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9. 25. 22:01ㆍ살아가는 이야기
영천 포항 할매곰탕집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대창면으로 귀촌한 고향 친구의 집을 찾아가는 길이다. 일부러 들리려고 한 것은 아닌데 이 간판이 나를 멈추게 했다. 세로로 세워진 빨간 간판에 '성일가'라는 글귀가 있고, 그 위에는 지금은 고인이 된 故 신성일(본명 ; 강신성일, 강신영)이 길을 따라 진행하다 잠시 멈춘 길손에게 "저놈이 성일가에 들어오나 그냥 지나 가나 함 보자!"라는 표정으로 깍지 낀 두 손 위에 턱을 괴고, 쳐다 본다. 그러니 들어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아니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성일가(星一家)'는 故 신성일이 말년에 살았던 집이다. 그가 살아있을 때 한번 오고 싶은 생각이 있었으나 사실 나이 차이도 많이 나고, 그를 만나면 딱히 드릴 말씀도 없었기 때문에 방문할 용기를 내지 않았다는 표현이 맞다.
그가 나온 영화라고는 면 단위에 가설극장 假設劇場 [아주 길고 넓은 광목천으로 울타리를 만들고, 도둑 영화를 보기 위해 개구멍으로 들어가려는 어린 동심을 잡아내기 위해 완력이 있고, 험악하게 생긴 '기도(木戸番きどばん키도방 ; 문지기)'라는 사람이 출입문을 지키고 있었음]이 넓은 하천의 공터에 생기면,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 형, 누나들은 10원, 20원을 내고 들어가는데 우리는 돈도 없거니와 어리다고 들여보내 주지를 않는다. 그러면 가설극장 출입문의 뒤쪽 어둡고, 으슥한 곳으로 가서 광목천을 들치고, 낮은 포복으로 몰래 들어가려다가 기도에게 들켜서 흠씬 두들겨 맞고 온 적도 있었다. 그 시절 작은 자동차에 영화 포스트 그림을 달고, 동네를 누빌 때 신성일이나 윤정희, 남정임 등의 얼굴도 보였다. 신성일은 우리 부모들이나 형님, 누나들의 소위 우상이었다.
지금도 가설극장 바깥에서 발전기 돌아가는 소리와 영사기의 '촤르르~ 촤르르' 하면서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신성일이 윤정희와 키스하려는 결정적인 장면에 필름이 끊기거나 발전기가 고장 나서 천지가 암흑으로 변하면 안에서 한탄의 소리가 들리고, 그때를 틈타서 우리 악동들은 광목 울타리 포장을 들치고 안으로 들어가려고 용을 썼다.
티비에서 보았던 '성일가'가 보인다. 채약산(499.1m) 횟골 마지막 자락에 위치한 성일가의 파란 기와가 기품이 있다.
신성일은 이곳에 묻혔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말년에 10년 정도 이곳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가 영면한 곳은 그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작고 소박하다.
집 뒤 산에서 내려오는 물길을 따라 멋들어지게 돌로 도랑을 만들었다. 그의 섬세함이 돋보인다.
성일가 마당에서 앞쪽을 본다. 그도 풍수지리를 하는 사람의 조언을 구했을 것이다.
빛바래고 찢어진 영화의 한 장면이 세월 앞에서는 그 유명세가 모두 덧없음을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이 착잡하다.
이곳저곳을 눈에 넣고 있는데 키가 훤칠한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미남이 나타났다. 살짝 긴장하는데 아무런 말도 없고, 그저 그는 그의 일을 한다. 이곳의 관리인으로 보이기도 하고, 혹시 그가 신성일의 아들인가 하여 물었더니 아들이 아니고 고인이 국회의원으로 있을 때 자신이 모셨다고 했다. 이집도 그가 고인과 함께 지었다고 했다. 고인과 제법 긴 시간 함께 생활해서 그런지 기품이 있다.
이곳을 보고 작은 재를 넘어가서 친구에게 들은 얘기인데 이 집을 짓는데, 20억 원 가량이 들었다고 한다. 비탈진 이곳에 트럭 1,500대분의 흙이 들어갔다고 했다. 왜 그랬을까? 조건도 좋은 딴 곳도 있었을 것인데 무엇이 신성일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좌청룡은 가까이 붙었고, 우백호는 개울을 건너 살짝 떨어졌는데 계곡이 길어 사시사철 졸졸 흐르는 개울 때문이었을까?
그는 이 마당에서 말을 탔다고 한다. 그리고 저 앞에 보이는 '별 을 뜨리아'로 이름 붙은 별채에서 휴식도 취하고, 책도 읽었단다.
성일 가에서 우측으로 살짝 비켜 보이는 산에는 비록 금강송이나 춘양목은 아니지만, 그래도 멋진 소나무밭이 있다.
그는 오른쪽의 산소가 있는 앞길을 따라 저 계곡으로 들어가는 산책과 산행을 즐겼다고 한다.
배흘림기둥이 눈에 들어온다. 여느 대갓집의 대청처럼 정말 운치가 있다. 그는 이곳에서도 많은 시간을 보냈었으리라!
겨울을 대비하여 김장독도 뒤뜰에 만들어 깊이 넣었다.
고인은 담력이 있는 것 같다. 뒤로 난 문을 열면, 작은 오솔길이 있고, 그 뒤로는 바로 산이다. 멧돼지 등 야생동물이 바로 덮칠 수도 있거니와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곤히 자고 있는 그의 옆에도 쉽게 갈 수 있는 그런 구조의 주택이었다. 즉 보안이 허술했다는 얘기다.
대나무는 모두 오죽이다.
지하실로 내려가는 곳인데 사람이 기거하지 않으니, 습기가 차서 을씨년스럽다.
고인이 소장하고 아꼈던 물건인데 누가 가져가면 어쩌나~
그의 영혼이 느껴진다. 나지막이 양해를 구하고, 그가 앉아서 바라봤던 그곳을 나도 응시한다.
그가 자신이 기르는 개를 데리고 작은 재를 4km 정도를 넘어서 산책을 할 때 친구는 그의 건강상태를 얼핏 보았다고 한다. 그는 운동으로 단련된 단단한 몸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폐암으로 투병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한다.
그의 시선이 머물렀을 곳에 나의 시선도 머물게 한다. 나의 착시일까? 왼쪽 산의 형상이 어떤 장수가 비스듬한 곳에 머리는 언덕 너머로 넘어가고, 두팔을 벌리고 엎드려 있는 듯한 모습이 보인다. 즉 장수가 전투 중에 곤경에 빠진 자세로 보여서 나에게는 별로 유쾌하게 보이지 않는다.
반야심경 액자가 무심히 걸려 있다. 그렇다 모두 공(空)으로 돌아갔다. 명예도 권세도 인기도 연기처럼 사라졌다.
언젠가 그가 한 말을 들었던 생각이 난다. 자신 부인이나 가족 앞에서 한 번도 소리 내 방귀를 뀐 적이 없다고 했다. 그것을 듣는 순간, 단순한 영화배우나 연예인이 아니고, 엄청난 절제력을 가진 신사라고 판단했다. 그것과 오버랩되어 저 금강송으로 선택한 서까래가 눈에 크게 들어온다.
고인의 유품일까? 아니면 중년 미남 관리인의 신발일까?
이 물건의 용도는 무엇인고? 잠시 휴식을 위한 간이 의자인가?
주춧돌의 모양도 예사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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