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생활 에피소드(21)

2016. 7. 25. 07:48지난 날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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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1포대로 전입하여 2~3개월이 지났을까? 난데없이 1여단 본부의 '사병계'로 전출명령이 떨어졌다. 주변에 미군과 양공주 구경하는 것이 기분이 쏠쏠하고, 비록 귀청이 터지려고 하지만, 전투기 보는 재미에 푹 빠져있던 길손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내가 오산에서 1여단 본부로 내려와서 포대로 가기 전에 하루인가 이틀인가 잠깐 머물렀던 1여단 본부에서는 길손이 쓴 글씨를 보고 사병계 병장이 나를 탐 내는 소리를 들었다. 사병계를 시키면서 차트를 시키겠다는 심산이었다. 그러나 861포대로 무사히 내려왔는데~

 

전출명령이 떨어졌으니 더플백을 메고, 부관과 인사계, 그리고 같이 근무하던 행정반원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제861포대를 떠나 여단 본부 행정실로 갔다. 사병계 병장은 제대 특명이 내려와서 얼굴에 희색만면이고, 빨리 나에게 사병계 일을 인수인계하려고 안달이 났다.

 

장교계는 장교 인사를 담당하는 병사이고, 사병계는 사병들의 인사를 담당하는 병사인데 나를 사병계에 근무하도록 명령한 것이다. 길손의 얼굴에서는 웃음기가 사라지고, 심각한 걱정이 있는 얼굴로 변해버렸다. 우리 포대에서는 소대원들이 커다란 솥으로 지은 밥에 오손도손 밥을 먹고 지내다가 갑자기 큰 부대로 오니 후반기 교육받는 방공포병과 섞여서 식당은 줄을 서고 난리도 아니거니와 통일화를 신고 다니는 행색은 처량해 보이기 짝이 없었다. 이전 861포대에서는 미군과 공군보다는 행색이 못하지만, 인근 공병대대보다는 행색이 나았는데 이곳 여단은 군복입은 꼬라지가 그 공병대대보다 못했으니

 

야~~!! 이렇게 무식하고 무도하게 보이는 곳에 전입하였으니 이것 보통 일이 아니다. 내 군 생활은 여기까지 인가 보다 하고 낙담하는데 옆에 군종병이 찰싹하고 붙는다. 나보다 20여 일이나 입대가 빠른 병사로 기억되는데 그는 입대하기 전부터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고 한다. 같이 첫 식사를 하려고 식당에 들어서니 훈련소에서 경험했던 그 독특한 짬밥과 국물 냄새가 내 비위를 뒤튼다. 솥에 석유 버너로 한 밥을 먹다가 식판에 증기로 찐 밥과 국을 먹으려니 도저히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아마 내 넋은 이미 유체이탈을 하고 있었으리라~~

 

내가 유체이탈한 상태로 보였는지 군종병은 잠자리도 나와 같이하고, 행정실에서는 나를 열외 시킨 다음에 군종병과 나를 함께 다니라고 하였는가 보다. 그 군종병은 주간에는 여단에 있는 작은 교회로 데려가서 자기하고 잘해보자고 구슬리는데 도통 내 생각은 이전 포대에만 머물고 있다. 이제 탈영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밥을 제대로 못 먹고, 잠도 제대로 못 잤으니 몰골이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군종병은 그런 상태를 행정실장인 소령에게 보고하였을 것이고, 그렇게 일주일가량 고통스런 시간이 흘렀을 때 행정실장인 소령이 나를 찾는다는 연락이 왔다.

 

이제 결행할 일만 남았던 길손이 소령 앞에 가니 소령이 웃으면서 길손을 맞는다.

 

"너 정말 이곳에서 근무하기가 싫나?"

 

"네 그렇습니다. 이전 부대로 다시 보내주십시오"

 

"정말 그렇게도 이 부대가 싫어?"

 

"네 도저히 이곳에서는 근무를 못 하겠습니다."

 

"네가 사병계를 하면, 한 달에 한 번씩 인원 결산 때문에 오산사령부를 2박 3일 출장 갈 것이고, 시간이 남으면 집에도 갈 수가 있는데, 누구나 탐내는 보직이 너는 싫냐? 나는 쉽게 이해가 안 되는데"

 

"그래도 저는 싫습니다. 861포대로 돌아가게 해주십시오"

 

"알았다. 사병이 본인이 전출명령이 났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근무하기 싫다고 해서 명령이 번복된 것은 1여단이 창설된 이래로 네가 처음일 것이다. 다시 그곳으로 보내줄테니 근무 잘 해라!!"

 

사람이 살면서 어려운 고비가 생길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천지신명이 도왔는지 그 고비를 무사히 넘겼는데 지금은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런 훌륭한 소령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한다.

 

소령님! 감사합니다. 내가 마음을 담아 술이라도 한잔 대접하고 싶지만, 이젠 누군지 알 수가 없으니 이곳을 통해서라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장성이 되었어도 이미 벌써 전역을 하셨겠지만,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예전 부대로 돌아오니 인사계가 반갑게 맞는다. 그렇게 해서 다시 861포대 생활을 시작했다.

 

- 다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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