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5. 29. 11:50ㆍ여행이야기
연수원 담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사람들의 시선이 잘 머물지 않을 것 같은 호젓한 곳에 '아우내 장터 碑'가 외롭게 서 있다. 역사의 변환점에는 늘 힘없고, 가난하여 나라로부터 별로 혜택을 받지 않았던 이름 없는 민초들이 있었다. 권력 있고, 세도 있는 자들이 지난한 당파싸움으로 나라의 기둥이 무너지고 있음을 자각하지 못하고, 서로의 피를 빨아먹고 있을 때 왜놈들이 털도 뽑지 않고 조선을 삼켰고, 우리 민족이 질곡의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할 때 대한 독립 만세 운동으로 분연히 일어선 이곳 충청도 어느 시골 장터에서는 이름없는 민초 20명이 아우내 장터 현장에서 분하고 원통하게 순국하고 말았다.
여기 아우내의 얼이 숨쉬는 곳
아우러져 흐르는 두줄기 큰 내가
병천이라 이름붙여 전하여 오네
인정이 오가는 저자 거리에
잃었던 내 나라 다시 찾으려
뜨거운 의분을 폭발하였네
천지를 흔들던 그날의 함성
무참히 짓밟힌 숭고한 피가
오늘의 영광으로 닿아 있으니
못다핀 꽃봉오리 다시 피도록
그 얼을 불러서 이 돌에 새기네
길손은 라이온스 회원이 아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 사람들이 진정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려고 이런 조직에 가입하였는지 아니면 서로 인맥관리를 위해 만났는지 분간이 되지 않고, 그들이 지역에서 봉사활동을 한다는데 그게 마음에서 우러나온 봉사활동인지도 분간이 되지 않지만, 이런 비석을 마련한 것은 잘했다고 본다.
이곳 병천면이 과거에는 천원군 소속이었나 보다. 아우내 장터 글씨는 천원 군수 윤형영씨가 썼다고 되어 있다.
류관순 열사는 현장에서 순국하지 않고, 감옥에서 옥사하시었으니 이 비석에는 류관순의 이름이 없다. 아우내 장터 현장에서 순국하신 분들의 이름이 이렇게 새겨져 있다. 류중권(류관순의 父)열사의 처는 이름도 없이 그저 이 씨(류관순의 母)라고 되어있고, 김구응의 모친은 최 씨라고 되어 있으니 안타깝고, 또 안타깝다. 류중권 열사는 부부가 순국하고, 김구응 열사는 모자가 순국하였다. 이름 석 자도 변변히 없는 힘없고, 가진 것 없는 민초가 나라의 독립을 외치다가 아우내 장터현장에서 일본 순사들의 칼에 무참히 스러지셨으니~
최근에 학생들이 사용하는 교과서에서 류관순 열사의 이름을 빼겠다고 줄기차게 요구하는 얼치기 좌익들이 설친다고 한다. 그런 좌익들에게 묻는다. 너희들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제국주의의 엄혹한 암흑의 시기에 일본 순사와 헌병의 총과 일본도의 서슬 퍼런 살기(殺氣) 앞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일제에 저항한 저런 행동을 너희도 정녕 할 수가 있었겠느냐?
비겁하고, 또 비겁한 자들아!!
그저 세 치 혓바닥만 살아서 세상을 네 멋대로 재단한다고 너희 뜻대로 그런 혼탁한 세상으로 돌아가도록 천지신명과 순국선열이 손 놓고 방치하지 않을 것이다.
천지신명이시여!!~~
민족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고,
북쪽의 붉은 무리를 추종하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직 권력 만을 차지하기 위해
혹세무민하는 무리들에게
천벌을 내려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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