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7. 27. 10:30ㆍ여행이야기
아침을 먹고 태를지 국립공원에 있는 칭기스칸 대동상으로 가는 길이다. 나무 한 그루 제대로 없는 완만한 구릉지대에 주택들이 있는 것이 이채롭다.
몽골의 인구는 2018년 현재 약 3,122,000명이고, 국토는 한반도의 7.4배이며, 인구 밀도는 1㎢당 2명으로 정말 국토 면적보다 인구가 적다. 몽골은 수도인 울란바토르에만 전체 인구의 40%가 넘는 130만 명이 살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만 서울로 모이는 것이 아니다.
마치 열대의 스콜처럼 비가 오락가락한다.
지나치는 차창으로 땅에 앉아있는 낙타가 보인다. 유치하게 들리겠지만 길손이 이곳 몽골을 동경한 이유는 낙타를 가까이서 보고, 너덜거리는 입술을 꼭 만져보고 싶었었고, 마유주(馬乳酒)가 마시고 싶었다. 또 한 가지 더 든다면 시골 유목민 집에서 하룻밤 자면서 가축을 공격하러 오는 늑대를 보고 싶었다. 물론 소총을 주면 쏠 것이고~ 그런데 낙타구경은 이것이 처음이고 마지막이었다. 패키지여행의 쓴맛을 본다. 외국인은 옆에서 구경하고 있던데
도로 사정도 좋지 않은데 이 도로도 고속도로라고 왕복 2차선인데도 불구하고 통행료를 저렇게 받는다. 도로 사정 좋은 우리나라 좋은 나라.
한참을 초원으로 달려가니 칭기스칸 대동상이 나온다. 현 몽골 대통령인 할트마긴 바트톨가 대통령이 건립한 것이라고 하는데 몽골은 공산주의 국가에서 민주주의 국가로 변신했는데 지금까지 오면서 국가지도자들이 얼마나 권력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고 나라를 말아먹었는지 몽골 현지 가이드가 지도자에 대해 치를 떨고 있었다. 우리나라도 그 꼴 비슷하지만,
정문을 버스를 타고 들어서니 정문 사진을 못 찍었다. 멀리 칭기즈칸 동상이 흐린 날씨에 우뚝 서 있다.
'몽골'이란 본래 “용감한”이란 뜻을 지닌 부족어였으나, 칭기스칸에 의해 통솔된 몽골부(部) 발전에 따라 민족의 이름 “Mongol” 및 지역의 이름 “Mongolia”로 변화하였다. 몽고(蒙古)이라는 이름은 지난 수천 년 동안 북방 민족으로부터 전쟁에 시달려 온 중국 사람들이 몽골을 비하하기 위해 ‘우매할 몽(蒙)’과 ‘옛 고(古)’를 사용한데서 비롯되었다. 본래 1924년 11월 26일 사회주의 혁명으로 수립된 정부는 국호를 “몽골 인민공화국(Mongolian People's Republic)"으로 정하였으나 1922년 1월 개방 정책의 상징으로 국호를 몽골 공화국으로 고쳤다.
통칭 “몽골”은 대개 외몽골(外夢古, 몽골 공화국)을 말하는 것이며, 내몽골(內蒙古)이라고 부르는 내몽골 자치주는 중국 국경 안에 있기 때문에 사실상 분단 국가다. 그러나 분단된 지 오래 되었기 때문에 민족적 친근감이나 통일에의 의지는 거의 없는 편이어서 한국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고 한다.
[출처 : 몽골개요(kotra 국가정보 - 몽골, 2013. 9. 30.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그러니 우리나라 마산에 몽고(蒙古)간장이 있다고 해서 만만해서 몽골 사람에게 '몽고(蒙古)'라고 얘기하는 것은 치욕적인 얘기이니 조심해야 한다. 마치 일본사람이 우리를 보고, 한국인이라고 하지 않고 조선인(조센징)이라고 비하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 몽골(Mongol)을 사용해야 하는데 중국에서 몽고(蒙古)라는 한자어로 표기한 것이다. 그 한자는 무지몽매할 몽[蒙]자에 오래된 것이라는 뜻의 옛 고[古]자를 썼던 것이다. 중국인들은 항상 자신들만이 세상의 중심이며 주변국들을 오랑캐로 생각했다. 그래서 동서남북의 다른 민족들은 다 오랑캐의 뜻을 가진 한자로 부른 것이다. 동이, 서융, 남만, 북적.. 모두 오랑캐라는 뜻이다.
