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천적으로 겁이 많은 편이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어떤 형상에게도 무서움이 많다. 즉 귀신이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죽은자의 영역이나 그 언저리를 떠올리는 것은 좋지 않은 느낌이고 불쾌한 느낌이라고
생각한다. 흉가,귀신,여우,가마귀 등은 좋은 느낌보다는 음의 기운이 더 크게 느껴져서 기왕이면
회피하고 싶은 단어들일 것이다.
인터넷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정말로 강심장을 가진 분을 보았다
어쩌면 그 호기가 부럽기도 하고, 산속에 홀로 노숙하는 것이 정말일까? 라는 의구심도
그의 블로그에 올린 글과 사진을 보면 그 의문도 사라진다
그분의 성함은 "조정래"님 이다
동명이인으로 유명한 작가가 실존하지만 그 동명이인인 이분도 글쓰기를 좋아하고
실력도 상당한 경지에 올랐다는 생각도 든다
나는 이분과 한번도 조우한 적도, 전화 한통한 적도 없지만은
그분에 대한 경외심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와 여기에 조정래님의 글을 소개한다.
출처 : 조정래 blog.chosun.com/cho5973
http://blog.chosun.com/blog.log.view.screen?userId=cho5973&logId=3687681
제목 : 여우골 공동묘지에서 하룻 밤을
곧 보름이다.
보름이 다가오면 산골 어린아이들은 유독 귀신 이야기들이 많았다.
쥐불놀이니 달맞이를 위하여 앞산에 올라 각 마을마다 달 맞이 불놀이 대회를 하면서
자연 컴컴한 논두렁이니 산길을 다니면서 홑진 곳에서 귀신불을 보았다는 이야기가 돌고
보름이 지나고 아예 귀신 날을 정하여 마을로 들어오는 잡귀신을 물리친다며 마을 앞 천방 둑이니,
논두렁이니 마음 놓고 불을 지르고 하여도 마을 어르신들이 고함을 지르지 않았을 정도다.
반세기 전만 하여도 우리는 작은 산골에 올망졸망 모여서 살다가 천수를 다하거나
혹은 어린나이에 저세상으로 간다하여도 그리 멀리 가지를 아니하고 가까운 마을 뒷산에 묘를
쓰고 자라나는 어린 아이들은 늘 망자가 누워있는 묘 터에서 평상시처럼 뒹굴고 놀면서 자랐다.
죽은 자와 산자가 이처럼 어우러져서 살아가는 민족도 드물었다.
그래선지 정겨운 도깨비 이야기도 나오고
통시귀신도 있고
우물귀신도 있고
다리 없는 처녀귀신 이야기도 있다.
쪽박새가 슬피 울어도 시어머니가 쪽박을 너무 작은 것을 주어 며느리가 굶어 죽었고
그 원혼이 매일밤 마을 뒷산에서 운다고 믿었던 민족이다.
겨울밤은 결국 그런 귀신이야기로 가슴콩당거리며 참 재미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억울하게 죽은 자의 限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라고
죄를 멀리 할 줄 아는 청년으로 자란다고 보는 사람이다.
조금은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우리주변에 그런 魂 이야기들이 사라지고 아파트 공간 속에서
살게 되면서 자연 孝도 사라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귀신 이야기가 없는 아파트 공간을 버리고 차를 철원 자 일리 공동묘지 여우 골로 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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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을 지나고 운천을 지나 철원으로 향하다가 자일리에서 좌회전하여 여우골 공동묘지
초입에 있는 솔밭이다. 대한민국 최초로 이미 1990년 부터 필자가 지인들과 주말에 가끔 노숙산중이 이루어지던
자리이고 땅의 기가 가장 드센 곳이기도 하다.
순수 우리 말로 대낮에도 섬짓함이 스며드는
"홑진 자리다"
명성산 줄기의 북쪽이라서 햇빛도 그리 없고 음침한데..그래서 서울이 영하 13도일 때 여우골 공동묘지 솔밭에는 약 19도가 되고
지난해는 소주가 얼고 맥주병이 얼어 터졌던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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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를 한 자리이다. 유골은 어디가고 구덩이만 남았다
망자는 죽으면 단 1cm움직이지를 못하는데...
살아 있는 자들이 죽은 자를 자기 욕심으로 이리 저리 파 옮긴다. 모 대통령이 선영을 옮긴 이후에 당선이 되었다는 소문으로
혹은 여기저기 공장이다 신도시다 개발 붐으로 인하여
최근들어서 이땅에 망자들은 죽어서도 이리 저리 이사를 다니스는 것이 유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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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일리 주민에 의하면 옛날 이 여우골 공도묘지는 어린 아이 무덤이 많아다고 한다. 어린 아이 무덤은 애촉 혹은 애총 으로 불렸는데...자연속 담백질 수평 이동 법칙에 의하여
그런 계곡에는 늘 여우들이 살았다. 여우들이 설치니 한 때는 옹기 안에 어린 시신을 넣어서 묻었던 나라다. 이제 쉽게 죽은 인육을 접할 수 없는 시절이라 그런지 여우도 이땅에서 사라졌지만 공동묘지 초입에는 아직 눈이 녹지 아니하고 그 눈 위로 산짐승 발자국이 여기저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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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럭 바위다.
