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씨엠립 여행 첫째 날[앙코르와트(2)]

2017. 1. 25. 14:44살아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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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Angkor)와트(Wat)의 '앙코르의 사원'이라는 의미를 가졌으며, 앙코르왕조의 전성기를 이룬 수리야바르만 2세(Suryavarman, 1113-1150)의 사후 세계를 위한 사원으로 건축되었으며, 수리아바르만 2세가 바라문교() 주신()의 하나인 비슈누 신과 합일하기 위하여 건립한 바라문교 사원이라고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앙코르와트 유적이 세계 7대 불가사의에 들어갔었지만, 그 7대 불가사의에서 지금은 빠졌다고 한다. 인터넷 투표를 통해서 뽑으니 국력도 약하고, 인구도 적은 캄보디아에서는 언감생심 그림의 떡이었을 것이다.

 

 

 

 

너비 190m의 해자()를 건너면 3기()의 탑()과 함께 길다란 익랑()이 있고, 그것을 지나면 돌을 깔아놓은 참배로()를 따라 475 m쯤 가면 중앙사원에 다다른다. 앞에 삼각형 탑이 멀리 보이는 것이 앙코르와트의 하이라이트인 중앙사원이다.

 

 

 

 

 

가이드는 중앙 참배 길을 조금 따라가는가 싶더니 갑자기 참배 길 왼쪽 밑으로 내려선다. 영문을 모르고 따라가니 작은 건축물이 나온다.

 

 

 

 

 

이 건축물은 밑에서 돌을 다듬어 올린 것이 아니라 다듬지 않은 돌을 일단 올려놓고, 그것을 다듬었다고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지나갔는지 바닥이 만질만질하다.

 

 

 

 

 

 

이 석재는 이곳에서 40여 Km 떨어진 채석장에서 돌에 뚫린 구멍에 나무를 박거나 끈으로 묶어서 가지고 왔다는데 그들의 노고가 짐작되고도 남는다. 

 

 

 

 

 

앙코르와트는 힌두교를 신봉하던 수리야바르만 2세가 축조하였다고 한다.

 

 

 

 

 

 

이 앙코르와트 유적은 수 백 년 간 밀림 속에 방치되어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다가 1860년 프랑스 출신의 박물학자인 '앙리 무오'라는 사람이 캄보디아에 각종 표본채집을 위해 근처에 왔다가 어느 선교사가 말하기를 깊은 정글에 들어가면 어마어마한 사원이 있다는 말을 듣고, 현지인들과 탐사대를 꾸려서 찾아 나섰는데 막상 먼 발치에서 유적을 발견하고 들어가려고 했으나 현지인들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하는 수 없이 혼자 들어가서 발견했다는데 현지인들이 말하기를 저기에 가면 저주를 받아서 3년 안에 죽는다고 했단다. 그들의 예언처럼 그는 앙코르와트 발견 다음 해인 1861년 10월에 열병에 걸려 숨을 거두고 말았다고 한다. 그의 고귀한 희생 덕분에 우리는 세기의 건축물을 구경하고 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잠시 목을 축이면서 쉬어간다.

 

 

 

 

 

 

전체 길이 760m에 이르는 제1회랑이다. 제 1회랑의 벽()에는 많은 부조가 새겨져 있으며, 회랑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저 계단을 올라야 한다.

 

 

 

 

 

 

머리는 인간의 형상이요 다리는 사자인 '반인반수(半人半獸) 像'이 입구를 지킨다. 이 '반인반수 상'은 태평성대에는 엉덩이를 바닥에 대고 앉아있다가 전란이 일어나고 나라가 어지러우면 엉덩이를 쳐들고 뛰어나갈 태세를 갖춘다고 한다. 사자는 꼬리가 없으면 방향전환을 잘하지 못하여 맹수의 용맹함이 없어진다는데

 

태국이나 베트남의 침략자들이 일본사람들이 우리의 정기를 뺏고자 우리 강산 산등성이에 군데군데 쇠막대기를 박았던 것처럼 그들도 이 반인반수 상의 꼬리를 빼서 캄보디아의 혼을 빼았아 갔다.

