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1. 1. 09:50ㆍ감동이 있는 이야기
장승포에서 생활하면서 숙소 뒤편의 산을 올라가보지 못했다. 등산로가 아닌 듯 하였기 때문이다. 영타암 옆에 난 임도를 따라 올라가는데 이내 끝이 나고, 여러 개의 무덤이 앞을 막는다. 애써 태연한척 하지만 오래된 묘비와 새로운 묘비가 뒤섞이고, 조화가 을씨년스럽게 꽂힌 묘역을 지나니 그늘이 짙은 작은 오솔길이 나오고 그 위쪽으로 얼마나 오래되었을까 가늠하기 힘든 묘들이 어지럽게 있다. 낮인데도 불구하고 등골이 오싹하며 머리 끝이 선다. 통행하는 이 없는 이곳에서 설사 나에게 무슨 변고라도 생겨도 빨리 발견되기도 어려울 듯하여 속도를 내어 그늘진 곳을 급히 넘어가니 또 다른 묘지들이 있는 곳에 다다른다. 다행히 이곳에는 햇빛이 있고, 앞이 트이니 조금 전의 느낌은 어느듯 사라진다. 그런데 이곳도 공동묘지다. 나중에 밑에서 알아보니 이곳은 '두모동 공동묘지'란다. 멀리 사진 중앙으로 보이는 섬은 '지심도'다.
길손의 고상한 취미(?)인지도 모른다. 정말로 세상사 힘들 때는 대낮 지나는 길에 큰 공동묘지를 들어가 봐도 괜찮다.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고 그곳에는 여러 사연을 담은 죽음이 있다. 어떤 이는 자신의 묘비를 거창하게 세우고, 자신이 직접 쓴 글과 글씨로 자신의 묘비를 남긴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보는 이를 뭉클하게 하는 글도 남긴다. 이 무덤에는 몽돌에 죽은 이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아마 비석 세울 시간이 없었거나, 형편이 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비석이 커다고 천국을 가고, 비석이 초라하다고 지옥에 가진 않을 것이지만 이것을 보는 길손은 착잡한 마음이 든다.
5~6년 전 어느 여름이었던가? 이미 길손의 블로그에도 살짝 소개된 듯한데~ 직장일과 관련되어 울산시 울주군의 어느 지역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네비게이션에다 가는 목표지점을 입력하여 찾아가는데 자꾸만 산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끝까지 가니 목표지점은 산 정상에 있는 공원묘지의 매점과 석물을 만드는 곳이었다. 해괴하였지만 우리가 찾는 사람에 대해 수소문하니 그런 사람이 없다는 것이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곳의 주소가 바뀐 지가 제법 되었다는 것이었다. 새로운 주소를 입력하여 내려오는 도중에 같이 간 일행들에게 잠깐 내려서 공동묘지를 둘러보자고 하니 모두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다.
혼자 이곳저곳을 돌아보는 도중에 작은 오석에 남긴 글이 눈에 들어왔다. 확실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내가 죽어 내세가 있다면 나는 한송이 들꽃이 되리라, 길 옆에 이름없는 들꽃으로 피어나 지나는 이들을 기쁘게 하는 한송이 꽃이 되리라!!"
같이 간 동료들을 불러서 보게 하였더니 모두 숙연해진다. 자신만의 글귀로 미리 비석을 만들어 놓은 것도 괜찮을 것으로 생각한다.
공동묘지에서 자신의 조상산소를 찾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가공하지 않은 막돌에다가 비문을 새겼다. 마른 이끼와 글씨의 마모를 보니 100년은 족히 넘은 것 같다. 어렵게 사는 형편에 번듯한 비석도 세우지 못하고, 저렇게 소박한 비석을 남긴 가신 이의 애달프고 팍팍했던 삶이 길손의 가슴에 전해진다.
어느 휴대폰 중계기지를 홍보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이곳은 최근 검찰로 부터 압수수색을 당한 어느 유명한 사람이 CEO로 있는 통신회사의 중계송신탑의 모습이다.
마침 이 부근을 지나고 있을 때 산 위로 난 좁은 흙길을 따라 산타페 SUV 차량이 급하게 올라가서 이곳에 정차한다. 이윽고 젊은 남녀 두 명이 내려 이곳의 출입문을 열고 들어간다. 남자가 앞에 서고, 뒤에 여자가 따라 들어가는데 사진 중앙으로 들어가려니 아무래도 마음이 내키지 않는 모양이지만 길은 그곳밖에 없다. 잠시 망설이다가 이윽고 안으로 사라진다. 무엇인가 점검하려고 온 모양이다.
이곳은 한마디로 '주인의식'이 없는 현장이다. 사소할지 몰라도 이것이 일류와 삼류를 구분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되지 않을까? 장비가 좋으면 뭐하나? 비싼 장비들을 잡초에 가두고 설령 저것 때문에 고장이 나지 않는다고 하여도 저것은 아니다. 이곳에 있는 장비들을 불순분자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고자 위장용으로 풀을 일부러 키우면서 제거하지 않았다면 이 길손도 이렇게 사진으로 올리지는 않는다.
