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2. 13. 11:14ㆍ살아가는 이야기
저녁 약속 때문에 취팔선이라는 중국요릿집으로 가는 중이다. 음식점 옆의 공터에 흰 도포를 입고 의관을 갖춘 사람들이 보인다. 평소 눈여겨보지 않았던 곳으로 작은 나무가 둘레에 심겨 있고, 안에는 잔디로 만들어진 평범한 곳인데
제관(祭官)이 행하는 의식이 끝난 후에 정중히 문의하니 이곳은 진천동 洞祭를 지내는 '아들 당산'이고, 할아버지 당산과 할머니 당산이 주변에 있다고 한다.
진천동 당산제는 정월 대보름 전날 지내는데 초저녁에 간단히 인사를 지내고, 자정이 되면 음식과 술을 가지고 와서 다시 제를 지낸다고 한다. 저녁 약속이 없었다면 끝까지 남아서 보고 싶었는데 조금 아쉬웠다.
비록 옛 흔적은 당산 돌만 작은 화단에 남았지만, 주변이 모두 아파트 숲으로 바뀐 현대에 꿋꿋하게 동제를 보존하여 전승하는 주민들의 의지가 놀라웠다.
용천계원들이 하당에서 동제를 지내고 있다.
정월대보름 동제는 마을의 안녕과 주민의 무병장수, 풍년을 기원하는 제이다. 대구시 달서구 진천1동에는 옛 형태의 동제가 전승되고 있다. 진천동의 동제는 과거 용천 마을 주민들로 구성된 용천계에서 주관하고 있다.
제주가 되면 정월 초열흘부터 정성을 들인다. 흉사(凶事)에 출입을 금하고 조석으로 목욕하며 음식도 가려 먹어야 했다. 이런 연유로 몇 해 전부터는 제주를 뽑지 않고 있다. 올해는 최용섭 용천계 회장(67), 최자섭(64), 장재훈(63), 김갑수 총무(61) 등이 행사를 주관했다.
용천 마을에는 상당, 중당, 하당 세 곳에서 동제를 지내고 있다. 상당을 할아버지 당, 중당을 할머니 당, 하당을 아들 당으로 부르고 있지만 주민마다 의견이 다르다. 상당은 성황당, 중당은 당산나무, 하당은 돌기둥이다. 예전에는 상당에서 하당까지 다섯 바퀴를 돌았는데 현재는 세 바퀴를 돈다.
돌아오는 길에 제관 집에서 음식을 가지고 상당에서 제를 지낸 뒤 제관 집에 모여 음복하는 것으로 동제를 마감했다.
제를 지내는 동안 진천동 주민 몇 사람이 나물, 막걸리, 음료수, 돈 등을 전달하고 소원을 빌었다. 용천계는 계원의 상부상조와 친목 도모가 목적이다. 광복 후 용천계를 결성할 당시 계원은 150여 명이었는데, 현재에는 계원의 사망과 이사 등으로 인해 70여명으로 줄었다.
전형적인 농촌마을이었던 용천 마을이 도시화로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개발되고 신흥 주거지역으로 성장하면서 용천마을 동제에도 영향을 주었다.
용천계 운용의 경제적 기반인 공유재산의 가치가 상승하면서 각종 개발 사업에 포함된 공유재산의 보상금이 용천계의 행사에 밑받침되면서 동제의 전승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최근 용천계의 임원들은 침체한 용천계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계원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하고, 간소화되기 이전 형태의 동제를 지내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 남은 공유재산을 처분해 기금을 확보하는 것과 그 기금으로 동제에서 굿꾼의 역할을 수행할 계원 육성을 고민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동체의 지속을 희망하는 일부 용천계의 임원들은 보존회를 구성해 동제를 전승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동제는 점차 간소화되거나 사라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급격한 도시화로 인해 사라질지도 모르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 동제를 전승해가고 있는 용천 마을 주민에 대한 지역사회의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글·사진=문순덕 시민기자 msd561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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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출처 : 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20150311.0101307424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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