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3. 31. 17:02ㆍ잡다한 글
위의 섬은 군함을 닮았다고 해서 '군함도(軍艦島)', 일본말로는 '군칸지마'다. 지옥섬인 이곳은 우리의 선조들이 일제 강점기에 이곳에 끌려와서 강제노역에 시달리다 목숨을 잃었던 사례가 비일비재하였다고 한다. 최근 이곳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려는 일본때문에 그것을 반대하는 우리정부의 발걸음도 바빠졌다.
군함도는 두 번째 원폭이 투하된 나가사키항으로부터 약 18Km 떨어진 곳에 있는 길이 480m, 넓이 160m 의 작은섬으로 약 23,300평 정도의 넓이다. 당초의 섬 넓이는 현재의 절반정도였으나 시멘트 매립으로 지금의 크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1887년부터 1974년까지 석탄이 채굴되었다고 하며, 또한 이곳에는 일본 최초의 9층 규모의 아파트 단지가 건설되었고, 학교와 영화관도 있었다고 한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군함도는 해저탄광이기 때문에 석탄을 캐기 위해서는 해저 1,000m까지 내려갔다고 한다.
해수의 압력으로 갱내로 바닷물이 쏟아져 내렸고, 내부 갱에는 45도에 육박하는 온도 때문에 작업자들이 큰 고통을 겪었다고 한다. 1974년(昭和 49) 1월 폐광되면서 같은 해 4월에 주민들이 일제히 퇴거하여 무인도가 되었다고 한다. 1955년(昭和 30)경에는 세계 최고의 인구밀도인 5,300명이 거주하였으며 묘지를 제외한 학교, 병원, 영화관, 상점, 여관, 절과 신사도 있었다고 한다.
물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환경을 타개하기 위해 일본 최초의 해저수도가 부설되었고 식물을 키우기 위해 옥상정원을 조성하는 등 당시에는 첨단기술이 도입되었다고 한다. 아래의 동영상을 보면 냉장고, 텔레비젼, 세탁기 등 각종 가전제품이 있는 아파트 내부의 모습은 현재의 아파트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기 때문에 당시에는 주민들이 유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죽지 않고서는 섬 밖으로 나올 수가 없다는 미국의 유명한 알카트라즈 섬처럼 그 자체로 감옥인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한인 징용자가 처참한 강제노역에 시달리다가 그리운 부모형제와 고국산천을 그리면서 이국의 고혼이 되었을까 참으로 가슴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조선인 징용자들은 일본인보다 훨씬 위험한 곳에서 일했으며, 바람이 강한 날에는 숙소까지 바닷물이 튀었다고 한다. 조선인들은 좁은 갱내에서 구부려 걸으면서 석탄을 캤고 대바구니에 가득 담은 석탄을 100∼200m를 기어서 날랐다고 한다. 탈출하다 붙잡히면 거꾸로 매달아 솔잎을 태워 그슬리는 가혹한 징벌을 받기도 했고 심지어 목숨을 잃기까지 했다고 한다.
아래 주소는 군함도를 소개하는 홈페이지 '군칸지마 오딧세이'
http://www.gunkanjima-odyssey.com/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습니다. 누군가 우둔한 사람은 경험에 의해서 배우고, 현명한 사람은 역사에서 배운다고 했습니다. 일본은 우리에게 천추에 씻지 못할 고통을 준 이웃 나라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적에게도 배울 점은 많이 있습니다. 또 그 장벽을 넘어서야만 극일(克日)의 발판을 마련할 수가 있습니다.
문경 가은 탄광과 같은 곳에서도 석탄을 캐기가 어려웠던 시기에 좁디 좁은 섬을 통해 해저 1,000m를 내려가는 악조건에서도 석탄을 채굴하고, 또 그곳에 철저한 도시계획(?)으로 주민 주거시설과 편의시설을 만들어 생활했던 것에 경이로움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늘 우리가 하는 말이 있습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마라'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일본사람들이 한국사람에게 행한 죄악은 필설로 다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선린우호를 하여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가 초가집에서 생활하던 때에 콘크리트 아파트를 세우고 해저수도를 이용하여 물을 공급하는 등 당시의 첨단기술은 오늘의 일본을 있게 한 원동력이라고 봅니다.
최근 보수 꼴통인 아베때문에 양국 관계가 파탄지경입니다 그러나 일본에도 양심적인 사람들이 분명이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일본이 밉더라도 모든 일본인들을 미워한다면 그것도 옳은 방법이 아니라고 봅니다. 일본의 좋은 점은 배우고, 나쁜 점은 버리는 실사구시가 더욱 필요한 때입니다.
위의 건물은 군함도의 소학교와 중학교 건물이라고 한다.
교실 내부 모습인데 예상보다 넓다.
야전(야외전축) 같은 것도 있다.
칠판에는 당시 선생님이 판서한 칠판도 있고,
건물 밑으로는 이렇게 길쭉한 파일을 박아서 바닷물이 드나든다.
제법 넓은 공간인데 아마도 강당으로 추정된다.
병원 모습이다.
뢴트겐(X-Ray) 촬영기
어린이를 위한 보육원
여자 공중목욕탕
광부들이 사용했던 공동목욕탕
이곳에서도 단축 마라톤과 같은 운동을 한 듯한데 올라가기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지옥계단이라도 하였을까?
지옥계단 밑에 많은 폐기물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큰 태풍때문에 이곳이 잠긴 것 같다.
옥상정원으로 추정된다.
석탄 갱도가 저렇게 해저로 들어갔다. 정말 대단하다
저 사진 속에는 우리의 할아버지도 계시겠지?
'해저 수도'가 수원지로부터 송수관과 정수장을 통해 군함도로 공급되는 것을 보여주는 그림
해저수도 취입구
전기를 공급하던 전선이 아직도 그곳에 있다.
저수 탱크
상점
우체국
파출소
천복사 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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