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의 상처, 거제 포로수용소

2014. 1. 26. 19:42살아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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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한국 현대사에서 좌우익 이데올로기가 가장 엄중한 장소에서 가장 악랄하고, 잔인하게 펼쳐졌던 역사적인 장소이다. 내가 거제도에 오기 전, 거제도에 대해 들었을 때 가장 먼저 상기되었던 것은 바로 6.25 한국 전쟁 때의 거제 포로수용소이다. 정말 유명했지만(?)

그동안 무심히 있다가 뒤늦게 거제 포로수용소에 왔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6.25를 겪지 않은 젊은 세대의 교육장소이자 교훈을 가르칠 수 있는 역사적인 장소에 무료로 개방하는 것은 어떨까? 거제시가 울산시와 더불어 시민소득 1, 2위를 다툰다는데~

 

 

 

 

 

 

 

 

 

 

 

 

 

 

6. 25 사변과 관련해서 가장 많이 알려진 미군 장군에 맥아더, 워커 장군 등이 있다면 한국군에는 백선엽, 김백일 장군 등이 있다. 어떤 이는 김백일 장군이 친일파라고 이 동상에 검은 천을 씌우고 쇠사슬로 감았다고 하는데 참으로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어리석은 자들이라고 생각되어 만감이 교차한다. 자기 스스로를 돌아보라 그렇게 친일파를 저주하는 자신이 앞날이 보이지 않는 엄혹한 강점기에 자기 지조만을 세우면서 살 수가 있었을 것인가? 때로는 자신과 가족의 안녕을 위해 거짓 투항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고, 때론 그들의 비위를 맞추면서 내일을 기약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정말 그대는 36년을 넘기면서 곧은 지조를 지킬 그런 확실한 신념의 소유자인가? 대답에 자신이 없다면 앞으로 친일파에 대한 막연한 저주를 멈추길 바란다. 언젠가 소설가인 선우휘 선생이 6.25 전쟁 때 오대산 상원사를 구한 일에 대해 신문에 기고했던 글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제법 오래되어서 자세하게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대략 이렇다.

 

정훈장교인 선우휘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도에 국군이 후퇴하면서 상원사가 적군의 지휘소로 사용될 수도 있어서 이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김백일 장군으로부터 상원사 소각명령을 받고, 상원사에 사병들과 함께 들이닥쳤다고 한다. 그 당시에 여러 명의 승려가 있었으나 유독 한 스님이 퇴거하기를 거부하면서 가사 장삼을 걸치고 법당 중간에 좌정하고 앉아서 

 

"군인 양반, 자 이제 불을 지르시오"

 

"스님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빨리 밖으로 나오시지요"

 

"소승이야 어차피 죽으면 다비될 몸이니 사찰과 함께 같이 가겠소 내 걱정이랑 말고,  빨리 불을 지르시오!" 

 

 

"........................................."

 

 

그렇게 상원사를 구한 이는 한암스님이다.

 

하늘에서는 김백일 장군이 탄  L19(엘 나인틴)정찰기가 상원사가 불태워지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상원사 상공을 선회하고 있어서 선우휘는 하는 수 없이 법당 문짝을 떼어내서 마당에 모아놓고 불을 질러 정찰기를 속였다고 한다. 김백일 장군이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상원사 문짝이 타는 것을 모를 리가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의 상원사를 제대로 볼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한암 스님과 장교 선우휘,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내색을 하지 않은 김백일 장군의 공이 아닌가 한다.

 

나중에 국군이 다시 상원사로 진격해 왔을 때 법당 안에 '좌탈입망(坐脫入亡 : 앉아서 입적함)' 한 스님이 있었는데 그 장엄한 광경을 본 외국 종군기자가 사진을 찍었다는데 그 사진이 상원사 법당 안에 지금도 모셔져 있다.

 

 

 

 

                                 좌탈입망하신 한암스님

 

 

 

 

 

 

 

그가 비록 일제강점기에 자신의 신념을 잠시 버렸을 수도 있으나 한국전쟁에서 이런 공을 세웠으니 친일파라고 너무 나무라지 않길 바란다. 일제 강점기에 김구 선생처럼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고 고분고분하게 시키는대로 살았다면 그것도 친일파로 비난받을 일이 아니던가?

 

 

 

 

 

 

 

 

 

 

 

 

 

포로수용소 안에서 빨갱이 포로들이 좌빨 이데올로기로 똘똘뭉쳐서 많은 반공포로들을 살해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거제포로수용소장인 돗드 준장이 빨갱이 포로에게 납치당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납치된 소장도 한심하지만, 얼마나 빨갱이들이 악랄하였으면 저런 일이 발생할 수가 있나?

 

 

 

 

 

 

 

 

 

 

 

 

 

 

 

 

포로수용소가 있던 고현

 

 

 

 

 

지금의 고현

 

 

 

 

 

 

 

 

 

 

 

 

 

 

 

 

 

레알 포로의 응가하는 장면을 연출하였는데 꼭 이런 장면을 연출해야 알아듣는다고 보는가? 나는 남자지만 아랫도리에 유독 눈길이 간다. 저렇게 물건을 내놓고 응가하는 것을 강조해야만 하는지 쩝~~

만약 여자포로의 응가장면을 저렇게 노골적으로 표현하였다면 여성비하라고 페미니스트들이 거품을 물고 덤볐겠지~

 

 

 

 

 

 

 

 

당시의 유적이 이렇게 일부 남아있다. 조악하게 건설된 것이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곳에서 순직한 이 군의관은 빨갱이 포로든 반공 포로든 히포크라테스 선서대로 의술을 행하였을 것이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전쟁포로의 건강을 돌보다 생을 마감한 마틴 대위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