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9. 14. 14:43ㆍ살아가는 이야기
時至 신 대구 - 부산 고속도로가 지나가는 곳에 있는 어느 한적한 터널이다. 차량 통행은 없고, 사람의 통행도 뜸한 곳인데 아침 산책을 하다가 저곳을 지나가게 되었다.
지난번 지나갈 때도 터널엔 그저 관심도 없고, 속보로 그냥 통과하였는데 오늘은 예전과는 달리 터널 벽을 유심히 보면서 지나간다. 시간이 한가해서가 아니라 우연히 오른쪽을 쳐다보다가 터널 벽에 쓰인 의미심장한 낙서를 보았기 때문이다.
갑자기 대구에서 일어난 지하철 방화사건으로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던 그때가 생각났다. 길손은 사고가 나고 한참이 지나서 사고가 일어났던 지하에 내려갔는데 벽은 온통 새까만 그을음으로 도배가 되었고, 공중전화기도 모두 녹아내려 그 현장은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군데군데 흰 종이에 희생자의 가족들이 쓴 간절한 글들이 검은 벽에 붙어있었는데~
지하철 객차에서 화마로 희생된 아들에게 보내는 아버지의 글을 읽고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내용 중에 아버지는 구구절절이 애틋함을 보이고 말미에 아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ㅇㅇ 아!! 터널을 따라가다가 밝은 빛이 보이면, 그 길을 따라서 계속 가거라. 그러면 도솔천 내원궁이 나오니 먼 훗날 아비와 그곳에서 만나자!!~~"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그때를 생각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터널과 밝은 빛이 그때 상황과 오버랩이 된다.'
글씨체나 내용으로 보아 성인의 낙서가 아니고 학생의 그것으로 짐작되는데 처음에는 어느 유행가 가사를 옮긴 것 같다. 밑에 '힘내요. 터널'이란 글을 보고 유행가와는 상관이 없음을 직감하는데 유행가 가사라도 상관이 없겠다.
'누군가를 위해 흘리는 눈물은 소녀의 기도처럼 뺨을 타고 흘러 이 세상 위에 내가 있고, 나를 사랑해주는 나의 사람들과 나의 길을 가고 싶어 많이 힘들고 괴로워도 그건 연습일 뿐 야! 넘어지지 않을 거야 나는 문제 없어!!"
'죽기에는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들이 아깝잖아요. 당신 곁엔 행복만이 있을거예요'
이것을 보니 이 터널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이 공간에서 어떤 일이 있었던가? 누군가 스스로 이곳에서 삶을 포기했나? 사소하지만 기성세대는 이런 글귀를 무심하게 지나쳐서는 안 된다. 스스로 생을 포기하고자 하는 청춘의 절규요 시그널일 수도 있으니
'무슨 일 있으세요?' 이것이 본인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이 생긴다.
나는 무슨 일이 없는데 젊은 청춘 그대는 괜찮나? 무슨 문제가 있나? 내가 너무 늦게 본 것은 아닐까?
세상은 모두에게 어렵다네!!
젊은 청춘이라고 더 어려울 것은 없다네!
지금 나에게 닥쳐온 시련은 이 또한 지나가기 위해서
이곳에 있다네!!~~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마세요'
'말해봐요!'
그래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면 안 돼 옆에 지나가는 아무에게나 너의 지금 처한 어려움에 관해 얘기해봐!!~ 마음이 조금 나아질 거야~~
'당신은 잊지마세요!! 아직 소중한 사람이란 걸~'
'누구나 쉬운 건 아니에요!'
'죽으면 끝일 것 같죠? 아니에요! 당신은 소중한 사람입니다.'
'우리에겐 친구가 있어요!!'
해독이 어렵지만, 진지하게 쓴 글 옆에 장난으로 쓴 글도 보이고,
통행이 뜸한 터널에 이런 많은 아픔과 격려가 있는 줄 몰랐다. 근처 중고등학교 다니는 학생들이 분필로 한 낙서로 보이지만, 길손의 예감으로는 심상치가 않다.
안도현 시인의 시가 갑자기 생각난다.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살아가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구 농고의 작은 들판에도 가을이~ (0) | 2017.10.01 |
---|---|
따굴새(때까치)의 기억을 찾아~ (0) | 2017.09.21 |
제6회 대구 도시농업 박람회(2) (0) | 2017.09.10 |
대구 농산 제2공장 (0) | 2017.09.07 |
제6회 대구 도시농업 박람회(1) (0) | 2017.09.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