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7. 7. 08:53ㆍ지난 날의 추억
거의 5년 만에 다시 쓰는 군 생활 에피소드이다. 그러니까 15회를 보니 '다음에 계속'이라고 해놓고서 그대로 잊었나 보다.
워낙 옛날의 이야기라 기억도 가물가물하니 한참을 머리를 굴려야 조금씩 생각난다. 제대한 지 34년도 더 지났으니 군사보안의 소멸시효도 지났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어떤지 모르겠다.
길손이 제대할 때까지 생활해야 할 부대는 작은 대공포대였는데 지휘관이 대위이고, 공군이 지키는 정문을 지나 한참을 가야 도착하는 아담한 콘크리트 벽돌 스레이트즙 단층 건물이었다.
내가 간 부대는 전투비행단에 속했는데 우리 부대의 임무는 비행장을 적기로부터 방어하는 부대였다. 당시에는 미공군이 주둔하고 있었으며, 한국공군보다 팬텀기(F-4D, F-4E)를 더 많이 보유하고 있었다.
부대 뒤로는 대추나무가 우거진 작은 언덕이 있고, 그 뒤로는 미군클럽의 잔디밭과 웅장한 클럽건물이 버티고 있었으며, 앞쪽으로는 작은 연병장이 있고, 연병장 가장자리를 따라 길게 미군 막사에서 나오는 똥물이 흐르는 작은 개천이 있었는데 뛰어 건널 수가 있는 넓이니 약 2미터가 약간 못 미쳤다. 그것을 건너면 미군들과 공군들이 주로 다니는 도로가 있고, 도로를 건너면 2층으로 줄지어 선 미군 막사가 있었다. 왼쪽으로는 같은 땅개지만, 여름이면 늘 웃통 벗고 사는 노가다 대대가 있었는데 유사시에 적기의 공습으로 활주로가 파괴되면 활주로를 응급복구하는 그런 부대였다.
우리는 미군보다는 어림도 없고, 공군보다도 행색이 약간 초라했는데 옆 노가다 공병대대 친구들은 노가다 분위기가 역력해서 군복도 남루하게 보이고, 늘상 하는 일이 노가다 일이니 내가 참 좋은 부대에 전입했다고 지금까지도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보급 주특기이니 당연히 포대 행정반으로 갔고, 그곳에는 ROTC출신 중위가 부관으로 있고, 상사가 인사계, 그리고 보급 중사 한 명, 연락병 하사 한 명, 보급 2-4종계 고참 병장과 길손보다 두 달 먼저 전입한 일등병, 1종 먹을 것을 담당하는 고참 일병 한 명, 인사계 상병 한 명, 작전계 상병 한 명, 작전병 일병 한 명, 돌팔이 상병 한 명, 그리고 포대장 딱가리(당번병) 한 명이 있었으며, 포대장실은 행정반과 붙어 있었다.
그때 사수인 보급 병장과 일등병은 지금도 길손이 만나고 있다. 그런 사실을 아는 주변 사람들은 정말 대단하다고 한다. 그런 인연을 사회에서 이어가기가 대단히 어렵다고 이구동성으로 얘기한다.
그 선배는 2년 전쯤 지방자치단체에서 사무관으로 정년을 맞이하고, 지금은 백수로 사는 중인데 인간적으로 참 좋은 사람이었다. 다른 고참들은 어떻게든 트집을 잡아서 졸병을 골탕먹이고 두드려패기가 일쑤였는데 그 선배는 늘 합리적으로 졸병을 대하고, 부당하게 기합을 주면 그것이 명분이 없거나 트집잡기 용이라면 자신의 동기나 후배를 나무라기도 한 그런 훌륭한 분이었다.
포대장은 육군 제3사관학교 출신(5~6기?)으로 김천태생의 대위였는데 소령 진급을 앞두고 안달복달이었다. 땅달막하게 생긴 체구에 목은 짧고, 얼굴은 사각이었는데 지금 기준으로 보면, 정말 비호감이었다. 앞으로 튀어나온 똥배에 군복 바지를 바짝 끌어올려 입고, 군화는 파리가 넘어질 정도로 광이 나게 하여 지휘봉을 들고, 차갑게 포대원들을 대했는데 그의 이름은 배모 대위이다. 차마 나머지 이름은 쓰지 못하겠다. 본인이나 그를 아는 사람들이나 혹은 그의 자식들이 본다면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이빨을 갈 것인데 쉽사리 쓸 수가 없다.
그는 정말로 독했다. 말투가 똑, 똑 부러졌다. 저보다 나이가 한참이나 많은 인사계를 마치 후배 다루 듯이 함부로 해서 소문대로 3사 출신들이 그렇구나 하는 인식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는 진급을 위해 자신의 생각으로는 군기를 잡아 일사분란하게 부대를 이끌어나가고 싶었겠지만, 세상 일이 언제나 자신의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요란을 떨었지만, 탈영병도 생기면서 번번히 소령진급에 고배를 마시고, 다른 부대로 전출하고 말았는데 지금도 그 포대장을 생각하면 몸서리가 처진다.
- 다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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