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왕산 송별산행(주산지)

2016. 12. 6. 11:04여행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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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늦가을 단풍이 들었을 때 주산지를 왔었는데 이번에는 초목의 잎이 모두 떨어진 황량하고 차가운 기운이 감돌 때 다시 찾았다. 주산지의 사계가 멋있다고 하는데 사계 중에서 눈이 오기 전의 이맘때가 가장 을씨년스런 풍경이 아닌가 한다.

 

 

 

 

 

 

 

 

주산지 둑 왼편에는 돌출된 바위가 있고 그 위에 홈을 파서 작은 비석을 세웠다. 옛사람들도 이 비석을 오래 보존하기 위해 단단한 바위에 세웠나 보다 천지개벽이 일어도 이 비석은 영원하리라는 믿음에서

 

 

 

 

 

비석 전면에 청나라 건륭제 36년(청나라 연호를 썼으니 자존심은 상하지만)에 축조된 것으로 '이공제언성공송덕비(李公提堰成功頌徳)'라는 글귀가 새겨졌는데 아마도 길손의 빈약한 해석으로는 '이 씨라는 사람이 제방을 축조했는데 대해 그 덕을 칭송하는 비석' 으로 해석한다. 이름이 '이제언(李提堰)'이라면 이름자에 방죽 '제(提)'와 보(洑)를 뜻하는 '언'을 넣었다면 이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운명적으로 천생 둑을 만들고 개울에 보(洑)를 낼 사람이다.

 

비석 왼쪽에는 작은 글씨로 ['일장저수(一障貯水), 류혜만인(流惠萬人),불망천추(不忘千秋), 유일편갈(惟一片碣)] 새겨져 있는데 비석이 일부 깨져서 人이 보이지 않고, 불망천추, 유일편갈도 너무 희미해서 탁본이 아니면 제대로 판독도 못하겠다. 비문의 내용은 '정성으로 둑을 만들고 물을 가두어 만인에게 베푸노니 그 뜻을 길이 남기기 위해 이 한 조각 碑를 세운다'라고 해석한다.

 

밑에 금줄이 쳐진 것으로 보아 몽리자들은 이 비석을 신령스럽게 보았는 듯하다.

 

 

 

 

 

비석 뒤편에는 송덕비를 세운 사람과 축조 시기를 새겨놓았다. 그런데 이해 못할 것은 앞면에는 '건륭36년 시묘시월일'에 세웠다고 했는데 뒷면에는 '강희59년 경자팔월시역축시월일필역작자육십육명'이라고 되어있다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뜬금없는 소린가? 청의 통치시기를 보면 강희제(1662~1722년), 옹정제(1723~1735년), 건륭제(1736~1795년)인데~

 

 

 

 

 

물에 잠긴 늙은 왕버들도 잎을 떨구고 힘겹게 겨울을 나고 있다.

 

 

 

 

 

 

 

 

 

 

야생동물 관찰 카메라가 나무에 달려있다. 이곳에 서식하는 야생동물을 포착하려고 설치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곳에 솔부엉이, 원앙, 수달, 하늘다람쥐 등이 서식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