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24. 19:13ㆍ살아가는 이야기
시지 '두리 어린이 공원'에 뜬금없는 비석이 서 있다. 이곳도 선사시대의 유적지인가?
비석 전면에 새겨진 글씨를 보니 '경산군 고산면 욱수동 두이지 개수 기념비'라고 쓰여 있다. 그렇다 뜬금없는 것은 아니다. 옛날 이곳은 경산군 고산면(경산군(慶山郡)은 1895년(고종 32) 경산현(慶山縣)을 개칭한 것으로 1994년 경산시(慶山市)로 개편될 때까지 존재하였다.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를 포함해 대구광역시 수성구 및 동구 일부 지역을 관할하였다)이었으나 이 어린이 공원이 지금은 수성구 신매동이다.
이곳에 택지가 개발되었던 30년 전에는 주변에 작은 저수지가 상당히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두이지(斗鯉池)'란 저수지도 그중의 한 곳으로 아마 이 근처였던 것으로 보인다. 중앙 비문 양쪽으로 사언절구의 시가 새겨졌는데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시간이 있을 때에 해석해 보고자 한다.
제언(堤堰) 면적(제방 면적)이 1만 4백(?) 6평이라고 되어 있다. 백과 6평 사이의 글자는 일본식 한자 약자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이 글자를 아시는 분은 댓글로 남겨주시길 바란다. 몽리면적은 30정? 일만인( )? ( )는 '이랑'이나 밭넓이와 백 평을 뜻하는 '畆(묘)'란 글자인가? 내 실력으로는 해득 불가함. 총공사비는 1만 3천 6백 원이 들었다.
준공일은 '소화 4년 5월 12일'이라고 되어있다. 소화(昭和 ; 쇼와)는 일본 쇼와(히로히토) 천황이 통치했던 시기의 연호로 1926년 12월 25일부터 1989년 1월 7일까지다. 1926년 12월 25일이 쇼와 시대의 원년이니 쇼와 4년은 서기 1929년이 된다. 한일합방(국권침탈)이 1910년이니 한일합방이 된 지 19년째 되던 해에 이 비석이 건립된 것이다.
비석 건립 당시에 두이지 개수에 공헌을 한 수리계장이나 이사 일부 평의원의 이름이 군데군데 훼손이 되어 있다. 아이들의 장난인지 아니면 이 비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사람의 몽니인지 조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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