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오죽헌

2016. 8. 22. 15:57여행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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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도에 수학여행으로 이곳 오죽헌에 오고, 오늘 처음 오는 것이다. 그때는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지금은 이곳 오죽헌 입구에 도착하기 전까지 엄청 큰 규모로 공원이 조성되었다. 폭염으로 구경하는 것도 정말 고역이다.

 

 

 

 

 

 

 

이 그림은 일제 강점기에 어느 화가가 그린 오죽헌의 모습이라고 하는데 초가집도 여러 채가 있다.

 

 

 

 

 

 

 

 

율곡 이이(珥)의 영정을 모시는 사당 옆에는 '율곡송'이라고 불리는 아름다운 소나무가 두 그루가 있다.

 

율곡(栗谷)이라는 호(號)는 그가 한양과 파주를 오가며 살았다고 한다. 파주 본가에 있는 동네 이름이 율곡이었는데 밤나무가 많았었나 보다. 그는 그곳의 지명을 자신의 호로 가져왔다.

 

 

 

 

 

 

 

 

 

율곡이 태어난 오죽헌이다.

 

 

 

 

 

 

 

 

율곡이 태어난 방이다.

 

 

 

 

 

 

 

율곡 외갓집의 생활공간인 본채다.

 

 

 

 

 

 

어제각(御製閣)

 

 

 

 

 

 

 

율곡이 쓰던 벼루라고 하는데 아마도 진품은 따로 보관할 것이고, 모조품이 아닌가 한다.

 

 

 

 

 

 

도난을 막으려고 CCTV를 설치한 것을 보면 진품 같기도 하고,

 

 

 

 

 

 

우리의 선조들은 어떤 좋은 일을 하고도 자신을 잘 내세우지 않았다. 즉 공치사하는 것을 경계하였던 것이다. 어제각 내부 왼쪽에는 시편이 한 개가 걸렸는데 가만히 보니 강릉시장이란 사람이 건 것이다. 어제각을 이전 개축하면서 자신이 어떤 역할(사실은 국가 예산으로 한 것이겠지만)을 했다고 저렇게 공치사하는 글을 남겼는데 참으로 한심한 생각이 들고 저렇게 한다고 율곡 선생이 저승에서 그를 만나면 어제각 지어줘서 고맙다고 아는 체를 할까?

 

 

 

 

 

 

오죽헌 뒤로 보이는 금강송들이 오죽헌을 돋보이게 한다.

 

 

 

 

 

문성사 앞에 자라는 이 배롱나무는 신사임당과 율곡이 살던 당시에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