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6. 6. 18:51ㆍ여행이야기
2022년 6월 5일 오전 11시가 조금 넘은 시각 산막이옛길을 주마간산 격으로 구경하면서 걷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괴산군 칠성면 사평리 증전교차로 도로변에서 열리는 어떤 행사장이 보인다. '향토 방위전적비'를 앞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아 대충 짐작은 가는 데 가까이 가서 보니 제16회 괴산군 향토 방위 용사 추념 제가 열리는 중이다.
행사 안내문을 보니 보존회장, 유족회장 관련 보훈단체와 유족들이 참석했다.
괴산군 향토방위군이 북괴 패잔병과 전투를 벌였던 '군자산'이 앞으로 보인다. '괴산군 향토방위군'은 1949년 12월, 당시 괴산군의 남부 4개 면(증평·도안·사리·청안)의 청년방위대가 만들어지면서 출발했다. 당시 청년방위대는 초대 대대장에 고인이 된 홍익현씨와 배속장교로 유증규(괴산)·조시행(불정)·이광우(증평)씨가 부임하면서 조직됐다.
청년방위대는 1950년 6·25전쟁 발발 후 6개월 후인 12월 국민방위군으로 명칭이 바뀐다. 1951년 5월 다시 향토방위군으로 이름을 바꿔 대대본부, 연풍중대, 청천중대를 조직해 전투중대로 개편 후 육군 5군단에 배속됐다.
이후 향토방위군은 6.25전쟁에서 전공을 세운다. 북한 정예부대 10사단과 남부군 등은 낙동강 전투에서 타격을 입고, 괴산 낙영산·도명산·가령산과 쌍곡·군자산·칠보산·보배산을 거쳐 북으로 퇴각했다. 경북 문경에서 침입한 적 패잔병도 장연과 연풍을 거쳐 북상을 하던 중이었다.
이때 향토방위군은 이들의 북상 퇴로를 막기 위해 목숨을 건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그 기간이 무려 1년 10개월간 이어졌다. 무장공비와 북한군을 막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던지며 전공을 세운 것이다.
홍익현(2013년 작고) 대대장은 “향토방위군이 청천·칠성·연풍에서 패잔병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고 서술했다. 그러면서 “이들이 청천으로 들어와 괴산·칠성 등으로 북상해 보급기지를 확보했다면 괴산은 재앙을 면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증언했다. (출처 : 괴산 뉴스 1 김정수 기자)
사진 중앙 멀리는 산막이옛길이 있다.
https://www.news1.kr/articles/?3353078
https://blog.naver.com/ohmark/221968401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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