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9. 16. 13:00ㆍ여행이야기
이븐 데일 골프장을 찾아가는 길은 한적했다. 들어가는 입구도 검소하다 못해 초라하게 느껴진다.
길손은 골프에 늦게 입문했다. 늦은 정도가 아니고, 미욱했다고나 할까? 누군가 그린을 밟아보지 못하고 죽으면 대단히 섭섭해서 세상을 왔다 간 보람이 없다는 극언까지 하는 것을 듣고, 지난 4월부터 골프를 시작하여 한 달 보름을 갈비뼈 근육이 아파서 고생하고, 7번 아이언으로 3개월을 보내고, 드라이버를 14일 연습해서 이곳에 왔다. 소위 기생 머리 올리는 것처럼 머리 올리는 날이란다.
이븐 데일(Even Dale)은 충북 청주시 상담구 미원면에 있으며, 2010년 오픈한 정규코스라고 한다. 클럽 소개에 보니 이븐데일은 차분함, 평온함의 '이븐(Even)'과 골짜기를 뜻하는 '데일(Dale)'의 합성어로써 '숲이 우거진 평온한 골짜기'라는 의미이다. 그 이름처럼 신령한 기운이 깃드는 장엄한 인경산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이 곳은, 울창한 원시림과 오염되지 않은 청정 자연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경이로움마저 느끼게 한단다. 세계 3대 광천 탄산수가 있는 초정약수터와도 인접한다. (길손의 입장에서 솔직하게 얘기하면, 경이로움을 느낀다는 것은 "뻥이요"라는 생각이다.)
'숲이 우거진 평온한 골짜기'라는 뜻과는 다르게 이곳을 다녀간 이들의 世評은 산악형이라서 그런지 페어웨이가 좁아서 여러 사람 골탕 먹였다고 한다.
길손은 처음 로스트 볼을 몰라서 비싼 새 공을 들고 올 뻔했는데 인터넷을 검색하니 초보는 많이 분실하기 때문에 골프장에서 잃어버린 공을 회수하여 중고로 파는 공을 사라고 해서 경기도의 '언니네 로스트 볼'에서 개당 500원의 훌륭한 가격으로 50개를 사서 넉넉히 30개를 가지고 왔다. 이곳에서는 A급이라면서 개당 1,000원이다.
일행을 기다리며 본관 뒤를 내려가서 보는 풍경이다.
난생처음 접하는 페어웨이에서 아래를 보니 기가 찬다. 이곳에서 티샷을 해야하는데 내 공이 과연 어디로 튈까? 김정은이처럼 럭비공 스타일로 튀는 건 아닐까?
내게 레슨을 하는 프로가 퍼터를 열심히 연습하라고 했으나 내가 살아온 인생이 얼만데 그냥 대충해도 되겠지 했는데 아주 저곳에서 전진 후진, 왔다 갔다 하느라고 세월 다 보냈다. 멀리 치면 뭣하겠나? 저곳에서 홀라당 벌어 놓은 점수 다 까먹는데~
저곳에서 밑을 보고 드라이버로 쳤는지 7번 아이언으로 쳤는지 좌우지간 잔디 언저리를 맞히는가 했더니 연못처럼 보이는 해저드로 훌러덩 넘어간다. 내가 친 볼이 둔덕에 있지 않을까 해서 찾아보았지만, 공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로스트 볼을 로스트 하고, 캐디로부터 또 다른 로스트 볼을 받았는데 '오동근'이란 분의 볼이다. 글씨를 보니 그의 차분함이 전해지는데 그니는 저 볼을 잃고 많이 서운했겠지만, 길손이 한동안 잃지 않고 쳐댔으니 감사할 뿐이다.
그런데 웃기는 것이 길손은 7개 정도를 잃었는데 7개를 주워서 로스트 볼이 없었다나 어쨌다나? 이곳에 오는 사람 중에 아주 출중한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그냥 어금버금하니 내 공이 페어웨이를 벗어난 지점에 가면, 마치 밤나무에서 떨어진 밤알처럼 로스트 공이 빼꼼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다고 쳐다보는 그놈을 외면하는 것도 도리가 아닌 듯하여 슬쩍 바지주머니에 넣고 모르는 척하고 올라온다. 풀숲에서 추워서 떨고 있는 공을 햇빛 찬란한 그린으로 올려놓았으니 로스트 볼에게도 좋은 일했고, 대신 흠씬 두들겨 맞으니 어떤게 좋은지 모르겠다.
전반 9홀이 끝나고 알콜을 공급한다. 아무래도 맨정신에는 잘 쳐댈 자신이 없으니 충청도가 누가 느리다 안 할까 봐 그러는지 술도 느린 마을 양조장에서 만들었다.
