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이 좀더 나은 복지와 분배를 외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입으로만 약자 편에 서고 실제로는 온갖 사회적 지위를 누리며 젊은이들에게 진보를 유행시키는 일부 사회지도층을 보면 가소롭다. 전 세계에서 몰락해 가는 사회주의를 대한민국에서 좀 배웠다 하는 사람들이 자랑스럽게 신봉하는 건 무슨 발상인지.

무조건 ‘강남타령’을 하며 굳이 강남에서 전세를 사는 지식층 부부인 40대 친척이 있다. 그들이 흥분하며 진보를 지지할 때 나는 의아함을 느꼈다. 그들 부모도 보수성향이고 그네들은 부모와 사회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은 편이다. 당연히 보수이겠거니 생각했는데, 그들도 결국 주위의 시선을 의식한 건 아닐까 의문이 들었다.

우리 부부는 다행히도 자식들과 정치적 일치를 이루었지만 내 주변 많은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들이 후보 지지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는 걸 보았다. 평소에 충분한 대화를 하지 못하고 지내다가 선거 때만 되면 서로를 무시하고 강요하고 분개하는 것은 아닌지.

경제적으로는 부모에게 의존하면서 부모가 말이라도 하고 싶어 건넬 때 “당신들은 뭘 모른다”며 입을 다물어 버리면 부모는 너무 슬프다. 얘들아, 부모 자식 간에 말 좀하고 살자. 선거에 졌다고 울고불고 하는 젊은이들에게 한마디하겠다. “지금 상황이 어려운 건 세계적 현상이다. 정당을 갈아 치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이럴 때 일수록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자. 정치선동꾼들에게 휘둘려 귀중한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자. 젊은이들의 싱싱한 시선을 과거로 돌리지 말고 세계로 돌려 보자.”

송미령 주부·도예가

:: 필자 소개 ::

55세(1957년생). 이화여대 철학과와 단국대 도예과(학사), 서울산업대 도예과(석사)를 졸업했다. 2005년 한전갤러리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에 참가했다.

오피니언팀 종합 report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