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8. 11. 08:05ㆍ지난 날의 추억
[사진출처 : 충청 투데이]
우리의 호프 이발병은 워낙 자유로운 영혼이다 보니 엄격한 군대생활에는 체질적으로 잘 맞지 않는 것 같았다. 어떻게 군대는 끌려서 왔는데 억지로 생활하려니 자연적으로 돈키호테 비슷한 행동이 외부로 나타났을 것이고, 고참들은 그런 그를 이해할 수도 없었겠거니와 그렇다고 그냥 두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쫄병이 쫄병답게 고참 앞에서 매사 벌벌 겨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그가 탐탁지 않았을 고참들이 추측건대 창고 등 후미진 곳에서 자주 구타가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는 단체 구타도 있었지만, 개별 구타도 많았었다. 단체구타는 그래도 명분이라도 있는데 개별 구타는 명분도 없고 그냥 제 눈에 거슬리니 개인감정을 이입시켜 구타를 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돋보이게 하고 싶었을 것이다. 물론 구타로 희열과 만족도 느꼈겠지만~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 알았지만, 평소 고참의 갈굼을 당하던 그가 그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고참들의 기를 꺾어 놓은 일이 있었다. 보통 병사들은 야간에 보초를 서고 교대가 되면 모두 내무반에 즉시 들어와서 잠자리에 드는데 그는 교대하고도 내무반에 들어오지 않고, 새벽 1~2시 이슥한 시간에 목욕탕에 겸해 있는 이발소에서 불을 켜놓고 1시간 정도를 머무르다가 내무반에 들어오는 기이한 일이 계속 있었던 모양이다.
평소 내무반에서 편하게 불침번만을 서던 고참들이 한밤 중에 불이 켜진 이발소가 궁금하였을 것이고, 무슨 일인가 하고 몰래 문틈으로 보았을 것이다.
그 이발병은 자신의 철모와 소총을 이발 의자에 기대어 세워놓고 무엇인가 열심히 갈고 있었다고 하는데 무엇을 갈고 있었는지 알고 나서는 아마도 경악했을 것이다.
요즘이야 면도할 때 일회용 면도칼이나 안전 면도칼이 주로 사용되지만, 옛날의 이발소 이발 면도칼은 무게도 제법 무겁고 투박하여 날이 무뎌지면 벽에 묶인 넓고 긴 혁대와 같이 생긴 두꺼운 가죽 표면에 면도칼 앞뒤 면을 왕복으로 쓱싹쓱싹 갈아서 면도칼의 날을 세워 사용했는데
그 이발병은 날이 시퍼렇게 선 면도칼을 잠도 자지 않고 가죽에 문대면서 계속 날을 갈고 있으니 그런 일을 하는 그가 처음에는 궁금했겠지만, 나중에는 공포로 다가왔을 것으로 짐작된다. 워낙 분위기가 무겁고 기괴하니 안으로 들어갈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고, 그렇다고 동네방네 나발불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몇 날 며칠을 그렇게 넓은 가죽 혁대에 면도날을 갈아대니 그런 행동에 심상치 않음을 느낀 고참들이 저들끼리 몰래 만나서 의견을 나눴을 것이다. 결론은 뻔하지 않은가? 고참들도 그것을 보고 나서는 덩달아 편한 잠을 자기 어려웠을 것이다.
결국, 고참들은 그에게 심하게 대한 것에 대해 모두 사과를 했고, 그들이 재발방지 약속을 하면서 고참들의 개인적인 갈굼에서 해방되었다고 한다. 그의 성품으로 보아 고참에게 덤비면 큰 사고가 날 것이고, 그러면 불명예를 가지고 전역해야 하는데 독특하고 현명한(?) 방법으로 고참들을 퇴치(?)하였으니 그런 수완으로 전복 양식사업도 잘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다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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