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5. 9. 16:59ㆍ살아가는 이야기
모처럼 징검다리 연휴에 1촌이 홀로 사시는 곳을 갔다 왔다.
간만에 윗층의 새벽시간 진공소제기 소리도, 12시 넘어서 세수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고,
들리는 것이라곤 외로워 우는 소쩍새 소리와 밤하늘에 총총히 빛나는 별빛, 간혹 나뭇가지를
스치는 바람소리를 잠시 벗하다가 돌아왔다.
마당 앞뜰 작은 짜투리 땅에 심어진 상추, 아직 작은 잎이지만 내 입맛을 사로잡은데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작은 나무이지만 작년 가을에도 풍성한 수확을 한 집 옆에 있는 사과나무
이미 고목이 되어버린 사과나무, 낮은 키를 만드느라 상투는 평평하게 다듬어졌다. 사계절을 견디면서 애써 키운 과실을 주인에게 남김없이 빼았기고도 불평할 줄도 모르는 바보 사과나무~
경운이 잘된 논과 좌우로 이제는 사과밭이 되어버린 옛적의 벼논들이 보이고, 멀리는 고향의 마스코트인 **산!!
우측으로 보이는 잎이 무성한 나무는 어릴 적 야밤에 곁을 지나기도 무서워 했던 당산나무
가을이면 배고픔을 달래려고 감홍시를 먹고자 넘나들었던 고갯마루(언덕너머에 감밭이 있었음)
꼬불 꼬불 운치와 낭만이 있었던 냇가가 이젠 경지정리로 삭막하게 변했다. 갈대 숲에는 고라니가
생활을 하고 있단다.
과수농사 덕분에 부농의 꿈을 키우고 있는 시골마을
사과농사 뿐만이 아니라 배농사도 한다. 최근엔 배값이 폭락하여 주인장의 고민도 많다.
고추를 심기위해 멀칭한 밭이랑 사이로 덤성 덤성 심어진 감나무
고추를 말리거나 별안간 퍼붓는 장대비를 피하기 위해 만들었던 간이 비닐하우스, 세월의 무게에
짓눌려 저 모양이 되어 있다.
고향에서는 일머리 잘 모르는 농부를 "방구치"라고 한다. 그 방구치가 대충 비닐을 씌웠다.
밭 가장자리에 묵묵히 서서 밭 일구는 할매의 거친 숨소리를 온몸으로 듣던 두릅나무, 혹독한 추위를
알몸으로 견디며 봄 볕에 생명의 싹을 틔우자마자 모두 인간에게 뺐았겼어도 담담히 현실을 받아들였던 두릅나무, 고맙다!! 두릅나무야~ 잃었던 봄 맛을 네 덕에 찾았구나~~
이젠 환갑을 넘긴 선배가 사과나무 밭에 농약을 친다. 이 골짝에서 40년 전 남다른 선견지명으로
쌀농사만 알던 시골에 가장 먼저 사과나무를 식재했던 선배, 그는 이제 부농의 꿈을 이뤘다. 사과가 수확될 때까지 족히 8번은 살포해야 할 농약, 농약을 치는 사람들도 괴롭고, 먹는 사람들도 괴롭고....
http://blog.daum.net/oneshot1022/127
일본에서는 사과나무가 자기 맘대로 살도록 약도 안치고, 풀도 안 메었는데도 기적의 사과가 나왔다.
지방도에 세워진 단계 하위지 선생의 묘소 입구를 알리는 조그만 안내판
지방도로 고향산천 가는 길, 경북 구미시 선산읍 죽장리 고방산 입구에 사육신의 한분인 단계 하위지 선생의 유택이 자리잡고 있다. 지나다니다가 몇 번 들린 곳이지만 사진을 찍기 위해 돌아오는 길에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지방도에서 약 200미터 정도 떨어진 단계선생의 묘소를 찾았다.
하위지 [河緯地, 1412~1456]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사육신의 한 사람. 집현전 직전(直殿)에 등용되어 수양대군을 보좌하여 《진설(陣說)》의 교정과 《역대병요(歷代兵要)》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침착·과묵한 청백리로 성삼문 등과 단종 복위를 꾀하다가 실패, 거열형(車裂刑)에 처해졌다. 본관 진주(晉州). 자 천장(天章)·중장(仲章). 호 단계(丹溪) ·연풍(延風). 시호 충렬(忠烈). 1435년(세종 17) 생원을 거쳐 1438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장원,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고, 1444년 집현전 교리(校理)가 되어 《오례의주(五禮儀註)》 상정(詳定)에 참여하였다가 1446년 동복현감(同福縣監)으로 있던 형 강지(綱地)의 탐람죄(貪婪罪)에 인책 사임하고, 1451년(문종 1) 집현전 직전(直殿)에 등용되어 수양대군(首陽大君)을 보좌하여 앞서 신정(新定)한 《진설(陣說)》의 교정과 《역대병요(歷代兵要)》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1456년 성삼문(成三問) 등과 단종 복위(復位)를 꾀하다가 실패, 체포되어 친국(親鞫) 끝에 동료들과 함께 거열형(車裂刑)에 처해졌다. 뛰어난 문장가였으며, 과천(果川)의 민절서원(愍節書院), 홍주(洪州)의 노운(魯雲)서원, 연산(連山)의 충곡(忠谷)서원, 의성(義城)의 충렬사(忠烈祠) 등에 제향되었다. [출처] 하위지 [河緯地 ] | 네이버 백과사전
1454년(단종 2) 부제학·예조참의를 거쳐 이듬해 예조참판에 올랐다. 침착·과묵한 청백리(淸白吏)로, 측근에서 세조를 보필하는 동안 국록(國祿)을 손대지 않고 고스란히 따로 저장해 두었다.
하위지 선생 묘소 입구에 있는 주차장과 좌측으로 올라가는 길
산책로 처럼 올라가는 길, 주차장에서 2~3분 내로 묘소에 도착할 수가 있다.
굽은 소나무 사이로 선생의 묘소가 보인다.
하위지 선생의 묘소와 오래된 비석, 최근의 비석이 공존한다. 우측은 무인석인가?
문인석과 무인석이 마주보고 있는 하위지 선생의 묘소
하위지 선생 묘소의 오래된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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