궁예가 아우 왕건이에게 철원성을 빼앗끼고 이곳 명성산에 피신 하였는데...
산이 워낙 험하여 왕건 군사들이 몇 달을 총 공격을 해도 궁예를 잡을 수 없었다. 그때 홀연 백발 노인이 나타나서
"소등을 타거라"
하여 여우 고개를 넘어서 산 등을 타고 공략을 하여 궁예 패잔병에게 승리를 이루었다는
구전이 있는데..이 더럭 바위에서 궁예의 목을 쳤다는 설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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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묘지 초입에 있는 화장실이다.
이 화장실 가까운 곳에 젊은 총각이 두명이나 목을 멘 소나무가 있다.
왜 인간들은 스스로 목숨을 버릴 때 ....오감으로 느끼는 기가 쎈 곳 즉
홑 진 곳을 택할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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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이 너무 홑져서...후레쉬를 터트려 찍어 보았다.
나는 이미 이 화장실을 15년 넘게...솔밭 노숙시에 사용해 본 사람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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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묘지 초입에 노숙 자리를 마련하고 같이 온 지인들은 솔밭 안 쪽으로 탠트를 쳤다.
나는 탠트가 없다. 캠퍼가 아니고 그냥 노숙자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醉中臥山하면
天地가 衾寢다.
전쟁시 사망자가 발생하면 죽은 시체을 담는 (사진의 밑 바닥에 깔린 것) 자루에 방산시장에가서 보일러 줄을 3만원 주고 깔았다.
사망자 즉 시체담는 통이지만 품질이 좋아서 땅의 습기가 차 오르지 못하고 더욱이 사망자 얼굴과 군 인식번호 판은 투명 창으로 되어 있어 그 속에 들어가 하늘을 보고 누웠노라면
밤 하늘에 별도 총총 하게 볼 수 있는 아주 좋은 자루다.
필자와 노숙을 즐기던 분중에 이곳에서 한밤중 ...늙은 할머니가 자꾸 탠트 밖에서 부르는 모습을 보고 혼비백산하여 탠트를
바로 철수 하고 이제는 캠핑도 다니질 아니하신다.
그 이후 또 다른 분이 나를 따라 이곳에서 탠트를 쳤다가 두 부부가 놀란 일이 벌어 졌다. 그리고 그분도 이제 여우골 공동묘지 초입에 있는 솔밭 갬핑은 오지를 않는다.
다들 겁을 먹으니 내가 공동묘지 초입에 있는 묘 바로 앞 자리에서 그냥 탠트 없이 영하 17에서
하룻 밤을 보냈다.
과부 귀신이라도 잠든 나를 깨울 줄 알았더니 ...그런 일은 없었고
다만 같이 오신 자연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밤에 여우골 쪽에서 요상한 짐승 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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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돈 2만5천원으로 만든 장작불 보일러 이다. 장작불에 동파이프를 걸치고 스팀 보일러를 가동했더니 금방 더운 물이 가득이다.
영하 17도라도 좋은 밤이 될 것이다. 인간은 숨을 쉬므로 탠트 없이 추운 겨울에 노숙을 할 때는 자연 숨이 침낭 외피에 얼어 붙어 얼음 조각이 떨어지도 하지만
참으로 오랜만에 솔 향기 가득한 곳에서 깊은 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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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튼 날 낡이 밝아서
어디 여우라도 만날 겸 공몽묘지 여울 골을 올라가는데... 여기저기 유골을 파 옮긴 자리가 또 보인다. 아마 차도 못 들어오는 깊은 산중이라서 시사 지내기 불편하여 옮겼으리라...
한참을 여우 골 깊숙이 들어가니 짐승 똥을 발견했다.
노루 똥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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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무슨 산중 귀물인가?
노루 뿔이다.
원시시대 충분히 무기로 사용하여도 될 노루 뿔이다. 잘 간수하면 천년은 족히 간다는 노루 뿔이다.
여우골에서 긴 겨울 밤 魂은 무엇이고 生은 무엇인지를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가슴에 남는 것은 참으로 많다.
서울로 돌아오는 내 손에는 ...여우골 노루 뿔이 쥐여 져 있었다.
끝.
구름아 그름아 하는 넘이 오랜만에 공동묘지에서 하룻 밤 노숙을 하고 돌아 왔다.
살아있는 사람들이 죽은 사람을 겁을내지만 죽은 망자는 단 한번도 산자를 죽인 일이없다.
그런대
디지탈 세월이 각박하다보니
살아 있는 자들이
살아 있는 죄 없는 나약한 사람들을 막 죽이는 세월이다.
그래서
서울 아파트 단지 안에서 문 걸고 잠자는 것보다
여우골 공동묘지에서 하룻 밤이 더 편안하게 잠들었는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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