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2. 6. 13:42ㆍ감동이 있는 이야기
70을 넘긴 지금도 그날 저녁을 생각해보면, 꿈결 같기도 하고 무슨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득하다. 내 일기장에는 그날이 1965년 10월 29일 밤으로 기록돼 있다. 우리가 숙영지로 택한 지역은 해발 184m로 표시된 야트막한 야산이었다. 긴 행군 끝에 곯아떨어졌을 때 적이 들어왔고 정신없이 싸웠다. 아군은 피해가 없었고 철조망을 끊고 들어오던 베트콩 2명만 사살됐다. 월남에서 한국군이 처음 치른 전투였다.
다음 날 요란한 헬리콥터 소리가 나더니 별 둘을 단 사령관(부임 초기에는 소장)이 나타났다. 채명신 장군이었다. 채 사령관은 병사들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잘했어. 그렇게 싸우는 거야. 적을 충분히 끌어들여서 정확하게 쏴야 하는 거야." 병사들을 먼저 치하하고 중대장 장세동(뒤에 안기부장) 대위의 어깨도 쳐 주었다. 그리고 소대장들을 치하했다. "전투지에서는 소대장들이 앞장서야 되는 거야."
우리 중대는 한국군으로서 첫 전공을 세웠다는 이유로 미군이 장악해 놓은 고보이라는 지역으로 투입되었다. 밤마다 베트콩이 들어왔고 밤마다 싸웠다. 그렇게 요란하게 싸우고 난 다음 날에는 어김없이 헬리콥터 소리가 들리고 채 사령관이 달려왔다. 중대 지휘소로 쓰던 2층으로 요란한 군홧발 소리를 내며 전속 부관만 데리고 씩씩하게 올라왔다. 그때 채 사령관의 얼굴이 잘생겼고 특별히 눈썹이 숯검정처럼 검다는 걸 알았다.
"나는 소위 때 어느 날 저녁 개울에서 완전히 벗고 혼자 목욕하고 있는데 공비가 지나가고 있었어. 물속으로 들어가 숨어 있다가 나오면서 손에 든 돌로 쳐서 쓰러뜨렸지. 소위, 중위 때는 말이야, 무기가 없으면 돌로라도 적을 단번에 때려잡는 거야." 자리에서 일어날 때에는 언제나 지갑에서 10달러짜리를 꺼냈다. 중대장에게는 60달러, 소대장들에게는 40달러씩 나눠주었다. 포병 관측 장교였던 내게도 40달러를 쥐여줬다. 우리는 그 돈을 모아 병사들에게 맥주와 특식을 사서 나눠주었다.
그 이듬해 4월의 전투에서 중대장 장세동 대위가 어깨에 총탄을 맞고 쓰러지자 무전으로 전황을 보고받은 채 사령관은 한참 전투가 진행되는 고보이 벌판으로 날아왔다. 총탄이 나는 그 벌판에 그는 허리도 구부리지 않고 달려와 언덕 밑에서 벌벌 떨고 있는 우리를 "죽고 사는 것은 하늘에 달려 있는 거야. 떨지 마"라며 독려했다. 나는 언덕 밑에서 겨우 고개를 들고, 늠름하게 서 있던 그 장군을 바라보았다. '정말 저 장군은 무섭지 않을까?' 생각하며 바라본 그 모습은 아직도 스틸 사진 장면처럼 생생하다. 아무튼 그 장군, 숯검정 같은 눈썹을 가졌던 그 채명신 장군은 우리에게 무한한 힘을 전해주던 진정한 사령관이었다. 그 사령관께서 어제 장군 묘역도 마다하고 사랑하던 파월 병사들 곁에 고이 잠드셨다. 삼가 파월 장병들의 '영원한 사령관님'의 명복을 빕니다.
[본문출처 :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3/11/28/201311280435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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