올레 거제 두모 기지국 친구들아!! 시민들에게 다 같이 보호해 달라고 간청하기 전에 네 일부터 똑바로 하여라, 도난, 화재 등 긴급상황을 발견하신 분은 연락 달라고?
기지국 상황을 보니 그럴 생각이 없어진다. 제 필요한 것은 부탁하고, 지들이 할 의무는 저버린 친구들이 이런 부탁할 자격이 있나? 이번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당한 올레회장이 꽤 괜찮은 분으로 알았는데 이곳에서 그렇게 본 것이 큰 잘못이었음을 깨닫는다. 올레의 앞길이 걱정된다.
이곳은 멀리 보이는 아파트 쪽에서 올라오려면 가파른 좁은 산길을 따라 20여 분은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올라와야 한다. 토박이들의 경작지도 있지만, 주말농장을 하는 사람도 있는 듯한데 얼마나 경작지가 없었으면 이런 산골짜기에 밭을 만들어 놓았는지 과거 장승포에 살던 사람들의 궁핍함이 느껴진다.
공동묘지가 바라보이는 외진 곳에 외딴집이 한 채가 있다.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은 세상을 어떻게 보았을까? 자신의 무능함을 탓하진 않았을까? 방 안을 들여다보니 작은 책상과 옷장 1개가 덩그러니 남아 있다. 모쪼록 저곳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홀로서기에 성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작은 텃밭 울타리에는 정겨운 수세미가 수확을 기다리고,
울타리 너머에는 가파른 산길을 올라왔을 아주머니가 고구마를 캔다. 씨알은 크지 않지만, 겨우내 먹을 간식으로 부족함이 없겠다.
아직 덜 익은 유자도 매달려 있고,
사진 오른쪽 끝부분이 두모동 공동묘지이다.
어느 야무진 텃밭 주인장의 작품이다.
한 눈에도 이곳의 돌담은 예사롭지가 않다. 그냥 아무렇게나 쌓은 밭둑이 아니다. 돌사이로 누군가의 세밀한 정성이 느껴진다.
돌담을 올려다보니 어떤 아주머니가 밭에서 일한다. 다니기도 불편한 외진 곳에서 이렇게 참한 돌담을 만든 주인공 아주머니다.
밑의 다랭이 밭에 고구마를 심었는데 고라니가 저렇게 잎을 뜯어먹었단다. 몇 년 전까지는 이곳에서 큰 멧돼지 두 마리가 있었는데 진돗개 2마리를 가진 주민이 사냥하여 지금은 없다고 하니 다행이다.
고구마 줄기를 꺾어서 가지런히 정돈하고 있던 중이었다. 잠시 길손과 프리토킹을 한다. 소나무가 있는 비탈을 저 아주머니 혼자서 장장 16년에 걸쳐서 개척한 현장이다. 얼굴을 보니 60 중반으로 깨끗한 인상의 아주머니인데 어떻게 이런 곳에서 그리 넓지도 않은 밭을 개간하려고 저런 험한 고생을 하였을까? 얼마나 소득을 더 올리겠다고?
쇠지렛대(일명 댓고)가 두 개가 부러지고, 작은 곡괭이 3~4 개가 부러졌단다.
그녀는 전직 교사의 아내이다. IMF의 폭풍이 그녀의 가정에도 휘몰아쳤단다. 남편이 현직에 근무할 때 남의 보증을 섰다가 모아놓은 재산을 모두 날리고, 월급도 반은 압류당한 상태로 모진 마음고생을 하다가 아픈 마음도 달래고, 살림에 조금 보탬이 될까 하여 이곳을 개간하기로 마음 먹었단다. 얼마나 절박하였으면 하루종일 이곳에서 개간하고, 새벽 4시경에 집으로 돌아간 적도 무수히 많았다고 하는데 도대체 여자의 몸으로 공동묘지로 둘러싸인 이런 외진 곳에서 무섭지도 않았던가? 그녀는 당시에는 워낙 절박하고 아픈 마음을 둘 데가 없어 무서운 것도 몰랐다는 것이다. 그래야 갓 50살이 된 가녀린 여자의 몸인데~ '여자는 약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강하다' 라는 말이 실감난다. 지금은 평온한 마음으로 세상을 관조하면서 사시는 것 같다.
소나무에 기대있는 작은 봉분이 있다.
찾아오는 이 없는 쓸쓸한 이 봉분이 비만 오면 이곳으로 물길이 생겨 산소가 물에 떠내려가게 된 것을 안타깝게 여긴 아주머니가 정성스럽게 돌 축대를 쌓고, 물길을 다른 곳으로 내었다. 가신 임의 영혼이 있다면 기쁘게 생각하지 않을까? 아마도 새벽까지 고된 노동을 하는 그녀에게 모든 악귀를 물리치는 수호천사가 되어 주었으리라!!
가을이 저물어 가는데 채소들이 새싹을 틔웠다.
가지런하게 정돈한 것이 깨끗한 자태의 주인 성품이 배어있다.
아주머니의 텃밭에서 올려다 본 구릉 지대
고된 노동의 결과물이다.
내려오면서 올려다 본 텃밭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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