 

그래서 수백 년 간 밀림에 방치도었는지 모르지만, 조선시대에 정도전이 이것을 흉내내어 불의 기운을 막기 '해태' 像을 궁궐에 세웠다고 하는데 이것의 변형일 수도 있겠다.

 

 

 

 

 

 

제 1회랑의 부조가 있는 곳이다. 이곳 앙코르와트의 관리는 부실하기 짝이 없다. 워낙 관리능력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유적을 만질 수가 있고, 파손할 수도 있다. 더운 날씨에 땀이 묻은 손으로 부조를 만지면 사암이 퇴적한 허술한 석물은 소금기가 서서히 스며들어서 마침내 부스러져 버릴 것인데도 누구 하나 지켜보는 당국자가 없었다. 세계적인 유물을 이렇게 방치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특히 우리나라 특정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아무리 우상숭배로 보여도 훼손은 하지 말자! 꼴 뵈기 싫으면서 굳이 그곳으로 가는 이유는 뭘까? 부처의 코라도 떼어야 직성이 풀리남?

 

 

 

 

 

 

 

이 부조는 어느 부부가 금실 좋게 살다가 전란이 일어나서 적국에 붙잡혀 가서 상대국 남자와 10년을 살다가 우리네 '환향녀'처럼 그리던 집으로 돌아왔는데 자신은 그 남자와 아무 일도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남편이 믿지를 않아 절벽에서 몸을 던졌는데 밑에 원숭이들이 떨어지는 아낙을 받아서 살렸다나 어쩠다나~~ 나라에 힘이 없어 외세의 침략이 잦은 곳엔 그런 가슴 아픈 역사가 있으니 우리 정신 똑바로 차리고, 트럼프와 시진핑, 아베를 극복합시다. 그려~~

 

 

 

 

 

원숭이들이 안타까워하면서 일제히 위를 쳐다보고 있다.

 

 

 

 

 

 

 

 

서면의 남쪽인 이 부조에는 고대 인도의 서사시 '마하바라타'의 장면으로, 카우라바군과 판다바군의 전쟁이 그려져 있다.

 

 

 

 

 

 

 

 

 

이 문양의 조각기법은 다른 부조와는 달리 독특하고, 섬세하다.

 

 

 

 

 

이곳에 와서 길손은 가슴이 조금 아팠다. 스케치만 하고 미완성으로 남아있는 부조를 보고 나서 그렇다. 추측으로는 미완성 이유가 어떤 슬픈 역사와 관련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미치면서 그랬다.

 

 

 

 

 

 

 

이 암호와 같은 글씨가 그때의 사정을 알려줄 수가 있을까?

 

 

 

 

 

 

높이가 12m인 제 2 회랑에 들어왔다. 이곳은 인간 세계를 표현한단다.

 

 

 

 

 

 

 

이곳은 큰 욕조(?)로 보인다. 전통 의상을 입은 여인 발밑 오른쪽으로 물이 빠지는 구멍이 보이는 이곳은 인간이 목욕하는 곳이라 한다. 만약 이곳이 정말 욕조라면 물이 새지 않도록 축조하였다는 것인데 그 기술은 정말 상당하고, 불가사의 했을 것이다.

 

 

 

 

 

저 위가 신(神)의 세계이며, 그곳 신의 목욕탕에서 사용한 물이 밑으로 떨어진다고 한다.

 

 

 

 

 

 

 

이제는 높이 25m인 제 3회랑을 가기 위해 일행들이 우르르 밖으로 나와 세계의 중심이며, 신(왕)들의 자리를 뜻하는 수미산()의 상징인 중앙탑을 배경으로 사진찍기 위해 나간다. 무조건 한 장에

 

 

 

 

 

 

 

 

 

마지막 관문인 신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70도의 계단을 올라야 한다. 원래 계산을 보니 신발 한 개의 폭도 제대로 나오지 않고, 옛날 저곳에 오를 때는 엉금엉금 기어서 위험하게 올랐을 것이다. 관광객을 위해 철제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밑을 내려다보니 아찔하다. 이 앙코르와트를 건축할 때 비계를 사용했는지 안 했는지 불가사이하다.