2부를 위해 막걸리를 마시는 손님들을 말없이 기다리고 있는 전동 카트
앞으로 필드에 온다면 길손은 무조건 빨간 볼이나 녹색 형광 볼을 가지고 와야겠다. 날아가는 것도 선명하고, 찾기도 좋고
일행 중의 한 사람이 급경사 진 곳에서 고생하고 있다.
노란 볼이 들어갔는데 길손은 보이지만, 아무리 봐도 다른 이는 못 찾을 걸?
주자 십회훈의 부접빈객 거후회(不接賓客去後悔)가 생각난다. 키도 크고 얼굴도 잘생기고, 마음씨도 좋은 캐디가 머리 얹는 길손을 측은하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지만, 정말 잘 대해주었는데 감사한 마음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미안하다.
아이언으로 얼마나 바닥을 쳐댔는지 전투비행장 활주로에 전투기가 하드 랜딩하면서 바퀴가 닿은 것 같은 모양이다. 파3 코스라고 했던가? 길손이 7번 아이언으로 친 공은 왼쪽으로 훅이 나서 멧돼지 마빡(이마) 맞추려고 산속으로 들어가시고, 내려가서 보니 어느 님이 길옆에 홀인원 했다고 표지석을 바닥에 깔았다. 아~ 이런 곳이 홀인원 하기가 좋겠구나! 하는 생각이 초보에게도 퍼뜩하고 지나간다. 사실 100m 조금 넘는 거린데 잘하면 넣을 수도 있겠다.
이제 거의 종반전에 왔다. 이곳을 거치고 건물이 보이는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끝이 난다.
왼쪽으로 휜 도그랙 홀이다. 이 코스가 잘 만들었는지 아니면 못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길손이 보기에는 절묘한 코스 같다. 왜냐 하면 이곳에서 아무리 봐도 홀컵 깃대가 보이지를 않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왼쪽 봉우리가 막고 있기 때문이다. 장타가 가능하신 분은 왼쪽 전봇대를 겨냥해서 봉우리를 넘기면 홀인원도 가능하다. 믿거나 말거나 머리 얹는 놈의 말은 좌우지간 신빙성이 많이 떨어지니께~
길손은 폼을 엉성하게 해서 술기운에 힘을 내고 똥꼬에 힘을 준다음 힘껏쳤는데 이놈의 볼이 가마득하게 멀어지더니만, 사진 중앙 멀리 카트 길에 떨어져서 바운딩한다. 형편없는 볼이었으나 워낙 많이 날아가서 어깨를 으쓱하고 내려가니 캐디가 공을 줏어다가 그린에다 놓았다.
저곳에 홀컵이 있는데 500~600m 가능한 장타자는 산봉우리를 넘겨서 홀인원 한 번 해보시길 권유한다. 똥꼬에 힘을 주고, 몸은 힘을 빼고, 너무 세게 치면 빤스에 물똥 지릴 수도 있으니 조심하시고,
방금 지나온 곳을 쳐다 본다. 이제 오른쪽으로 이동하면 마지막 홀이다.
마지막인 이곳에서 처음에 친 볼은 막걸리를 주지 않았다고 허기가 져서 그러는지 아니면 로스트 볼이라고 천대하지 말라고 시위를 하는 건지 100m 앞에 있는 억새에 휘리릭 떨어진다. 한번 더하라고 해서 소 뒷다리로 쥐 잡는다고 똥꼬에 힘을 주고, 어깨로 몸을 힘껏 꼬아서 술김에 무아지경으로 휘둘렀는데 경쾌한 소리와 함께 직선으로 가맣게 멀어져 가는 공을 보면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으하하!!~~ 이래서 골프 친다고 지랄 발광들 하는구나!! 푸하하~~
유쾌, 상쾌, 통쾌~~
친 곳을 뒤돌아보니 까마득하다. 캐디가 230m 거리라고 한다. 프로야 우습겠지만, 연식이 많아서 굳은 몸으로 억지로 몸을 꼬아서 이렇게라도 왔는데 어찌 대견하지 않을꼬??
멀리 잔디에 박힌 노란 막대 앞에 연두색의 작은 볼이 보인다. 암 보이고 말고, 길손 눈엔 소 불알만큼 크게 보인다.
내 기특한 볼이 저곳에 있네 그려~~
천지 모르고 왔다가 새로운 내 마음을 얻는다. 양잔디여서 힘들다고 했지만, 모두에 말한 것처럼 골프장 그린을 밟아보지 않고, 세상을 떠났으면 많이 서운할 뻔했다.
골프를 배우면서 느끼는 것이 사람의 인생사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욕심을 내면 볼이 제대로 맞지도 않거니와 제대로 나가지도 않고, 그 충격이 온몸에 고스란히 통증으로 남는다.
힘을 넣지도 말고, 욕심을 내지도 말고, 평정심을 가지고, 무아지경으로 하여야 제대로 되는 운동이니 불가(佛家)에서 흔히 말하는 방하착(放下着)과 같다는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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