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6. 19. 11:59ㆍ살아가는 이야기
참 야무지게도 쌌다. 우리 속담에 "개똥도 약에 쓸려면 없다"라는 말이 있다. 흔하디흔한 물건이라도 막상 긴요하게 사용할 순간에는 옆에 없다는 뜻일 것이다. 그래서 약에 쓰려고 저렇게 야무지게 개똥을 쌌는가? 오늘 아침 8시쯤에 욱수저수지 산책하러 가다가 중간에 있는 작은 공원 의자에 앉아 잠깐 쉬려니 옆의 의자에 갈색 비글 성견(成犬) 한 마리를 데리고 온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의자에 같이 앉았다가 떠난 자리에 뭔가 있어서(이미 직감했지만) 가보니 개가 싼 똥을 저렇게 의자에 놓아두고, 혹시 개똥을 약으로 쓰려는 사람이 뒤에 오면 가져가라는 정말 눈물겹고, 가상한 측은지심과 배려심으로 저렇게 한 것인가?
양아치 개 주인이 사람이 앉는 의자에 고이 버려두고 간 개똥을 보니 평생 안동 일직교회에서 종지기로 사셨던 '권정생' 선생의 동화 '강아지똥'이 생각난다. 권 선생의 강아지 똥은 민들레라도 피게 하였지만, 비글의 똥은 개와 개똥 혐오를 꽃피운다.
동화 강아지똥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시골의 어느 돌담 아래에 홀로 떨어진 강아지똥은 지나가는 참새나 흙조차 무시하는 하찮고, 냄새나는 존재였었지만, 봄비가 내리던 어느날, 강아지똥은 옆에 핀 민들레를 보게 된다. 민들레는 자신을 부러워하는 강아지똥에게 거름이 있어야 꽃을 피울 수 있다고 알려준다. 강아지똥은 생전 처음으로 들어보는 따뜻한 말과 세상 어디에도 쓸모없는 줄 알았던 자신이 새로운 생명을 꽃피우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감격한다. 강아지똥은 민들레의 바람대로 빗물을 기꺼이 받아 자신의 몸을 잘게 부수어 노란 민들레꽃을 피운다. 민들레꽃은 강아지똥의 눈물겨운 희생을 꽃 속에 담아 더욱 노랗게 피어난다.
어떻게 보면 고약처럼 보인다.
1시간 정도의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다가 다시 그곳으로 갔더니 누군가 의자에서 옆으로 던져버렸다. 그 사람은 약으로 쓸 개똥이 필요하지 않은 것 같다. 비닐에 싸인 저 개똥은 민들레도 피우지 못한다. 저런 인성을 가진 개 주인은 직장에서나 사회에서나 열등한 사람이라는 것은 보지 않아도 비디오다.
남들에게 개똥을 약으로 쓰라고 갸륵한 마음과 강아지똥을 놓고 간 비글과 그 양아치 주인의 보무도 당당한 뒷모습이다.
내 생각으로는 개에 대한 인식과 선호도가 절반의 국민은 좋아하고, 나머지 절반은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개고기를 먹는다고 개를 좋아한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자신의 개가 귀엽다고, 남이 다 귀엽다고 생각한다고 착각하는 것은 개 주인의 자유지만, 그것은 무지의 소치다.
현 대통령이 용산 대통령실로 처음 출근하면서 출근길을 배웅하는 그의 부인과 그녀가 데리고 나온 개 두 마리 중 한 마리가 1호차에 탔다가 내린다. 그런데 기가 막힌 것은 개를 보고 "아빠 따라가고 싶어?" 비스무리한 말이었다. 대통령은 자연인 윤모가 아니다. 아주 공적인 사람이다. 그리고 국가원수다. TV 카메라가 돌아가는 가운데 졸지에 우리나라의 국가원수가 개 아빠가 되었다. 아무리 개가 귀엽더라도 공적인 장소에서는 그에 어울릴 만한 말을 해야지 정말 아쉬웠다. 나는 졸지에 개 아빠가 국가원수로 있는 국가의 국민이 되었다. 참으로 서글픈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일반 여염집 가정 안에서는 사람이 개 애비가 되든지 개 어미가 되든지 개 오빠가 되든지 언니가 되든지 말든지는 상관없다. 밖에서는 자제하는 것이 어떨까? 아니 상관없는 것보다도 아무리 개가 반려동물이고, 가족처럼 지낸다고 해도 개 애비와 어미라는 말이 쉽게 입에서 나오는가? 그런 어처구니없는 말을 듣고도 당연시하는 요즘 세태도 큰 문제라고 본다.
이 젊은 친구가 이 광경을 보면 좋겠지만, 만약 보지 않더라도 동네에 다니면서 동네 이웃 어른에게 공손하게 인사하고, 이른 아침에 아파트 주변 개 산책시키면서 개똥 남에게 약에 쓰라고 그냥 두는 배려심을 거두어 주었으면 좋겠다. 그런 행태를 버리지 못한다면 그대의 미래도 언필칭 개똥처럼 천대받게 될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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