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0. 28. 17:30ㆍ취미이야기
가을철에는 주변이 단풍이 좋고, 여름에는 시원해서 인기가 좋다는 '팔공 cc' 에 오는 길이다. 꼭 한번 오고 싶었는데 그 기회가 온 것이다.
1987년 7월 25일 개장하였으니 32년이 넘어서 클럽하우스도 크게 세련되지 못하고 늙은이 냄새를 풍긴다.
이미 다른 곳에 다 설치된 것을 늦게 도입하였나 보다
라운딩에 들어가지 전에 주변 산을 살펴보니 아직 단풍이 절정에 이른 것은 아니다. 일주일이 지나면 온 산이 붉게 물 들 것 같다.
클럽하우스 뒤편, 스타트 하우스 그늘집이다. 저곳에서 IN, OUT 코스가 시작된다.
OUT 코스 1번 홀인데 팔공산의 산세를 닮아서 첫 홀부터 그 경사가 보통이 아니다. 모두 잔뜩 어깨와 몸에 힘이 들어간다. 드라이버 샷이 오른쪽으로 밀리면서 김이 빠진다. 150m 정도로 한심하게 나갔다.
저렇게 경사가 있는데 세컨 샷을 22도 유틸리티로 쳤는데 그만 뒤땅이 난다. 이곳에서 세 번째 샷을 왼쪽 핀을 보고 25도 유틸리티로 치니 그린에 떨어지는가 했더니 가보니 그린 뒤편 작은 경사면에 공이 있다. 첫홀부터 더블 보기다.
저 밑에 티샷한 곳이 보인다.
왼쪽으로 휘어지는 파 5 도르렉 홀인데 표지판은 용량이 커서 올려지지 않는다. 왼쪽 카트길을 조준해서 치라고 한다. 드라이버가 아주 잘 맞았다.
주변 경치가 눈에 들어온다. 공 치는 것보다 주변을 더 많이 둘러보면서 연신 감탄사를 발한다.
4번 홀은 파 4로 오르막을 넘어가서 왼쪽으로 완만하게 내려가는 홀이다.
길손은 중앙을 보고 쳤는데 언덕에 올리는데 성공했다.
언덕 위로 못 올린 사람도 있다.
만산홍엽(滿山紅葉)이란 표현이 약간 과장되지만, 붉은 단풍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길손의 공이 오른쪽으로 작게 보인다.
낙차가 50m 정도로 된 4번 파 5홀이 일직선으로 멋지게 펼쳐진다. 장쾌한 드라이버 샷이 나왔다.
4번 홀 그린에 와서 뒤로 돌아보니 정말 엄청나다. 그린에서 자칫하면 욕이 나올 뻔했다. 아니 욕이 나왔다. 무슨 그린이 경사도 급하고, 그린에 고급 윤활유를 발랐는지 엄청나게 빠르다. 투 퍼트는 어림도 없는 다른 나라 얘기다.
5번 파 3홀인데 이곳도 낙차가 조금 있지만, 팔공산 골 맞바람이 불어서 8번 아이언으로 부드럽게 스윙했더니 그린 가장자리에 떨어진다.
이런 홀이 나오면 조금 갑갑하지만, 앞의 상황을 애써 무시하고 휘두르면 공은 거짓말하지 않고 계곡을 뛰어넘는다. 동반자 모두 건너에 안착했다. 캐디는 왼쪽으로 치라고 했지만, 길손은 본능적으로 우측으로 겨냥했는데 상당한 거리를 올라갔다.
길손은 이곳이 처음이다. 장님 코끼리 더듬는다는 표현이 이곳 7번 홀에 어울린다. 티샷 박스에서 앞을 보니 도무지 가늠되지 않는다. 그냥 앞에 나무가 수북이 있다.
나무가 있는 도랑 너머로 간신히 페어웨이가 보이는데 오른쪽에 여유가 있는 것 같아서 길손은 중앙으로 보냈는데 동반자 한 명은 훅이 나면서 공이 왼쪽으로 아슬아슬케 넘어갔는데 넘어가서 잠정구를 치니 마니 하다가 그냥 가보니 약간 왼쪽으로 휘어졌고, 경사면이 길면서 정리정돈이 잘되어서 행운 볼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세컨 샷을 하기 좋은 곳으로 멀리 굴러 내려왔다.
OUT 코스 마지막 홀이다. 앞이 훤히 뚫린 공간이고 전장이 비교적 짧은 홀이어서 장타자라면 원 온을 노려볼 만도 하다. 길손도 맑은 타구음과 함께 흰 공이 만산홍엽을 가르면서 그린 40m 앞까지 굴러갔다.
그린에서 쳐다보니 경사가 제법으로 데굴데굴 구르기가 좋다. 사진상으로 오른쪽, 티샷 박스에서는 왼쪽으로 많이 밀리지만 않는다면 이 홀에서는 똥꼬에 힘을 넣고, 그립을 살짝 잡은 다음 몸통 회전을 하고 채를 휘두르면 바닥까지 내려올 수가 있다.
9번 홀 그린에서 마주 보이는 스타트 하우스가 제법 운치가 있다.
