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의 자존심 한도닭

2018. 1. 16. 17:30지난 날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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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지리산 털보님 블로그]

 

 

지금은 시골에서도 방사해서 사육하는 닭을 구경하는 것이 무척 어렵지만, 길손이 어렸던 시절에는 집집마다 닭을 키우고 있었다. 달걀을 먹기 위함도 있겠거니와 장닭과 암탉이 힘을 합쳐서 많은 병아리를 부화하고, 그것을 중닭으로 키워서 시장에 내다 팔면 소소한 용돈이라도 벌어볼 수가 있기 때문에 닭과 병아리는 집안 마당은 말할 것도 없고 사립문을 나서서 어떤 때는 3~400m나 떨어진 논으로 병아리를 데려갔다가 새매에게 당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길손의 옆집에는 지금은 모두 고인이 된 부부가 살았는데 성격이 고약하기로 근동에 소문나고, 성품이 관용이라는 것은 아예 없었을 뿐만 아니라 중상모략으로 없는 일도 만들어 뒤집어 씌우곤 했는데 완고하기도 워낙 완고하여 자신의 자식을 교육시키는 것도 쓸모없는 짓으로 여겼기에 지금은 그 흔한 고등학교를 나온 자식도 없었다. 부부가 함께 살다 보면 그 성품도 비슷해진다는 부창부수(隨) 한자성어와 같이 家長을 닮은 아내는 평소 질투가 심하고, 남끼리 이간질을 밥 먹듯이 하고, 이렇게 이웃에게 가한 패악질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우리 집에도 여러 마리의 닭을 키우고 있었는데 처음에는 위의 사진에 나오는 화려하고 붉은 깃털과 크고 멋진 벼슬을 가진 수탉이 있었다. 장닭의 나와바리라는 것이 대체로 성건 흙과 볼품없는 돌을 쌓아서 만든 담장 안인데 어쩌다가 밖에 나가서 제 암탉과 병아리를 데리고 다니다가 이웃집 장닭과 조우하여 큰 싸움이 일어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옆집에는 '한도닭'이라고 불리는 싸움닭이 있었는데 키가 껑충 크고 다리는 단단한 근육질이며, 볏은 마치 붉은 맨드라미가 가뭄에 제대로 자라지 않아 쪼글거린 것처럼 크기도 작았지만, 특히 눈매는 있는대로 째려보는 것같이 험하게 생겨서 우리 장닭은 옆집 한도닭만 보면 제대로 기를 펴지 못했다.

 

아이들끼리 싸우면 코피가 먼저 터지는 쪽이 사기가 급격히 낮아지면서 싸움에 질 확률이 아주 높았다. 그래서 싸울 때면 상대방의 코를 집중적으로 공격하게 되는데 코를 제대로 한 방 맞는 순간에는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코피가 주르륵 턱을 타고 흘러내리면 이내 패색이 짙어지고 옆에서 보던 친구들이 말리면 싸움은 끝이 났다.

 

장닭끼리의 싸움도 사람의 그것과 비슷했다. 싸우는 두 놈은 목의 털을 한껏 부풀어 세우고, 상대방의 벼슬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는데 서로 머리를 끄떡거리며 째려보다가 공중으로 치솟으면서 서로의 볏을 쪼아대서 볏의 크기가 한도닭보다 월등히 넓고 붉고 큰 길손의 장닭은 평소에 보기 좋던 벼슬이 싸움에서는 큰 애물단지가 되어 연거푸 쪼인 그곳은 피투성이가 되고, 마침내 피를 본 우리 장닭은 그로기 모드로 들어간다.

 

볏에서 흘러내린 피가 목깃을 타고 온몸을 적셔 피투성이가 된 우리 장닭을 보는 길손의 심정은 어린 마음에도 갈기갈기 찢어졌다. 우리 장닭이 개구멍으로 제 식구들을 데리고 행여나 옆집으로 가서 싸움이 일어난 날은 그 한도닭 한 마리와 대적하는 것도 아니요 무시무시한 옆집 질투 꾼의 부엌 부지깽이와 발길질에 거의 초주검으로 돌아온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사진출처 : 산청 청계농원님]

 

 

보다 못한 어머니는 어느 날 어디선가 옆집 닭처럼 생긴 한도닭을 한 마리 구해왔다. 아마도 오일장에서 사오신 것 같았다. 새로운 식구인 중닭인 그놈은 세월이 갈수록 무럭무럭 자라는데 늠름한 기상과 울음소리는 옆집 한도닭을 제압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아직 완전한 성체가 되기 전에는 이웃집 장닭에게 밀리더니 몇 개월이 지나니 키도 더 크고, 눈꼬리도 더 매섭고, 작은 볏도 어찌나 단단하고 뜨거운지 그야말로 한창때의 패기를 지니고 있었다.

 

드디어 우리의 호프 한도닭이 식구를 이끌고 밖에 나갔다가 옆집 닭과 마주치면서 싸움을 하였는데 우선 높이뛰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이미 옆집 닭은 노쇠해 가고 있었으니 그렇겠지만, 힘차게 날아올라 두다리를 힘껏 앞으로 뻗으면서 정면 차기를 하니 옆집 닭은 벌러덩 뒤로 넘어지면서 힘겹게 일어나는데 사정없이 그놈의 벼슬을 찍어댄다. 그러기를 50여 합, 옆집 닭은 비실거리면서 바닥에 힘없이 주저앉으니 우리 한도닭은 더 기세가 등등하여 여러 암탉과 병아리가 보는 앞에서 옆집 닭을 만신창이로 만들어주었다. 그 후로는 옆집 닭이 우리 한도닭만 보면 부리나케 도망가기 때문에 다시 싸울 일은 크게 없었다.

 

그렇게 길손의 마음을 후련하게 해주었던 우리 한도닭은 몇 달 후에 흙으로 만들어진 닭장까지 부수면서 닭을 훔쳐간 닭도둑 놈 때문에 끝장났지만, 지금도 그때의 한도닭이 눈에 선하다. 이웃 동네에 살면서 남의 염소나 닭을 훔치고, 남의 물건에 손을 대던 인간성 쓰레기 양아치인 고향 선배는 죗값을 받았는지 한창 살아야 할 나이에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옆집 고약한 노부부의 자식 중에서 일찍 병으로 죽거나 사는 꼴이 형편없는 것을 보면 아마도 인과응보가 농후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