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하오에(Aloha Oe)와 릴리우오칼라니[Liliuokalani ]

2011. 3. 21. 21:41좋아하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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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비스 프레슬리가 부른 알로하오에

 

 

[가사]

 

Ha`aheo ka ua i nâ pali
Proudly by the rain in the cliff
Ke nihi a`e la i kanahele
The creeping silently and softly up the forest
E uhai ana paha i ka liko
Seeking perhaps the bud
Pua `âhihi lehua a o uka,
Flower âhihi lehua of inland.

Hui:
Chorus:

Aloha `oe, aloha `oe
Farewell (to) Thee, farewell (to) Thee
E ke onaona noho i ka lipo
Sweet fragrance dwelling in the dark forest
one fond embrace", a ho`i a`e au
One fond embrace, before I now leave

"Until we meet again."

 

검은 구름 하늘을 가리고

이별의 날은 왔도다.

다시 만날날 기대하고

서로 작별하여 떠나가네

 

알로하오에~ 알로하오에~

꽃피는 시절에 다시 만나리

알로하오에 알로하오에

다시 만날 때까지

 

들려오는 저 물새소리도

이별을 서러워하고

날마다 가는 갈매기떼들

우리의 작별을 슬퍼하네

 

알로하오에~ 알로하오에~

꽃피는 시절에 다시 만나리

알로하오에 알로하오에

다시 만날 때까지

 

 

감미롭고도 구슬픈 하와이안 기타(Hawaiian Guitar ) 선율에 얹혀진 알로하오에(Aloha Oe )

이 노래는 하와이 왕조의 마지막 여왕인 릴리우오칼라니[ Liliuokalani ]의 슬픈 이야기가

숨어 있다.

 

이 노래를 작곡한 사람은 일반 작곡가가 아닌 하와이의 공주였던 릴리우오칼라니[Liliuokalani ]

이었다.

 

그녀가 1878년경 작사/작곡하게 된 '알로하오에'는 독일 출신의 음악 교사 헨리 바거에 의해 편곡되어 하와이에서 유명해졌고, 곧 미국에서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릴리우오칼라니 Liliuokalani]는 당시 하와이의 국왕이었던 칼라카우아의 여동생으로 왕이 된 오빠가 사망한 뒤 그 자리에 오른 하와이의 처음이지 마지막 여왕이었다.

 

 

* 릴리우오칼라니[ Liliuokalani ]

 

본명은 Lydia Kamakaeha. Lydia paki Liliuokalani, Liliu Kamakaeha라고도 함.

1838. 9. 2 하와이 호놀룰루~1917. 11. 11 호놀룰루.

1898년 미국에 합병된 하와이 제도(諸島)를 통치한 하와이 왕국의 처음이자 유일한 여왕인 동시에 최후의 통치자.

 

 

'오니 파'(Oni pa'a:굳게 맞서라) 운동을 앞장서 옹호하면서 합병에 대항해 격렬하게 싸웠으며, 1895년 샌퍼드 B. 돌의 임시 공화국에 대항한 반란을 격려하기도 했다. 음악에 재능이 있어 그녀의 노래인 '알로하오에'(Aloha Oe)로 유명하다.

 

어머니 케오호칼롤은 카메하메하 3세의 고문이었다. 그녀는 하와이 왕족 여성들이 그랬듯이 그리스도교 전통 속에서 자라면서 철저하게 현대식 교육을 받았고, 서방세계를 여행하면서 더 많은 교육을 받았다. 1877년 남동생인 섭정왕자 W. P. 렐레이오호쿠가 죽자 그녀는 왕위 추정 상속인으로 임명되었으며, 1891년 오빠 데이비드 칼라카우아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전제적인 여왕이었던 릴리우오칼라니는 칼라카우아왕 때 하와이의 군주제가 약화한 것을 유감으로 생각해 하와이 왕권의 전통적인 전제 정치를 어느 정도 회복시키려고 애썼다.

그녀는 칼라카우아 왕이 미국에 무역 특혜권을 주고 진주만을 양도한다고 서명한 1887년의 갱신 상호호혜조약을 일찍이 반대함으로써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런 태도 때문에 그녀는 하와이의 하올레(haole:외국인 기업가)와 끝까지 사이가 좋지 않았으며, 이들은 릴리우오칼라니가 왕위에 즉위하자 그녀를 폐위시키려고 노력했다.

 

1893년 1월 샌퍼드 돌이 이끄는 선교당(Missionary Party)은 그녀에게 퇴위할 것을 요구했고 여왕의 퇴위를 선언하면서 미국에 합병될 때까지 임시 정부를 수립한다고 발표했다. 여왕은 유혈충돌을 피하기 위해 양보했으나 미국 대통령 그로버 클리블랜드에게 자신의 복위(復位)를 호소했다. 대통령은 여왕의 복위를 명령했으나 돌은 클리블랜드가 간섭할 권한이 없다고 주장하고 그 명령을 무시했다.

 

1895년 왕당파 로버트 윌콕스가 여왕의 이름을 앞세우고 반란을 일으켰으나 돌 파에게 진압되었으며 여왕은 반역죄로 가택연금을 당했다. 그녀는 반란이 일어난 뒤 감옥에 갇힌 자신의 지지자들을 사면시키기 위해 1895년 1월 24일 공식 퇴위서에 서명했다. 그뒤 공적인 생활에서 물러났으며, 1898년 자신의 회고록 〈하와이 여왕의 하와이 이야기 Hawaii's Story by Hawaii's Queen〉를 썼다.

[출처 : 네이버 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