IN 코스 10번 파 4홀이다. 표지석을 당겨서 찍으니 용량이 커서 올리지 못한다. 뽀샵을 해야 하는데 프로그램도 없어서 그냥 올리지 않고 지나간다. 그늘집에서 막간에 마신 막걸리 두 잔의 효과가 나타났는데 심한 뽕 샷이 나고 첫 번째가 OB가 난다. 아마추어 더구나 초짜 골퍼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참 어지간하게도 재수가 없다. 왼쪽으로 보내면 어지간 하면 굴러내려 오는데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이 홀에서인가? 왼쪽 산에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고라니인가 하고 올려다보니 엉덩이에 흰털이 있는 고라니 비슷한 짐승이 겁도 없이 멀리 가지 않고 서 있다. 분명 고라니는 아니다. 아직까지 살면서 산에서 한 번도 본적이 없는 '노루'가 분명한 것 같아서 캐디에게 보라고 하니 시큰둥하다.
이곳도 웬만한 슬라이스는 팔공산이 안았다가 살포시 내려주니 똥꼬에 힘을 주고 마음껏 쳐보기 바란다.
12번 파 5홀 이곳에서도 오른쪽으로 심하게 밀리지만 않는다면 힘껏 내질러도 팔공산 산신령이 보우하사 왼쪽에 넉넉한 공간이 있기에 드라이버 페이스가 빵구가 나도록 쳐보길 권한다.
13번 파 3홀로 거리가 무려 178m이고 그것도 위로 경사진 곳이어서 살짝 걱정하다가 맞은편 경치를 보고 그 걱정도 잠시 잊는다. 모두 우드나 고구마를 잡는데 길손은 22도 고구마로 처바르니 그린에 올라간 것처럼 보였는데 가까이 가보니 그린에 5m 못 미쳐 떨어졌다.
이곳 골프장도 산골에 있다고 5시 정도가 되었는데 살짝 어두워지는 것 같다. 이곳에서 내리막 경사가 있으니 중앙을 보고 내지르면 산신령이 모두 안아준다고 한다나 만다나??
공이 굴러온 곳에서 티샷 박스 쪽을 보는데 제법 어스름한 기운이 감돈다.
14번 홀을 지나 15번 홀을 앞에 두고, 그늘집 앞에 서니 대단한 풍경이 펼쳐진다. 멀리 팔공산 봉의 실루엣도 보이고
클럽하우스와 멀리 제일 왼쪽의 OUT 코스 9번과 그 옆으로 좁게 1번 홀이 보인다. 굉장한 풍광이다.
15번 파 5홀이다. 이 홀은 오른쪽으로 휘어지는 도그렉 홀로 중앙으로 보이는 전봇대를 겨냥해서 180m를 치면 맞창(?)이 난단다. 그래서 사진으로 보이지 않는 동화사 미륵 대불을 목표(상당히 무엄하다)로 해서 오른쪽 나무숲을 넘기라고 하는데 200m는 쳐야 하니 자신 있는 사람만 그렇게 그쪽으로 치라고 했다. 공의 착지 지점 아래로는 경사가 상당히 가팔라서 공이 사정없이 굴러떨어진다. 동반자 중의 한 명은 그렇게 굴러서 260~270은 간 것 같았다.
라이트가 들어왔는데 이렇게 경사가 가파르다.
16번 파 3홀이다. 길손은 이런 경험이 처음이었다. 물론 동반자도 역시 그랬다.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광경인가? 풍경인가? 공을 치고 나가니 그린 주변에 작은 고라니 3마리가 밝은 불빛을 배경으로 서성거리고 있다. 생긴 형태가 고라니가 아니다. 10번 홀에서 잠깐 보았던 엉덩이가 흰털로 넓적하게 덮인 노루가 분명하다. 사람이 가까이 가도 도망갈 생각을 하지 않고 제 볼일을 본다. 동반자도 그들을 의식하지 않고 숏게임에 열중하는데 길손의 생각은 달랐다. 이런 희귀한 장면을 동영상으로 남기기 위해 폰을 가지러 급히 카트로 가려고 했지만 캐디 왈 '카트는 이미 다음 코스 저 아래로 보냈어요!!'하면서 관심조차 주지 않는다. 앳된 얼굴로 보아 캐디 밥 먹은지 몇 년되지 않은 듯하다. 마음은 조급해서 급한 경사면을 카트를 찾아 두 번 왕복하고 휴대폰을 가져오니 그 좋은 장면을 사라지고 없다. 길손은 라운딩 중에는 캐디도 휴대폰을 몸에 휴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아!!~~ 머피의 법칙이 팔공산 골프장에도 면면히 이어지는구나!
숨이 턱에 차도록 밑으로 내려간 카트에서 휴대폰을 들고 올라오니 이미 노루는 그린을 벗어나서 그림자 속에 선 길손을 보고 한 마리가 몹시 경계한다. 웃기는 넘이다. 가까이 있을 때는 경계를 하지 않더니 급하게 한 컷을 남긴다.
다음 홀부터는 이 사진처럼 길손의 멘탈은 급격히 붕괴가 되고, 숨이 차서 정신이 없는데 빨리 공을 치라고 초짜 캐디는 재촉하고
이렇게 좋은 곳에서 높은 뽕샷이 나더니 왼쪽으로 들어간다.
마지막 홀까지 진정이 되지 않는다. 역시 공을 치러가면 널푼수가 있는 캐디를 만나야 한다. 뭐가 급하다고 카트부터 저 밑으로 내려놓아서 고생을 시키는지 야속한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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