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생활 에피소드(1)

2011. 5. 20. 09:30지난 날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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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야간행군 훈련을 마친 병사가 호흡곤란을 호소하여

군병원에 이송되었다가 다음날 숨졌다는 것입니다. 애지중지 키운 아들을 어이없게 나라에 바친(?)

훈련병의 부모님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나의 군대생활은 대한민국 격동의 시기와 맞물려 있습니다. 70년대 말과 80년 초에 걸쳐 있었지요

한마디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영문도 모른 채 이리저리 휩쓸리면서 가족과 떨어져 33개월을 보냈네요.

 

입대한 이듬해 박대통령 시해사건과 계엄선포에 이은 12. 12 사태, 그리고 제대 말년에 광주**(굳이** 로 한 것은 그 당시에 쇠뇌된 탓도 있겠지만, 나는 군인의 신분이었고, 군인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입장이었으며, 그 당시의 유언비어와 흉흉한 나라 사정때문에 그렇게 인식되어진 것이 하루아침에

바뀌지를 않습니다.) 그 중간에 유명한 7사단 사건이란 것이 있었지요. 그 일로 중학교에서 앞뒤로

앉아 공부하였던 학우는 상병때 그넘의 공비들이 그와 전우 두명이 지키고 있던 소초를 새벽 먼동이 트기 전 취약시간대에 수류탄을 던지고 지나가버리는 바람에 5년이란 금싸라기 같은 소중한 세월을

군대와 감방에서 지내다 제대를 했으며, 나중에 들은 바로는 신부가 되었다는 소식입니다.

얼마나 기가 막혔으면 성직자의 길을 택했을까? 참 아쉽고도 슬픈 역사의 희생물이었습니다.

 

1978년 5월 초순경 입대 영장을 받은 나는 논산 제2훈련소로 입대를 하였지요. 논산훈련소는 특과병이 가는 곳이라고 하여 소총메고 빡빡기는 말단 소충수는 면할 수가 있었기에 속된 말로 잘 간다고 하였습니다.

 

누군가 나라는 "民草"가 지킨다고 했습니다. 민초의 사전적인 의미는 일반 백성을 질긴 생명력을 가진 잡초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라고 되어있습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와는 대립되는 용어라고 보면 될 듯하네요.

사실 국가로 부터는 별 혜택도 못 입은 가난하고, 많이 못배워서 그렇다고도 할 수가 있거니와

조금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따져볼 능력도 없고, 의사도 상실한 그냥 무지렁이라고나 할까요?

국가에서 크게 도움받는 적도 없는 백성들이 사실 힘든 곳에서 군생활을 하던 시절이었지요

자랑이 아니라 우리집안엔 6.25 참전용사인 선친을 비롯해서 그의 형제들, 월남전에 맹호부대로

참전했던 형, 사촌들 약 20여명이 희한하게도 전부 현역출신입니다.

예비역 상사 1명에 전부 예비역 병장들이죠 그 흔하디 흔했던 방위병이나 제2보충역도 한명 없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친척들 다른 마음 먹지않고, 참 우직하게 군대를 갔다 왔습니다. 물론 전부다 1급 갑종으로 입대를 하였습니다. 조상들이 후손들에게 머리는 별로 좋지 않지만, 몸은 튼튼하게

물려주어 고맙게 현역으로 다녀왔지요^^

 

입대를 앞두고 하루 전에 머리를 밀었습니다. 거울에 비친 내 몰골을 보니 갑자기 눈물이 났습니다.

솔직히 겁도나고, 가기도 싫었지만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미 월남에 형님을 보내고 홍역을 앓았던

어머니는 그래도 걱정은 하였지만 싸움터가 아닌 곳이니 그나마 안도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할머니는 그냥 가지말라고 팔을 붙듭니다^^ 나중에 휴가 나왔다가 들어가려고 할 때도 연세많은

할머니는 나를 꼭 붙잡고 부대로 가지말라고 간청을 합니다. 쩝~~

 

군대를 먼저 다녀왔다고 형은 몇가지 주의사항을 주었습니다  모두 기억은 나질 않지만 대략,

조금 지내다 보면 적응이 될 수가 있으니 훈련소에서 탈영은 절대 안된다. 하사 차출이 오면 절대

 응하지 말고 도망가라(이것은 실행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다음 회로 사연을 넘깁니다.)

첨에 신병대기소에 가면 짬밥을 먹지 못하므로 미원(조미료)를 가지고 가야한다 등등 입니다. 실제로 소고기 장조림과 돈을 숨길 실꾸러미, 미원과 돈 조금 가지고 입대를 하였지요.

 

고향에서 입영열차를 탓는데, 열차가 플랫폼을 지나기도 전에 기합을 주기 시작합니다. 옷은

땀범벅이 되고, 정신없이 도느라고 어떻게 논산에 도착한지 기억도 없습니다.

논산에 대해 얘기들은 것이라곤 모기가 모포를 3장이나 뚫고, 혹시 탈영이라도 하면 주민들이

먹을 것도 주지않고 포상금을 받으려고 바로 신고하는 나쁜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는 것과 논산훈련소를 거친 사람들이 나중에 제대한 다음 "논산쪽을 보고는 오줌도 누지 않는다" 뭐 이런 얘기를 들으니 참~ 논산이란 곳이 정나미가 떨어졌습니다.

 

후일 논산처자와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처가가 어디냐고 물으면 빨리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거리다가 겨우 한다는 말이, "논산훈련소가 있는 강경쪽이 아니고 공주접경에 있는 논산이다" 이렇게 애둘러 대답을 했습니다. 사실 나도 논산에 대한 핸디캡이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 다음에 계속 -

 

 

 

더운 여름 훈련을 받다가 단체로 물놀이를 하는 모양입니다. 어이그~ 빤쮸라고 입히고 하지 알몸으로 그것도 군대 아니랄까봐 줄을 맞춰서 행진을 하네 그려!! 상의는 벗고 훈련을 했는지 옷입은 히프아래는 그래도 하얗다. 그렇게 기합을 받고 뺑뺑이를 돌아도 물에 오니 좋은가 야단들이네~~^^

군발이들 아무리 5분 전과 5분 후의 일을 생각하지 말라고 해도 그렇지~  내일 훈련받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남??

 

 

면회온 할배, 할매들 한복 입은 것을 봐서는 아마 60년대 말이 아닌가 싶다.

 

출처 / 보배드림 http://www.bobaedrea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