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3. 14. 08:18ㆍ잡다한 글
그 사람을 가졌는가
함석헌
만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두거라’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하며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왼쪽이 씨알 함석헌 선생이고 오른쪽이 다석 유영모 선생
왜 함석헌 선생의 詩에 뜬금없이 多夕 유영모 선생의 사진을 올렸던가? 씨알 함석헌 선생은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 있어도 다석 선생은 잘 모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함석헌 선생은 다석 유영모 선생이 가장 아끼던 제자였다고 한다.
며칠 전에 길손의 직장에서 특이한 부고가 올라왔다. 아버지와 장인이 마치 사전에 약속이라도 한듯이 같은 날 세상을 떠난 것이다. 한집에서 사셨던 것도 아니고, 수백리 먼길 떨어져 살았는데 우연치고는 정말로 기괴한 우연이다.
류영모(柳永模 1890년 3월 13일 ~ 1981년 2월 3일) 선생은 서울 출생으로 한국의 개신교 사상가이며, 교육자, 철학자, 종교가이다. 호는 다석(多夕)이다. 조만식, 김교신 등과 같은 세대로, 함석헌, 김흥호, 박영호, 이현필 등의 스승이다. 다석(多夕)은 많은 세 끼(多)를 다 먹지 않고 저녁(夕) 한 끼만 먹는다는 뜻이라고 한다.
함석헌(咸錫憲 1901년 3월 13일 ~ 1989년 2월 4일) 선생은 평안북도 용천 출생으로 기독교 문필가, 민중운동가이다. 호는 '씨알'이다. 길손은 씨알 사상에 대해 자세히는 모른다. 그저 씨알이라는 것은 열매나 종자 쯤으로 생각하지만, 그것은 힘 없는 민중일 수도 있고, 민초일 수도 있다. 두 선생의 '씨알'에는 엄청난 思想이 숨어져 있을 것이다.
유영모 선생이나 함석헌 선생은 평생 하루 한 끼 만의 식사를 하였는데도 함석헌 선생은 얼굴이 마치 어린아이의 얼굴처럼 맑았다고 한다. 유영모 선생은 함석헌 선생보다 생물학적인 나이는 비록 11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지만, 함석헌 선생은 스승으로 깍듯이 모셨다고 한다.
이곳에서도 스승과 제자의 기이한 인연이 있다. 현재까지 나타난 이력으로 보면, 두 선생이 출생일이 같고, 세상 졸업하신 날이 하루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함석헌 선생은 스승이 돌아가신 2월 3일을 넘기지 못할 것 같았으나 선생은 스승의 기일에 불손하게 죽을 수가 없다며, 기어이 스승의 기일 다음날 돌아가셨다고 한다. 간혹 佛家에서 스님들이 스스로의 입적일을 상좌에게 말하고 그날 자신의 방에서 조용히 입적하였다는 전설같은 얘기가 전해지지만, 다석 유영모 선생과 씨알 함석헌 선생의 인연은 쉽게 설명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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