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생활 에피소드(23) - 주특기가 없었던 이발병

2016. 8. 4. 13:08지난 날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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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연락하는 그 친구를 이곳에 쓰려니 미안하기도 하고, 웃음부터 나온다. 세상을 살면서 그런 배짱을 가진 사나이를 보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니다. 전라도 사투리를 걸쭉하게 쓰는 그는 지금 완도에서 전복양식장을 하고 있는데 직접 가보지는 않았지만, 평소 그의 통 큰 행동으로 보아서 근동에서는 1~2위를 다투고 있을 것이다.

 

그를 제대하고 20년이 지난 후에 찾을 수 있었던 것도 완도라는 작은 섬이 이유가 되었겠지만, 선대로부터 미역양식을 하고, 그것을 소금에 절인 염장미역을 일본에 수출하였다는 얘기를 군복무 중에 유심히 듣고 기억하였다가 어떻게 연락이 되었는데 그러다가 또 감감 무소식으로 지내다가 또 그로부터 15년이나 지난 2년 전쯤에 또 그를 떠올리고, 완도 수협에 전화해서 이름을 대었더니 마침 나이 많은 수협 직원이 그를 알고 연락처를 주어서 그의 사업장을 다음 지도에서 찾을 수가 있었다.

 

그는 전입하는 처음부터 독특하였다. 주특기는 610(운전병)이었는데 운전은 전혀 할 줄도 몰랐거니와 대부분이 거치는 후반기 교육을 받지 않고 자대로 바로 전입하였는데 원칙적으로 한다면 그는 제2 야전수송학교에서 후반기 교육을 받고 전입했어야 했다.

 

길손보다 한 달이나 입대가 늦은 병사가 길손이 후반기 병참 교육을 받고 자대에 가니 그가 먼저 부대에 와 있었다. 말이 운전병이지 운전도 할 줄도 모르니 수송부에 둘 수는 없었을 것이고, 취사반에서 취사병 보조를 하고 있었는데 생긴 것도 투박했지만, 제일 먼저 눈길을 끈 것은 그가 웃을 때 보이는 대문 이빨이었다. 앞니가 어떤 이유로 빠졌을 것이고 그 이빨을 해 넣은 것이 당시에도 주로 나이 많은 할머니들이나 했던 '삼뿌라치'(시골에서는 그렇게 불렀는데 가짜 이빨을 스텐 비슷한 것으로 이빨 주변을 좁게 감쌌다. 지금은 그런 이빨은 좀처럼 볼 수가 없다.)라고 하는 가짜 이빨을 하고 있었다.

 

그는 취사병 뿐만 아니라, 목공병, 이발병까지 소위 소속 없는 일은 모두 그의 몫이었다. 물론 그가 목공이나 이발을 배웠던 것은 아니고, 그냥 포대장 명령이니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의 이발 실력은 어땠을까? 나중에는 제법 잘하였지만, 초창기는 여러분들의 상상에 맡기겠다. 그는 쫄병때도 남들이 흉내내기도 어려운 일(그것을 기행이라고 해도 되겠다.)도 가끔 했는데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그의 '빨간 빤스'사건이었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당시에는 매일 야간 점호가 있었고 매주 토요일에는 어김없이 내무사열이 있었다. 포대장이나 상황 장교가 내무사열을 하였는데 '빨간 빤스'사건 때는 포대장이 주관했는지 상황 장교가 주관했는지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확실한 것은 소대원들의 위생상태를 점검하고자 바지를 벗도록 명령하였는데 그만 야단이 나고 말았다. 고참도 아닌 쫄병 놈이 '빨간 빤스'를 떡하니 입고 버티고 섰으니 장교는 물론이거니와 고참, 쫄병 모두 황당하여 넋을 놓고 말았다.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는 것도 고통이었지만, 앞으로 벌어질 일을 생각하니 모골이 송연하였다. 아~!! 이제 저 새끼 때문에 주말은 반납하여야 할 것 같고, 계급순으로 동기순으로 내려올 기합을 생각하니 앞일이 막막했다.

 

도대체 그 '빨간 빤스' 어떻게 된 영문인가? 하늘에서 내려왔나? 땅에서 솟았나? 분명히 걸레 2.4종을 맡고 있는 길손이 지급한 것도 아닌데~

 

자초지종은 이랬다. 우리 부대는 후방에 있는 부대이고, 대도시에 있었기 때문에 소대원들은 순서대로 외출, 외박을 실시하고 있었는데 집이 부대에서 2~3시간 거리에 있는 길손은 외박을 가끔 갔었지만, 본가가 완도인 그는 언감생심 1박 2일의 외박으로는 그의 집을 찾아갈 수가 없었기에 외출 외박은 전투비행단 근처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그러다가 어느 여고생을 알았다고 한다. 그렇게 몇 번 만나다가 넘지 못할 선을 넘게 되었고, 어느 날인가 그 여학생이 입고 있었던 멘스용 빤스를 가지고 와서 그 여학생을 사랑하는 마음을 애틋하게 담아 몰래 입고 다니다가 그날이 내무사열이라는 것을 깜빡하였던 것이다. 그 이후에 일어난 일도 여러분의 상상에 맡긴다.

 

- 다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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