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경주 지진, 無知가 쌓아올린 공포의 탑

2016. 9. 23. 14:46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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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2일의 경주 지진을 누구나 '강진(强震)'이라고 얘기한다.

'규모 5.8의 강진 한반도를 흔들다' '진도 5.8 강진에도 피해 적은 이유는?' 미디어들조차 마찬가지다. 그런데 진짜로 '강진'일까?

고베(神戶) 일대에서 처참한 피해가 났던 1995년 일본의 한신(阪神) 대지진이나 지진해일이 해안 마을을 덮친 2011년 도호쿠(東北) 대지진 때 미디어들은 '모든 것이 파괴되는 진도 7'의 표현을 썼다. 5.8이면 어느 정도나 강한 것일까?

사실 '진도 5.8의 강진'이란 말은 표현 자체가 틀렸다. 5.8은 진도가 아니고, 강진도 아니다.

지진의 힘을 나타내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규모(規模)'다. '매그니튜드' 수치를 사용하는데, 지진의 체급을 나타내 준다. 이 지표로는 6~7 정도가 강진이고 그 이상이 '대지진'이다. 그런데 '규모'는 실제 체감 충격과는 다르다. 헤비급 선수의 주먹이라도 스쳐 맞거나 두꺼운 쿠션 위로 맞으면 큰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있듯이 지진이 지표에서 깊은 곳에서 일어났거나 먼바다에서 일어났다면 피해가 적을 수 있다. 반대로 작은 규모의 지진에도 피해는 클 수 있다.

이 때문에 추가로 사용하는 지표가 '진도(震度)'다. 실제로 얼마나 흔들렸는지를 본다. 같은 지진에도 진도는 지역마다 다르다. 지진이 많이 나는 일본은 자체 진도 기준이 있는데, 0부터 시작해서 7이 최고다. 진도 5부터 강진이라고 부른다. 한신과 도호쿠 지진의 진도가 최고 7이란 것은 이 기준에 따른 것이다. 30% 이상의 가옥이 무너지고 땅에 단층이 생기는 수준이다. 지난 4월 구마모토(熊本) 지진도 진도 7이었다.


한국도 과거엔 일본식 기준을 사용했는데, 2001년부터 미국 등에 맞춰 '메르칼리 진도'를 쓰기 시작했다. 1부터 12까지로 나뉘는데 특별히 '강진'의 기준은 없다. 다만 일본의 강진 기준인 벽에 금이 가고 건물이 무너지는 수준(진도 5)이라면 7~8 정도이다. 이번 지진은 가장 심하게 흔들렸던 경주의 진도가 메르칼리 진도 6에 해당하는데 일본식 진도로는 4 정도다. 엄밀히 말하면 '중진(中震)'인 셈이다.

별것 아닌 수준의 지진이니 대비하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 대부분의 국민에게 딛고 있던 발판이 흔들린다는 것은 낯설고 두려운 경험일 것이다. 당황도 했고, 재난 문자도 늦었고, 방송은 계속 딴청이었다. 컨트롤타워 확립이니, 비상경보 체계 정비니 할 일이 너무 많다.

그러나 가장 필요한 것은 '지진에 대해 아는 것'이다. 지진은 대비할 수 없는 재해도 아니고 극복할 수 없는 재앙도 아니다. 지진에 익숙한 일본과 비교하긴 어렵지만, 일본에서는 최근엔 경주 지진보다 강한 일본식 진도 5, 심지어는 6의 강진에도 좀처럼 큰 피해가 나지 않는다 . 하지만 아무리 경보 체계나 내진 설비가 갖춰져 있어도 규모가 뭔지, 진도가 뭔지, 현재 지진의 수준이 객관적으로 어느 정도이며 얼마나 위험한지를 국민 스스로가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면 제대로 된 대응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무지는 패닉으로, 그리고 더 큰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 할 일이 많지만 일단은 국민의 지식부터 쌓아주는 것이 우선이라는 얘기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