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6. 3. 20:48ㆍ여행이야기
클럽 디 거창 cc에서 라운딩을 마친 후에 덕천서원 맞은 편 염소 고기를 파는 식당에서 반주를 마시고 불콰한 기분에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덕천서원'이라는 곳을 들린다. 덕천서원을 들어서자 마자 작은 듯하면서도 기품을 갖춘 '대앙정' 이 보인다. 그리고 단청이 눈에 들어온다. 내 상식으로는 궁궐이나 사찰을 제외하고는 호화롭다고 하여 건물에 단청 올리는 것을 금하였다고 하는데 혹시 단청을 올리고 곤장을 맞지는 않았을까?
이곳 덕천서원은 단종 복위를 꾀하다 사사(賜死)된 세종의 여섯 번째 아들 금성대군과 충장공(忠壯公) 이보흠(李甫欽)을 기린다. 왼쪽 비석에는 정민공금성대군기념탑(貞愍公錦城大君記念塔)이 있고, 오른쪽에는 충장공대전이선생기념탑(忠莊公大田李先生記念塔)이 있다. 금성대군 이유(錦城大君 李瑜)의 시호는 정민(貞愍)이다. 금성대군과 이보흠의 기념탑(사실은 기념비가 맞지만)이 나란히 같이 세워진 것은 금성대군과 당시 순흥부사였던 이보흠이 단종 복위를 위해 순흥부 고을 군사와 향리, 사람들을 모으는 한편, 경상도 도내의 사족(士族)들에게 편지와 격문을 돌려 동참을 권고하였다. 이렇게 의병을 일으켜 한성부로 가서 수양대군을 축출하고, 단종을 모셔서 와 복위할 것을 계획하였다. 오호통재라! 그러나 당시 순흥의 한 관노가 탈출하여 한성으로 달려가 세조에게 '금성대군이 순흥부사 이보흠과 함께 노산군(단종)의 복위를 꾀하고 있다.'라는 보고를 올려 결국 사사(賜死)되고 말았다.
충장공(忠壯公) 이보흠(李甫欽)의 행장을 기록한 신도비(神道碑)
금성대군 정민공 사적비
덕천서원 대문에 걸린 현판의 글씨를 해독하지 못하겠다. 아시는 분은 댓글로 알려주시면 고맙겠소!!
혹자는 덕천서원 본관의 알루미늄 새시를 보고 신구(新舊)의 오묘한 조화로 너그럽게 이해할 수 있겠으나 길손은 생각이 다르다. 만약 중수를 하였다면 옛 방식으로 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솔직하게 감출 수가 없었다.
서원 계단 아래에는 덕천서원 창건 유래가 적힌 작은 비문이 있다.
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220331010004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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