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3. 27. 22:35ㆍ살아가는 이야기
해가 넘어가는 서쪽을 가파른 산비탈이 막아 응달진 자리에는 살던 이들이 모두 떠나 이젠 온기마저 끊긴 산 중턱 외진 폐가에는 적막감만 감돈다.
벌써 고인이 되신 이 집 家長께서는 밭을 논으로 일구고자 경사 가파른 비탈밭을 상당한 돈을 들여 논으로 만들었다. 물이 없는 산 중턱까지 경운기 펌프를 이용해 물을 올렸으니 산 밑의 경작지에 비하면 애초에 경쟁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 실험은 힘겹게 진행되다가 결국은 저렇게 아무렇게나 자란 호두나무와 잡목처럼 그렇게 마감이 되었다.
근동에 살면서도 고향 후배가 산 중턱 외딴집에서 40리 길을 자전거로 통학해도 그에게 특별한 관심도 없었거니와 특히 외딴 그의 집을 방문하였던 기억도 없다. 이제 사람의 온기가 모두 사라진 지금에 와서 그가 살았던 보금자리를 폐허 속에서 본다. 집은 서향을 하고 있지만, 오후가 되면 그늘이 지는 그 을씨년스런 방향으로 방문이 자리 잡았다.
방안 찬장에는 가지런히 쌓인 한참 유행이 지난 식기들이 놓여있다.
황급히 떠난 것처럼 보이는 방안은 비록 어지럽혀졌지만, 곧 돌아올 것처럼 장롱 안에는 이불도 있다. 이게 30여 년 전의 일이니 참 세월도 많이 흘렀다. 갑자기 허전하고, 아쉬운 무엇인가 목구멍을 타고 아래로 내려간다.
외딴집에 살던 식솔들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저 아랫마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혹시 같이 모여 살고 싶지는 않았을까? 떨어져 나간 창문을 통해 찬바람이 추억처럼 지나간다.
오래된 텔레비전이 밖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것 같다.
폐가로 남은 외딴 농가에는 멧돼지들이 가끔 방문한 흔적이 있고,
닭을 사육하였을 것으로 보이는 닭장에도 지금은 생명이 없다.
폐가를 떠나 반대편의 골짜기로 들어간다. 인적이 끊긴 곳에서 山짐승의 기운이 느껴진다. 인기척을 느낀 산짐승이 발걸음 소리를 죽이면서 올라가는 곳에는 마치 파헤쳐진 무덤같은 것이 보인다. 정말 을씨년스럽다.
어떻게 보면 너구리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고라니 같기도 한 산짐승이다.
산짐승이 사라진 골짜기 너머로 옅은 분홍빛이 보인다. 진달래다. 길손이 올해 처음 접하는 진달래인데 마음은 가까이서 진달래를 보고 싶지만,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혹시 앞서간 그 녀석과 갑자기 조우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서다. 하는 수 없이 멀리서 사진을 찍었으나 진달래 윤곽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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