중국인들의 표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동이, 즉 동쪽 오랑캐인 것이다. 그런데, 오랑캐의 어원 또한 몽골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몽골의 서쪽과 북쪽의 산악지대에 살았던 오리앙카이 부족에서 연원된 것이다. 오리앙카이 종족은 매우 용맹하고, 전투에 능한 유목부족이어서 중국인들에게는 특히 공포의 대상이었다. 전 유럽을 전율시켰던 몽골 최고의 장수이자 기마군단장이었던 수베에테이가 바로 오리앙카이 부족 출신이었다. 이를 좋아할 리 없는 중국 민족은 오리앙카이라는 말에 비하적인 의미를 담게 되었고, 유목민들을 오리앙카이로 대표해서 부르게 된 것이다. 그것이 오랑캐라는 말이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몽골'이 '몽고'가 된 것은 원래의 이름을 중국인들이 자기들의 표기 방법으로 표현하면서 생겨난 것인데 마치, 투르크 족을 '돌궐'로, '훈'족을 '흉노'로 표현하였던 것과 같다. 물론, 이 두 부족의 이름에도 비하적 의미가 담겨 있다.
몽골의 원뜻은 "몽"이라는 부족이 "골"(중심)이 되어서 세운 국가라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용감한 자의 나라'라고도 말한다. 몽골의 신화라 할 수 있는 칭기스칸 선조의 역사를 보면 '몽골진 고아'라는 여성이 등장하는데 이 이름을 풀어보면 '몽골'이란 뜻의 '아름다운 여성'(고아)이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몽골진 고아로부터 몽골이라는 국가의 이름이 나왔다고도 설명하기도 한다. 본래의 이름이었던 '몽골'이라는 좋은 뜻의 이름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바꾼 '몽고(蒙古)'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내부의 모습이다. 몽골의 가죽신의 코가 앞으로 올라가서 말을 타다가 떨어질 때 발걸이인 등자에 신발 코가 걸려 질질 끌려가서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고 하는데 그런데도 그것을 개선하지 않은 이유는 뭘까? 그것이 아리송하였다.
말머리에 있는 전망대에 오르기 위해서는 작은 엘리베이터를 타도되고 걸어서 계단을 올라도 되는데 길손은 중국 사람들 인해전술 때문에 걸어서 계단을 올라왔는데 숨이 찬다. 말머리로 올라가면서 뒤를 보니 칭기스칸의 얼굴이 코앞에 있다.
길손이 몽골을 여행하면서 크게 느낀 점은 몽골사람들이 칭기즈칸에 대해 갖는 존경심이나 자존감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마치 지금을 칭기즈칸의 치세(治世)로 착각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분명 그는 위대한 정치가이자 군주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런 칭기즈칸의 굴레에서 속히 벗어나는 길만이 진정한 몽골의 발전을 기약하고, 미래를 향해 나가는 바른길일 것이다. 언제까지 이미 아득한 먼 옛일을 지금에 상고한들 현재의 삶에 어떤 도움이 될까? 그렇게 한다고 옛 영토가 되살아난다면 그렇게 해도 상관이 없다.
마치 그것은 선승(禪僧)들이 '부처를 쳐부숴라'라고 얘기하는 것과 같다. 부처를 극복하지 못하면, 깨달음에 다가갈 수 있는 길도 멀고도 험난할 것이라는 말씀이 아니겠는가? 몽골인들도 칭기즈칸을 극복해야만 새로운 미래를 볼 수 있는 혜안이 열릴 것이다. 그것이 옛것을 익히어 새것을 아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삶인 것이다.
말안장에 비켜 짚은 것이 지휘봉인지 뭔지~
말머리 전망대에서 이리저리 둘러본다. 먼 곳에서 軍馬의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밑에 기마대열의 동상(銅像)이 있는데 11기의 기마대로 편성된 것이 지금의 1개 분대와 같은가 보다.
보병을 향해 기마대가 빠른 속도가 다가오면 겁을 먹지 않을 병사가 몇이나 되겠는가? 지금은 자동차에 밀려서 별 볼 일 없어졌지만, 당시에는 가장 우수한 기동력이었으니 세계를 제패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몽골조랑말은 지구력이 대단하여 20여 킬로미터를 최고 속도로 달릴 수가 있다고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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