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2. 21. 11:47ㆍ살아가는 이야기
이 고산 서당은 워낙 외진 곳에 있어서 우연이나 필연(?)이 아니면 만날 수가 없는 곳이다. 낮에 시간이 있어서 욱수천 산책로를 따라서 평소 가보지 않았던 곳으로 크게 돌게 되었는데 경산에서 내려오는 남천을 따라 금호강 방향으로 내려가니 도시 농민들이 봄을 맞아 내놓은 두엄 냄새가 진동한다.
금호강과 남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왼쪽으로 오래된 제실이 보인다. 지금의 안목으로 본다면 이런 곳에 저런 고건축물이 있을 이유가 없는데 그냥 지나치기에는 그 호기심의 끈이 길손을 놓지 않아 이곳에 왔다.
고산(孤山)이란 이름을 보니 길손이 사는 곳이라 친숙함이 느껴지는데 서원도 아니고 서당이라니 조금 낯설기도 하다. 그러나 서당(書堂)은 서원(書院)의 옛 이름이라고 한다.
이 고산 서당을 품은 산은 들판에 외로이 홀로 서 있다고 해서 孤山으로 지었다고 한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뜬금없는 곳에 세워졌지만, 옛날에는 주위가 전부 들판이어서 부농들이 많이 살았고, 그러다 보니 교육에 신경 쓰게 되면서 지금 같으면 초등학교 같은 서당을 지었을 것이다.
안내 팜플렛을 보니 언제 지었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고 하는데 퇴계 이황(1501~1570)선생과 우복 정경세(1563~1633)선생이 이곳에서 강혼했다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1500년대에 이미 건립되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서당은 1690년(숙종16) 퇴계. 우복 두 선생의 위폐를 모시는 사당은 지은 뒤 고산서원으로 그 이름을 바꾸었으며, 1734년(연조10)에는 강당 및 동,서재를 새로 지었다. 그 뒤 1868년(고종5)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때 철거된 것을 1879년(고종16) 옛 터에 강당만 다시 지어 고산서당이라 하였다. 서당 뒤쪽의 옛 사당 터에는 퇴계와 우복 선생의 강학 유허비가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유서가 깊은 곳에 공덕비가 빠지면 앙꼬 없는 찐빵이 되기에 당연히 이런 비석이 있고,
이 碑는 '충의추모비(忠義追慕碑)'로 우국충정의 정신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창의(倡義), 분의(分義), 충언(忠言),하며 국란에 크게 공을 세운 분들을 추모하고, 후세에 길이 귀감이 될 수 있도록 천양(闡揚)하기 위하여 2013년에 세운 비다.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장수로서 우리나라에 원군으로 왔다가 조선으로 귀화한 두사충(杜師忠)이라는 장수가 풍수지리에 밝았던 사람인데 장래에 자신이 죽으면 묻힐 명당자리를 보러 이곳으로 오다가 담티고개에서 發病하여 돌아가셨다는 이야기가 있다는데 이 고산 서당 자리가 두사충이 점찍었던 명당이라는 얘기다. 두사충(杜師忠)은 자신이 죽은 데서 가까운 곳에 묘에 묻혔고, 후손들이 그를 기리고자 모명재(慕明齋)를 세웠다고 하는데 길손은 아직 가 보지를 못 했다.
앞에 보이는 두 그루 느티나무 고목은 수령 300년으로 추정되는데 왼쪽 나무는 이황 선생이 고산서원을 방문하여 편액을 고산으로, 문액을 구도(求道)라고 지어주고 직접 나무를 심었기 때문에 이황 나무로, 오른쪽은 정경세 선생이 대구 부사로 있을 때 이곳에서 강학을 베풀어 준 데서 정경세 나무로 명명되었다. 특히 정경세 선생은 같은 동향인인 尙州人이어서 느끼는 감회가 새롭고 깊었다.
이 유허비는 고산 서당 뒤편의 언덕에 옛 서원터에 이황, 정경세 두 분의 신위(神位)를 모신 집인 묘우(廟宇) 자리에 세웠으며, 고산의 선비들이 성금을 모아 서원을 건립하여 300여 년 보존해 오다가 1868년(고종5)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폐되자 향유들이 퇴계 선생과 우복 선생에 대한 추모의 정을 금할 수 없어서 묘우 옆에 유허비를 세웠다고 하는데 비문(碑文)은 현령 이헌소(李憲昭)가 지었다고 한다.
유허비 앞에서 정면을 보니 멀리 앞에는 대구선 철도와 KTX 경부선이 지나가는 고가선로가 보이고, 하늘에는 작전을 마치고 K-2기지에 착륙하려는 F-15K 전투기가 속도를 줄이면서 낮게 날고 있다. 이렇게 시끄러운 곳에서 유생들의 글 읽는 소리도 소음에 파묻히고 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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