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러시아 공장 보고 충격… 국내보다 효율 높더라"

2017. 10. 26. 08:40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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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메랑 된 親노동정책] [下] 정년 앞둔 前 노조위원장의 고백

노조, 공정 분배에만 매달리느라 경쟁력·파이 키우는 것엔 소홀
시의원·구청장으로 밖에서 보니 세상의 시각은 판이하게 달라
현대자동차가 맞은 진짜 위기는 소비자·협력업체가 등 돌리는 것

이상범(60)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문화감성교육팀 기술주임은 1987년 현대차 노조 창립을 주도하고, 2대 노조위원장을 지낸 '노조 1세대'다. 올 연말 정년 퇴직한다. 하지만 현대차 노조원들은 그를 '배신자'라 부른다. 어떤 조합원은 그를 두고 "(친정인) 노조 등에 칼을 꽂았다"고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가 최근 사내 게시판과 개인 블로그에 공개적으로 "우리(노조)가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퇴출이 기다리고 있다는 냉엄한 현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지적했기 때문이다. 전·현직을 통틀어 현대차 전임 노조 간부가 노조 문제점을 공개 비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노조에 대한 마지막 충언"

지난 23일 울산 현대차 공장 앞에서 만난 그는 담담했다. "(최근 쓴) 글들은 퇴직을 앞둔 나의 노조에 대한 마지막 충언이면서 내 양심의 소리요 참회의 글"이라고도 했다.

이 주임은 2015년 2월 현대차 노조 전직 간부 등 13명과 함께 러시아와 중국 등 현대차 해외 공장을 방문했다. 그는 그곳에서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해외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자동차 생산량과 직행률(불량 등으로 공정이 멈춤 없이 생산되는 비율)이 국내 공장보다 월등히 높았기 때문이다. 이 주임은 "그제야 국내보다 해외에 공장을 늘리려는 경영자 심정을 이해했다"며 "일행 중 일부는 러시아 공장 생산 관련 숫자를 보며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다"고 말했다.

 

 

 

지난 23일 울산 북구 현대자동차 문화회관에서 이상범 현대차 기술주임이 노조 1세대이면서도 정년 퇴임을 앞두고 공개적으로 노조에 쓴소리를 한 이유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그는 “나의 발언이 현대차 노사가 변하는 데 작은 밑거름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종호 기자

 
지난 23일 울산 북구 현대자동차 문화회관에서 이상범 현대차 기술주임이 노조 1세대이면서도 정년 퇴임을 앞두고 공개적으로 노조에 쓴소리를 한 이유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그는 “나의 발언이 현대차 노사가 변하는 데 작은 밑거름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종호 기자
"국내 공장이 내세울 만한 게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노조가 회사에 고용 안정을 위해 해외 공장을 짓지 말라고 하는 게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결국 우리가 생산성과 품질 향상을 위해 노사 협력적 관계로 가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1979년 현대차에 입사한 이 주임은 30대 초반에 2대 노조위원장이 됐다. 당시 그는 사측을 압박해 인사고과 평가제도를 폐지하는 데 앞장섰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생각했던 '절대 선(善)'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고 했다. 고과 평가가 없으니 아무도 승진을 바라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적은 조직이 됐다는 것이다.

"노사가 2인3각 경기처럼 보조를 맞춰야 하는데 과도한 반발로 전체의 성장이나 발전을 더디게 하고 하향 평준화를 시키는 데 일조했다. 참회한다."

◇노조 외부 경험 통해 노조 현실 실감

두 번의 공직 경험도 이 주임 시각을 변화시켰다. 그는 1998년부터 2년간 울산시의원을 지냈고, 2002~2006년 현대차 공장이 있는 울산 북구 구청장을 지내고 복직했다. 당시 시의원은 전임이 아니어서 일과 병행했지만, 구청장 4년 동안은 회사를 떠나 있었다. 이 주임은 "현대차 노동자 지원을 받아 구청장이 됐지만, 나가니 안에서 안 보이던 게 보이더라"며 "노조 내부 세상과 노조를 바라보는 바깥세상은 판이하게 달랐다"고 했다.

 


 

 

 

그는 현대차 노조가 업무 강도를 낮추기 위해 사측 생산 물량 조절이나 인력 재배치를 금지하면서 회사 전체 경쟁력이 약화됐다고 봤다. "이익에 대한 공정한 분배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눠 가질 파이를 키우는 노력을 노조가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주임은 "노조원들은 중산층이 됐고, 사회·경제적으로 지위가 어느 정도 형성됐다"며 "그럼에도 계속 경제투쟁(임금 투쟁)에 머물러 있으면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수 있다"고 했다. "판매량 감소는 위기가 아니다. 진짜 위기는 국내 소비자와 협력업체들이 이러한 행태로 인해 등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사측도 책임이 있다고 했다. 항상 위기라면서 이익 등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고 협력업체를 쥐어짜는 행태를 반복해, 스스로 이미지를 악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 주임은 "실제로 '내가 망하더라도 꼭 현대차가 망하는 꼴을 보고 싶다'는 부품업체들이 수두룩하다"며 "누군가 희생을 바탕으로 한 우리끼리 잔치는 유지될 수 없다"고 했다.

인터뷰를 마치려고 할 즈음에 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공장 식당 게시판에 "후배가 마실 우물에 침 뱉지 말라"며 그를 비판하는 대자보가 붙었다는 전화였다. 그러나 이 주임은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런 말 자체를 할 수 없는 노조 분위기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것이다. 내가 노조를 팔아먹었는지 진실로 미래의 불행을 막아보려고 욕먹을 짓을 자초한 것인지…."

이 주임은 인터뷰 이후인 25일 현대차 사내 게시판에 '배신자 논란에 부쳐'라는 글을 다시 올렸다. "현재 우리가 처한 현실을 직시하고 스스로 발목을 잡는 내부의 적폐를 개혁하자"는 내용이다. 댓글에는 여러 개의 욕설과 함께 공감 의견도 많았다. 한 노조원은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바로 당신이었군요. 그 용기에 경의를 표합니다"라는 댓글을 남겼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0/26/201710260047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