 

 

 

 

 

제3 회랑에 들어서니 이런 복도가 사면을 따라 있었고 각 기둥에는 부조가 조각되어 있었다.

 

 

 

 

 

 

바깥부터 제1 회랑, 제2 회랑이 보인다.

 

 

 

 

 

 

 

 

복도를 지나면서 밖을 찍는다. 밑에 제2 회랑을 지나가는 관광객의 모습도 보이고, 이제는 인간세계를 떠나 신의 세계에 길손이 들어온 것이다.

 

 

 

 

 

 

신의 세계여서 인지 기둥도 아름답게 세워져 있다.

 

 

 

 

 

신(神)들의 목욕탕이 보인다. 전설에 의하면 이곳 앙코르와트가 멸망한 이유가 문둥병이 걸린 왕이 이곳에서 목욕한 물을 밑으로 내려보내고, 이물을 이용해서 목욕한 백성들이 문둥병에 걸리자 모두 겁이 나서 도망가는 바람에 이곳이 밀림에 폐허로 남았다고 하는데 그것은 믿거나 말거나~~

 

 

 

 

 

 

 

회랑을 돌면서 밖과 안을 보면서 간다. 발 밑이 약간 불안하다.^^ 그런데 물은 펌프도 없었을 텐데 가파른 계단을 통해 물통에 물을 날라서 여기를 채웠던가?

 

 

 

 

 

 

 

회랑에는 와불(臥佛)보인다. 원래 이곳은 힌두교 사원이었다고 한다. 불교도였던 쟈야바르만 4세는 이전의 힌두교를 버리고 소승불교를 국교로 받아들였는데 그래서 王都 앙코르에서 힌두교는 사라지게 되었고, 1432년부터 버려진 도시가 되었던 앙코르와트는 소승불교 사원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고 한다.

 

 

 

 

 

돌아 나가면서 또 다른 회랑에 들어섰다. 시간에 쫓겨서 어찌나 일행들이 빨리 가는지 주마간산 격으로 구경하니 뭐가 뭔지 모르겠고, 스마트폰과 다른 카메라도 번갈아 찍기도 바쁘다. 정말 중요한 유적에 와서 이것은 말이 안 된다. 망할 놈의 여행사 적자 보전인지 아니면 가이드 팁을 위한 건지는 몰라도 엉뚱한 곳에서 약장사 같은 사람들 얘기 듣고 있다가 이렇게 시간이 지나가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물건 파는 데서는 그렇게 긴 시간을 잡으면서 이래서야 되겠는가?

 

 

 

 

 

멀리 참배 도로와 익랑(翼廊)이 희미하게 보이는 중앙에 섰다.

 

 

 

 

 

이곳에서 크메르루주 軍과 이를 진압하는 베트남軍들 사이에서 앙코르와트가 큰 피해를 보았다고 한다. 지금도 복원이 한창인데 완벽한 복원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전체 유적의 70%가 복원불능의 상태라니 안타깝다. 

 

 

 

 

 

 

 

 

 

 

제3 회랑을 지나가면서도 바깥을 보면서 머리에 담는다.

 

 

 

 

 

 

길손이 무례하게 카메라를 갖다 대자 젊은 스님은 웃으시면서 몸을 돌리고 포즈를 취해주신다. 부디 성불하시기를~

 

 

 

 

 

 

마지막 회랑에서 다시 안쪽의 욕조를 보면서

 

 

 

 

 

 

 

 

다시 해자를 건너 나와서 멀리 앙코르와트를 조망한다. 그곳에는 1992년에 이곳 유적群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비문이 있었다.

 

 

 

 

앙코르와트 평면도(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