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망증(健忘症)과 남겨진 구두
2020. 9. 9. 19:16ㆍ살아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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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수골 공영주차장에 벗어놓은 구두가 덩그러니 있다. 오래전에 시골에서 상경한 시골 할머니가 시냇가에서 작은 돌로 때가 낀 흰 고무신을 정성스럽게 긁어서 하얗게 된 고무신을 신고, 아들이 사는 서울에 와서 난생처음 택시를 탔는데 택시가 떠난 길에는 할머니가 신고 왔던 하얀 고무신이 가지런히 남았다. 시골 할머니는 택시가 마치 자신이 사는 방처럼 깨끗하여 신발을 벗고 탄 것이니 탓할 수는 없지만, 그런 시절도 아닌데 저렇게 신발을 두고 간 사람은 분명 건망증 때문이리라.
신발아!! 너무 서러워하지 마라!! 자신에게 냄새나는 발도 집어넣고, 화가 나면 돌부리도 차고, 어느 길섶에서는 소변도 튀고, 이렇게 함부로 대하다가 물 설고, 낯선 욱수골에 이렇게 외롭게 혼자 두고 떠났다고~ 네 주인은 너의 충성됨을 모르고 버린 것이 아닐 것이니라! 아마도 세상사 풍파에 지치고, 힘이 들어서 잠깐 네 존재를 잊었나 보다.
아마도 네 주인은 승용차 트렁크에 있는 편한 슬리퍼로 갈아 신고 그만 너를 깜빡 잊고, 너를 두고 떠난 듯하구나! 오늘 밤 찬 서리를 맞고 하루를 넘기면 아마도 내일 네 주인을 너를 찾아 이곳에 올 것이니 서운함을 거두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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