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BBC도 손든 '백두산 호랑이' 1000시간 이상 기록한 감독 이야기!!

2011. 10. 21. 17:52재미있는 동물세계

728x90

 

 

BBC도 손든 '백두산 호랑이' 1000시간 이상 기록한 감독 이야기

 

조한민 / 김진수 PD kaisor@chosun.com

 

'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 저자 박수용 감독

호랑이 촬영하다 네 마리에게 '집중 공격' 당해

2001년 12월 30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페트로바 섬. 보름달이 뜬 섬 위로 눈보라가 거세게 몰아친다. 강도 숲도 얼어붙었다.

땅속 잠복 3개월째.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온몸의 근육은 딱딱하게 굳었고, 머릿속은 고독감에 휩싸였다. 드디어 달빛 아래 블러디메리(시베리아호랑이)가 눈앞에 등장했다. 순간 심장이 멈췄다. 차가워진 왼손으로 카메라의 초점을 조심스럽게 맞췄다. ‘한 마리가 아니다!’

3마리의 호랑이가 화면에 잡혔다. 새끼들이다. 갑자기 낌새를 챘는지 노려봤다. 카메라와 그들의 눈이 마주쳤다. 심장이 급격하게 뛰었다. 정신줄을 놓지 않기 위해 '침착하자, 침착하자' 되뇌었다. 블러디메리가 다가왔다. 나는 렌즈 돌리는 것도 멈추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뿌드득' '뿌드득' 호랑이가 눈 밟고 다가오는 소리가 커졌다. 잠복지 입구 밖으로 내놓은 렌즈 왼쪽에서 소리가 멈췄다. 뜨뜻한 콧김이 '훅, 후~우욱' 끼쳐오며 호랑이의 뻣뻣한 수염이 렌즈를 잡고 있는 왼손 손등을 스쳐갔다.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갑자기 블러디메리가 앞발로 렌즈를 내리쳤다. 이를 신호로 다른 3마리의 호랑이도 잠복지 공격에 가세하기 시작했다. 입구를 위장한 관목과 덤불을 긁어내고 덧댄 판자를 뜯어내기 시작했다.

2001년 겨울에 찍은 블러드메리(시베리아 호랑이)

지독한 공격이었다. 지붕송판이 조금씩 부서지고 구멍이 났다. 거센 공격이 30분정도 이어졌다. 뚫린 지붕으로 매서운 바람이 쏟아져 들어왔다. 손조차 비비지 못했다.

그 후 사흘 동안 공격과 휴식이 반복됐다. 지붕송판에 구멍이 뚫렸다. 다행히 무너져 내리지는 않았다. 호랑이들도 송판 안에 무엇이 있을까 궁금한 눈치였다. 나흘째 되던 날, 시베리아 호랑이들은 처음 나타났을 때처럼 조용히 이곳에서 떠났다.

시베리아 호랑이들과 사투를 벌인 이는 EBS 자연다큐 전문 PD 출신의 박수용 감독. 그는 매년 겨울 시베리아의 눈 덮인 땅을 파고 들어가 호랑이를 기다린다. 봄부터 가을까지 호랑이가 오가는 이동통로와 길목을 조사해 가장 확률이 높은 곳에 잠복지를 설치한다. 그렇게 설치된 잠복지에서 6개월 이상을 생활하게 된다.

그 기간 호랑이를 만나는 것은 고작 두·세 번이다. 잠복지는 사방 1~2미터 크기의 촬영장비가 설치돼 있어 팔다리를 제대로 뻗을 수조차 없다. 그곳에서 영하 30도의 추위를 견뎌야 한다. 얼어붙은 주먹밥 300개를 녹여 먹으며 대기한다. 언제 호랑이가 올지 몰라 깊은 잠을 잘 수도 없다.


박 감독은 "육체적인 고통과 피곤은 견딜 수 있지만 가장 힘든 것은 소리 없이 찾아오는 고독감"이라며 "끝없는 사막 혹은 심연과도 같은 고독이 밀물처럼 밀려오면 소리치고 울고 뛰쳐나가고 싶어 가슴이 터질 것 같다. 폐소공포증에 걸린 사람처럼 덜덜 떨리게 돼 독방에 갇힌 죄수가 부러워질 때도 있다"고 설명했다. 박수용 감독은 시베리아 호랑이에 미친 사람이다. 1995년부터 20여 년 동안 이 '괴물'을 쫓아다니며 총 7편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그에게 시베리아호랑이를 찍기 시작한 이유를 물었다.

“사자, 북극곰을 찍은 영상은 수십 편인데 시베리아 호랑이를 찍은 것은 단 3분이었죠. 그것도 무선전파발신기를 달고 도망가는 장면들뿐이었죠. 그만큼 시베리아 호랑이는 근접 촬영하기 힘든 동물이라서 선택했습니다.”

그는 BBC나 내셔널지오그래픽 같은 거대 다큐멘터리 제작사도 시도하지 못한 야생의 시베리아 호랑이를 1000시간 가까이 촬영했다. 2003년 그는 '시베리아 호랑이-3대의 죽음'으로 프랑스 쥘 베른 영화제 관객상(2006), 블라디보스토크 국제 영화제 특별상 AMBA(2010)를 수상했다.

시베리아 호랑이는 행동반경이 넓고, 은밀하게 살아간다. 지금은 개체 수가 350여 마리밖에 되지 않는다. 인간이 찾아내기도 쉽지 않고 촬영하기는 더욱 어려운 동물이다. 그는 "해외의 거대 다큐멘터리 제작사들은 자본과 조직력에서 월등히 뛰어나 좋은 장비로 훌륭한 영상을 찍을 수 있지만, 시베리아호랑이를 찍기 위해서는 장비나 조직력의 문제가 아니라 6개월 이상 한 곳에서 그들을 기다릴 수 있는 인내력과 정신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촬영 당시의 경험담을 토대로 쓴 책 ‘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을 펴냈다. '블러디메리'라고 불리는 암호랑이의 3대에 걸친 가족사를 중심으로 시베리아호랑이를 신으로 숭배했던 시베리아 우수리 원주민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냈다. 그는 "자극적인 호랑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호랑이에게도 가족이 있고 인생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면서 "사라져가는 시베리아호랑이와 우수리 원주민의 애환을 이해하고 그들의 삶을 정상적으로 돌이키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최근 '네이쳐21'이라는 콘텐츠회사를 차렸다. 이름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자연을 도시로 가져오자'라는 구호 아래 설립된 회사다. 그는 "픽션이 있어야 논픽션도 나오는 것"이라면서 "'정글북'이나 '라이온킹'같은 콘텐츠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2002년 시베리아에서 찍은 '왕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