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여행 첫째 날 (호찌민 생활공간 및 박물관, 호찌민 묘, 노니 석식, 숙박)

2017. 1. 20. 13:14여행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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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참전 군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호찌민'은 적의 수괴다. 그 사람의 신념과 지략으로 얼마나 많은 우리 군인들이 희생되었던가 그렇지만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면 그는 영웅임에 틀림이 없다.

 

위의 건물은 옛 왕궁터이자 프랑스 식민 시절에 총독관저라고 하는데 프랑스가 물러가고 참모들이 호치민에게 이곳에서 살기를 권했으나 자신은 지배자가 아니고 지도자이기에 이곳에 살 수가 없다고 하면서 거절하였다고 한다.

 

 

 

 

사진 가운데 나무 뒤로 보이는 곳이 호찌민이 거처하던 곳이라고 한다. 가이드는 철저히 현지화가 되었고, 그는 호찌민을 굉장히 존경하는 사람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의 약력을 자꾸 들으니 우리나라에는 왜 저런 영웅이 없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정말로 간소하다는 느낌밖에 없다. 더운 나라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침대에는 식물 줄기로 짠 침대 시트가 눈길을 끈다.

 

 

 

 

호찌민이 지방 출장을 다닐 때 밥을 싸서 가지고 다녔던 은제 도시락이라고 한다. 길손의 생각은 호사스럽게 하려고 은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 독을 밥에 넣으면 빨리 발견하려고 그런 것이 아니었겠냐 하는 짐작을 한다.

 

 

 

 

호찌민 숙소 뒤에는 커다란 인공 연못이 있었다.

 

 

 

 

큰 나무 옆으로 작은 새끼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나무뿌리에서 새싹이 나오는 것으로 짐작된다. 나무 밑둥에는 흰칠을 하였는데 고무성분으로 만들어서 해충의 습격을 막는다고 한다.

 

 

 

 

이곳에서도 호찌민이 기거했다는데 1층은 회의용 탁자가 있었고, 2층은 침실이 있었다.

 

 

 

 

이곳은 2층의 모습이다. 한국처럼 추운 곳이라면 이런 목조 건물에서 살기가 어려울 것이다.

 

 

 

 

2층 집무실로 보이고,

 

 

 

 

중앙 창 안으로 작은 책상이 있고, 오른쪽에는 작은 침실이 있었다.

 

 

 

 

거동이 불편하던 말년에는 2층 숙소에서 뒤로 3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저 건물 불이 켜진 제일 왼쪽 방을 사용했었다는데 가이드 말을 빌리면 마지막에는 다시 2층 숙소에 와서 죽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아는 것과 다르게 그는 발견되었을 당시 이미 사망한 상태였었다고 한다.

 

 

 

 

연못 건너편 큰 야자수 아래에는 노란색 계단이 있는데 호찌민은 생전에 저곳에 나와서 물고기에게 먹이를 주곤 했단다. 2016년 5월 저곳을 찾은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그 소리를 듣고 그도 물기고 밥을 던지는 퍼포먼스를 했다나 말았다나?

 

 

 

 

연못을 돌아 나오는데 '연리목'이 있다. 분명히 밑의 나무와 위의 나무가 다르다. 나무 중앙에서 야자수가 자라고 있었다.

 

 

 

 

밑동 나무의 잎과 중간 위에서 자라는 야자수의 일이 다르다.

 

 

 

 

호치민 박물관 입구

 

 

 

 

호찌민이 야전에서 사용했다는 간이 책상과 의자가 있고,

 

 

 

 

그가 머리에 썼었던 모자도 있고,

 

 

 

의 유품에는 몽당연필도 있었는데 2가지 색을 가진 연필이어서 눈길을 끌었다. 저것을 보니 국민학교 다닐 때 가지고 다녔던 몽당연필이 생각났다.

 

 

 

 

실물크기의 그의 사진이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지냈는데 그래서 그런지 그는 국민에게는 결혼을 권유했다고 한다.

 

 

 

 

기둥이 한 개가 있는 일주(一柱) 사원(寺院)이라고 한다. 원래 기둥은 물에 강한 나무였지만 외적의 침략으로 소실되어 수십 년 전에 시멘트 기둥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인도에서 부처님이 나무 그늘 밑에서 명상하실 때 그 보리수의 어린 나무라고 한다.

 

 

 

주변에 대통령궁, 의사당, 호찌민의 영묘가 있는 바딘 광장은 호찌민이 1945년 베트남의 독립을 선언한 곳이라고 한다.

 

 

 

 

베트남 의회 건물

 

 

 

 

호찌민 영묘의 모습이다. 밑의 대리석은 검은 색을 띠는데 베트남 남부에서 나는 돌이고, 위의 희색은 베트남 북부에서 나는 돌이라고 한다. 죽어서도 그의 묘는 국민 통합을 상징한다.

 

호찌민은 생전에 박호(호 아저씨)로 불리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는 세 가지 유언을 남겼다는데 첫째, 같은 민족끼리 미워하지마라. 둘째, 소수민족을 우대하라 셋째, 자신의 무덤을 만들지 마라. 이렇게 세가지 유언중에 무덤을 만들지 마라는 유언은 지키지 못하고 인민들의 이름으로 이곳 바딘 광장에 그의 묘를 만들었다고 한다

 

 

호찌민 묘는 베트남 전쟁이 끝난 1975년 9월 2일 건국기념일에 맞춰 조성되었다. 호찌민은 자신이 죽은 후 화장해서 베트남 남부, 중부, 북부에 나누어 뿌려 달라는 유언을 남겼지만, 국가통합과 정치적인 이유 등으로 그의 시신은 영구 보존되고 있는데 김일성과 김정일은 여기에서 영감을 얻어 시신을 영구 보존하였다고 한다.

 

 

 

 

 

 

 

 

하롱베이 쪽으로 한참을 가다가 어느 으슥한 곳에 차를 세우고 들어간 허름한 식당에 노니 수육 보쌈이 나왔다. 삼겹살에 정말 지방이 가득하다.

 

 

 

 

현지 술을 맛보기 위해서 시켰는데 7달러를 달란다. 원가는 1달러도 아닐 것인데 이것이 해외 관광지나 국내 관광지에서 만나는 바가지 상혼이다. 술맛을 보니 옛 우리의 금복주 25도 짜리 맛으로 형편이 없다. 앞으로 또 거론하겠지만, 가이드는 관광객을 위하는지 저 자신을 위하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5성급이라는 '무엉탕 광린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시설은 깨끗하였고, 호텔조식도 마음에 들었다.

 

 

 

 

엘리베이터나 복도에서 만나는 사람은 전부 한국 사람이다. 일본 사람은 거의 볼 수가 없었다.

 

 

 

 

길손이 묵었던 28층 룸에서 본 하롱베이 바깥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