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생활 에피소드(22)

2016. 7. 30. 07:43지난 날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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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5~1946년 동안 운영된 요코스카 의 주일 미군을 위한 위안소[출처 : 위키백과)

 

양갈보,  양공주, 양색시, 유엔 마담, 히빠리(호객꾼), 주스 걸 등으로 불렸던 미군위안부가 길손이 군 생활하던 곳 정문 주변의 작은 술집 등에 많이 있었는데 미군들이 그녀들을 기지 안으로 데리고 들어와서 그들의 숙소로 같이 가거나 길손이 있던 부대 언덕 위의 미군 클럽을 같이 올라가곤 했다.

 

당시의 양공주들은 대부분 어려운 환경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제대로 학교에 다닐 수도 없었고, 일찍 직업전선에 나오긴 했는데 쉽게 돈 버는 직업을 택하다 보니 그렇게 되지 않았나 싶다.

 

길손의 추측으로는 미군을 잘 물어서 같이 결혼해서 미국이라도 건너간다면 아메리카 드림이라도 이루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양공주를 택한 여성도 있었을 것인데 아무리 몸을 파는 매춘부라고 하지만 그녀들을 대하는 미군들의 태도는 대체로 정중하고 신사적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렇게 하다가 팔자를 고친 사람은 극소수일 테고, 양공주 대부분은 사생아를 낳아서 혼자 기르느라고 고생하는 사람도 많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길손 부대가 미군 클럽을 올라가는 입구에 있었기 때문에 위병소 근무하면서 비록 몸 파는 양공주지만 그녀들을 구경하는 것으로도 작은 위안(?)이 되었다. 게 중에는 아까운 미모를 가진 여자도 더러 있었다.

 

한 번은 3종인 휘발유와 등유, 그리고 경유를 당시 5관구 사령부에서 많은 드럼통을 수령하여 왔는데 졸병들은 또 차출되어 지붕이 없는 유류창고 드럼통을 높이 쌓아야 한다. 정말 사역 중에 제일 더러운 사역이 기름이 잔뜩 들어있는 드럼통을 굴리고 쌓는 일이었는데 장갑도 없이(군대에 무슨 한가롭게 목장갑이 있었겠나?) 손에는 온통 기름이 발려서 미끄러운 드럼통을 굴리자니 힘도 두세 배로 들고, 잘못해서 올리다가 드럼통을 떨어트리기라도 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가 있다. 물론 입은 옷도 기름이 묻으면 엉망이 되고, 나중에 세탁해도 얼룩이 남아서 남루한 꼬락서니를 한 군인이 된다.

 

해가 뉘였뉘였 넘어가는 저녁무렵에 드럼통 쌓는 작업을 하다가 유류 창고 담 옆을 지나는 양공주 커플이 있다. 장교인지 군무원인지 당시에 40대 정도로 보였는데 드럼통 쌓는 작업을 잠시 중단하고, 우리끼리 온갖 상상을 다 하며, 성적으로 진한 얘기를 키득거리면서 큰 소리로 하였는데 양공주는 그런 우리를 애써 무시하고 클럽 쪽으로 올라가는데 그때 굵은 남자 목소리가 들린다.

 

"야! 인마~!!  말 조심해~~!!"

 

양공주와 같이 걸어가던 미군이 화를 내며 그렇게 말했다. 다행히 우리가 숫자가 많고, 잘못하다가는 봉변을 당할 수도 있기에 그렇게 눈을 흘기면서 지나갔다.

 

양키여서 우리말을 알아듣지 못할 것으로 쉽게 생각한 것이 큰 오산이었다. 참으로 민망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그다음부터는 미군에게 우리말이라도 그들을 놀리거나 흉보는 얘기를 자제했다. 아마도 그 양키는 그 여성과 동거를 하거나 결혼한 사이가 아니었던가 싶다.

 

- 다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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