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특별한 비각

2016. 3. 25. 11:22살아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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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황 황토오리 식당 옆에 오래된 비각이 있어서 들여다 본다. 밖에서는 사당인지 비각인지 몰랐으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진주강씨 모열각이라고 되어있다.

 

 

 

 

이 모열각은 진주강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1945년 세운 열녀비를 보호하는 비각이라고 하는데 옥포면 기세리는 충주 석氏의 집성촌리라고 한다.  

 

모열(慕烈)이란 뜻을 사전에 찾아보니 없다. 아마도 열녀를 사모하거나 추모하는 의미가 아닌가 한다.

 

안내문에는 "진주 姜씨는 은열공의 맏딸로 이웃마을 김흥리의 충주석씨 참의공파 집안의 석구홍에게 시집갔다. 그런데 불행히도 출가한지 한 달만에 남편을 여의게 되었는데, 이에 충격을 받은 그녀는 남편과 합장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뒤따라 죽었다. 그러나 집안 사람들은 그녀의 유언을 들어주지 않고 가례에 따라 장례를 별장으로 치루었다. 그런데 이 때부터 집안과 마을에 예기치 못한 변고가 계속되었다. 집의 대들보가 부러져 내려앉고, 마을의 소와 말들이 까닭 없이 죽어갔으며, 해마다 심한 가뭄이 들어 농사를 망치게 되었다. 참다못한 마을 사람들이 의논 끝에 그녀의 시신을 남편의 무덤에 합장하고 성대히 제시를 지내니 하늘에서 이상한 빛이 내려오고 단비가 쏟아져 내렸다. 이에 감명을 받은 마을 사람들과 충주석씨 창의공파 종중에서는 1945년 기세리 입구에 추모비를 세워 진주강씨의 열행을 기리고 있다."

 

여기에 이르러 길손의 궁금증이 증폭되기 시작한다. 그냥 조금 아쉬운 부분을 지적하는 것이니 이런 시각도 있겠구나 하시면 좋겠다.

 

1945년에 추모비를 세웠다고 하는데 조선 시대인지 고려 시대인지 시대도 모르는 전설 같은 얘기를 왜 1945년에 기억하였느냐 하는 것이 그 첫째이고, 남편과 산 지 한 달 만에 남편을 따라 유명을 달리했다고 열녀라고 칭송하는 것은 조금 과장이 있지 않았나 하는 점이 둘째다. 지금이라도 고증자료가 있으면 안내문에 어느 시대인지 밝혀주시면 고맙겠다.

 

이런 사건이 과거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현재도 발생한다. 금슬이 좋았던 부부가 오손도손 살다가 배우자가 병이 걸려 세상을 떠나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지아비 지어미의 사연이 드문드문 뉴스에 나온다. 옛날 시각으로 보면 이것도 열녀이고 열행이라고 가문의 칭송을 받을 일이겠지만, 지금의 시각으로 본다면 꼭 그렇지 만은 않을 것 같다.

 

 

 

 

 

진주 강씨 추모비 담장 옆에 또 다른 비석이 있는데 들어갈 수가 없어서 아쉽지만, 확인하지 못했다.

 

 

 

 

'지상낙원' 식당 앞 도로 건너편에는 옥연지 주변과 맞닿아 공원이 조성되고 있다. 식당 종업원의 전언에 의하면, 방송인 '송해'씨의 부인이 충주 석氏인데 처가가 있는 이곳 기세리에 자신의 사재 46억 원을 기부하여 '송해 공원'을 조성하는 중이란다. 이곳 식당 땅 한 평이 작년에 250만 원이었던 것이 올해는 400만 원이 되었지만, 그래도 팔지 않을 작정이라니 참 그놈의 땅값이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